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TV는 TV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일 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마왕’ 신해철을 그리워했다.
지난 주말 안방에선 신해철의 음악과 음성이 곳곳에서 되살아났다. JTBC ‘히든싱어’, KBS2 ‘불후의 명곡’, MBC ‘복면가왕’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으로 그의 노래가 불렸고, 도전하는 스타들의 모습 뒤로 신해철의 음악이 흘렀다. 지난 24일 방송된 두 편의 음악예능에선 신해철이 생전에 남긴 명곡들이 모창능력자들을 통해, 또 후배 가수들을 통해 다시 불렸다.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저마다 펼쳐놓은 신해철과의 일화에선 대중이 미처 알지 못했던 따뜻하고 인간적인 신해철의 면모가 고스란히 비쳤다.
먼저 JTBC ‘히든싱어4’는 김광석에 이어 고인이 된 가수를 히든 스테이지로 소환했다. 이날 방송에선 신해철의 과거 콘서트 영상과 음악방송 무대에서의 모습을 사이 사이 담았고, 그 어느 회차보다 싱크로율을 높인 모창능력자들의 무대가 이어지며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안겼다. 가장 신해철 같은 모창능력자로 꼽힌 정재훈씨의 사연이 특별했다. 신해철과는 팬과 가수로 시작해,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은 정재훈씨는 넥스트 팬페이지에 자신의 음악을 올렸던 것이 계기가 돼 인연이 시작됐다.
정재훈은 방송에서 신해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그 음악을 듣고 “직접 전화를 주셔서 언제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셨다. 한 번 오라”며 자신을 불렀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는 일을 만나고 정재훈과 신해철은 사제지간이 됐다. 정재훈은 “선생님과 만났을 때 배우고 싶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쓰기 보다 녹음을 해서 가지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파일이 있다”고 전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방송에서 처음 공개된 음성파일에는 신해철 특유의 농담과 장난 섞인 말투로 헤비메탈 음악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었다. 누구보다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방송에선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신해철의 음성에 스튜디오는 다시 그리움에 잠기기도 했다.
정재훈 씨는 특히 노래뿐 아니라 말소리, 말의 속도까지 신해철과 닮아있어 놀라움을 안겼다. 특히 방청석에 앉아있던 윤원희 씨는 정재훈 씨의 성대모사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을 정도다.
‘불후의 명곡’의 MC 문희준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있었다. 문희준은 이날 하동균과 정동하의 무대를 감상한 뒤 “나는 신해철 선배님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며 “과거 앨범 작업을 하면서 9개월 간 집에서만 갇혀 있던 적이 있다. 그 때 신해철 선배님이 꾸준히 연락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문희준은 그러면서 “하루는 나를 불러내서 ‘너 나를 존경하니? 내가 좋다고 했으니 이제 용기를 가지게 할 수 있겠지?’라고 하셨다. 주기적으로 나를 도와줬던 선배님이고, 나의 아버지 같은 분이다”고 고백해 모두를 뭉클하게 했다. 지난 25일 방송된 MBC ‘일밤-복면가왕’에서 가왕의 문턱에서 아쉽게 패하고 복면을 벗은 은가은(꼬마 마법사 아브라카다브라)이 신해철과의 추억을 전했다.
은가은은 이날 2라운드 무대에서 무한궤도 ‘그대에게’를 선곡한 이유에 대해 “신해철 오빠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고, 가수가 될 수 있었다”며 “추모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무대에 설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그대에게’를 준비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러면서 신해철을 향한 마지막 영상편지도 남겼다. 은가은은 “오늘 오빠가 처음 1등했던 노래로 8명 중 1등을 했어요. 보고싶습니다”라고 울먹이며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전날 방송된 SBS ‘주먹 쥐고 소림사’에선 육중완의 소림사에서 힘겨운 훈련에 임할 때 그의 뜨거운 땀방울과 함께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배경음악으로 전했다. “육중완의 성장 스토리와 신해철의 도전적인 음악정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훈련에 임한 육중완과 닮아 선곡했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주말 내내 방송가에 이어진 고인을 향한 그리움은 온,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온라인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엔 내내 신해철과 각 프로그램 제목이 올라왔다. SNS를 통한 추모글도 끊이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내 사춘기의 위대한 영웅이었던 그 분을 기억합니다. 사랑합니다”(gold*****)라고 적었다. 신해철을 기억하는 팬들의 한 마음이었다. ‘히든싱어4’에 출연한 모창능력자들에게도 신해철은 영웅이었으며,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후배 가수들에겐 먼저 다가와 힘이 돼주는 존경하는 선배였고, 아내 윤원희 씨에겐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는”, “따뜻한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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