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처럼 솟구친 양재동 주유소… 태양을 품은 봉천동 한유그룹 사옥…
임재용 건축가의 ‘주유소 프로젝트’ 건물내 주유소에 옥외 · 옥상정원까지 자연 · 도시 어우러진 친환경 디자인 전기차 시대 맞춘 고객중심 설계 눈길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들어선 SK주유소 건물. 대지 위에 낮고 평평하게 들어선 여느 주유소와는 확연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회오리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사선띠가 6층 건물을 칭칭 휘감았다. 건물 1층의 주유소 위로는 사무실과 식당이 층층이 들어섰다. 각층마다 나무가 심긴 옥외정원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탁 트인 옥상정원에선 사람과 자연, 도시가 함께 어우러진다.
이 주유소 건물을 설계한 임재용 O.C.A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서울 장충동 서울석유 사옥, 봉천동 한유그룹 사옥, 양재동 주유소 등 ‘주유소 프로젝트’를 잇달아 선보인 중견 건축가다. 그는 “건축은 항상 사회를 반영한다. 전기차의 출현, 도심 속 주유소의 수익성 악화 등을 설계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전기자동차가 5~10년 내 활성화되면 주유소는 또 다른 사업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주유소가 전기차 충전 사업을 병행하더라도, 자동차가 충전될 동안 고객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각종 임대시설들을 건물이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도심 주유소는 면적 대비 수익률이 주변 건물에 비해 현저히 낮다. 특히 최근 주유소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아예 주유소 문을 닫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종종 벌어진다.
양재 주유소는 이러한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건물이다. 임대사업을 위한 빌딩 속에 주유소를 넣는 일명 ‘옥내 주유소’다.
임 대표는 “주유소 위에 건물이 올라타 있는 것이 아니라, 임대 건물 안에 주유소가 입점해 있는 구조를 떠올렸다. 주유소 사업자가 지하 탱크를 뜯어내고 벽을 막아 언제든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설계했다”고 전했다.
임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도 건물 곳곳에 심어놨다. 소방법상 주유소 건물에는 병원, 학원, 주거공간이 들어올 수 없다. 결국 사무실과 식당, 카페, 문화공간 등으로 임대사업이 한정된 만큼 고객의 감성을 파고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옥외ㆍ옥상정원’이다. 양재 주유소 건물 매층마다 옥외 정원을 넣고, 맨 꼭대기는 아예 옥상정원으로 꾸몄다. 주유소 한가운데 ‘자연’을 끌어들여 딱딱하고 거친 이미지를 상쇄한 것이다.
건물을 휘감고 올라가는 사선띠는 건물의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했다. “근처 도로에 자동차들이 빨리 달리는 편이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건물이 역동적으로 보였으면 했다”고 전했다.
서울 봉천동의 한유그룹 사옥도 1층에 옥내 주유소를 품고 있다. 길고 좁다란 대지 위에 들어선 주유소 건물은 시간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드러낸다. 하늘을 향하는 창문과 땅을 향하는 창문을 나란히 배치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이미지가 변화한다. 바로 밑에서 바라보는 건물과 멀찍이 떨어져서 보는 건물의 표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임 대표는 “덩치가 큰 고층 건물은 위압적으로 보이기 쉽다. 주유소 건물이 주변과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다양한 표정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 건물은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임 대표는 “옥내 주유소는 인구밀도와 땅값이 높은 서울에서 탄생한 ‘한국형 주유소’”라면서 “자동차 판매와 주유소, 임대사업을 병행하려는 건물주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김윤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