팍팍해진 삶·미래 불안감 공감 이웃·친구간 따뜻한 얘기에 매료 아날로그감성도 유년기 향수자극 평균시청률 14% 케이블 역대최고 초반대비 40대 시청자 3배 껑충

‘나는 마흔 살/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문재 시인은 시 ‘소금창고’에서 마흔을 이렇게 표현했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40대가 요즘 한 드라마로 인해 모처럼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이 그 주인공이다. ‘응팔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1980년대 유행하던 가요가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당시 맥주와 초콜릿 등 각종 기호품이 부활해 온라인 시장을 점령했다. 문화 소비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3040세대가 ‘복고 마케팅’에 흔쾌히 지갑을 열면서 관련 기업 주가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시청률 추이만 봐도 응팔의 인기가 실감된다. 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 전국 기준)에 따르면 응팔의 1회 평균시청률은 6.7%에 머물렀다. 하지만 10회에서는 평균시청률이 13.9%(최고 시청률 14.8%)를 기록하며 역대 케이블채널 드라마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무엇보다 40대 시청자의 약진이 눈부시다. 세대별 시청률에서 40대 남성과 여성은 첫회 각각 3.733%, 6.674%를 나타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비중이 높아지면서 10회에선 각각 11.547%, 17.319%로 3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왜 불혹(不惑)의 세대들은 응팔에 열광할까. 전문가들은 팍팍해진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드라마 인기를 끌어올린 원인으로 지적한다. 냉혹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 이웃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이 담긴 따뜻한 이야기에 열광하게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허리 세대인 중년층은 지금 외환위기와 비견될 정도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는 2~3%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고, 주식 시장은 박스권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잊었다. 직장에선 일상화된 구조조정으로 내일을 내다보기 힘들다.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저금리로 저축을 해도 돈이 모이지 않고, 마지막 희망인 부동산 시장도 불안하기만 하다. 치솟는 물가에다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교육비와 빨라진 은퇴 시기,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가중된다. 정치인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일을 포기한 지 오래다. ‘마처세대’(부모를 모셔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로서의 부담도 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이런 상황에서 ‘응팔’은 그들의 결핍을 메워주고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응답하라 시리즈’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도 유년ㆍ청년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응팔은 화려하게 보여지는 도회적 삶이나 고층 아파트 대신 서울 강북의 한 평범했던 골목길을 그리고 있다”며 “40대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갑갑함이 투영돼 당시 겪었던 이웃 간 정이나 친구들의 우정 등 복고에 대한 회귀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성공하는 복고 콘텐츠들을 들여다보면 현재에는 없는 어떤 것들이 우리를 매료시키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며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른 디지털 시대에 그 시간을 멈춰 보고픈 욕망이 더욱 생겨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박일한ㆍ양대근 기자/


bigroo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