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국회법 개정안이 상처만 남긴 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공무원연금법 개혁 논의 과정에서 돌연 등장한 국회법개정안은 오히려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안보다 더 큰 파문이 일었다. 여야, 국회의장, 청와대, 그리고 다시 국회까지 돌고 돈 국회법 개정안은 논란만 남긴 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작 수십조원 혈세 낭비를 부르짖던 연금 개혁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청와대ㆍ국회, 그리고 당내 정쟁만 남았다.
국회법 개정안은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등장했다. 청와대는 매일 80억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며 국회를 압박했고, 국회 선진화법에 묶인 국회는 여야 합의 외에 방도가 없었다. 밤샘 격론 끝에 여야는 가까스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당시만 해도 국회법개정안의 후폭풍보단 공무원연금 합의가 주된 이슈였다. 연금 개혁이란 굵직한 난제를 여야 합의를 통해 통과시켰다는 데에 고무됐다.
당시 새누리당은 브리핑을 통해 “대화와 양보로 이뤄낸 사회적 대타협의 결과”라고 밝혔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진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높이 샀다. 국회법 개정안이 막판까지 걸림돌로 남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과제였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뤄낸 데에 더 큰 방점이 찍혔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한 연금 개혁 의지는 거기까지였다. 국회법 개정안이 몰고 온 파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국민연금 등 연금개혁을 위한 후속 논의 대신 행정부ㆍ입법부의 권력 정쟁이 본격화됐다. 위법 논란으로 포장됐지만, 그 속에 당정 갈등이 또 여당 내 계파 갈등이 얽히면서 국회는 파행 국면에 접어들었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새누리당이 재의결 불참을 결정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사실 국회법 개정안 그 자체는 단순할 수 있다. 위법이라면 청와대는 권한쟁의 심판을 거쳐 위법 여부 판단을 맡길 수 있고, 또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법적 절차에 따라 개정안을 재논의하거나, 표결에 부쳐 가부 여부를 묻는 방식도 가능했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지 않을 수 있었던, 또 국회법개정안이 상식적인 논의로 귀결될 수 있었던 시나리오다.
국회법 개정안은 스스로 몸집을 키웠다. 행정부ㆍ입법부 갈등, 당내 계파갈등, 임기 말 레임덕을 경계하려는 청와대의 전략 등이 얽히면서다.
실제 통과를 떠나 이를 거론한 것 자체에도 의미 부여가 되고, 해묵은 갈등에 괘씸죄 등까지 더해지면서 국회법개정안은 사실상 뒷전이 됐다. 공무원연금이 뒷전이 된 채 국회법 개정안이 불거졌다면, 이젠 국회법 개정안 자체보다 정치권의 권력 다툼이 주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상 국회법 개정안은 폐기 수순 외엔 답이 없다. 중재안까지 내걸며 여야 합의를 이끈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를 상정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다.
정 의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본회의 날이 정해지면 재의에 부치는 게 당연하다”며 “절차도 지켜가고 내용도 지키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장의 권한으로 재의결 절차를 진행해도 새누리당이 불참 의사를 철회하지 않는 한 상정보류가 될 수밖에 없다.
야당도 연일 청와대와 여당을 압박하고 있지만, 여론전 외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 단식투쟁, 장외투쟁 등 투쟁강도를 높여 여론을 움직이는 방도 외엔 직접적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살릴 길이 없는 셈.
여당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사실상 업무마비다. 유 원내대표와 비박계, 그리고 이번 기회에 유 원내대표를 끌어내리겠다는 친박계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진사퇴하지 않을 경우 29일 예정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공론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의 내분이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협상을 주도한 유 원내대표의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재의결 불참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폐기 운명을 앞둔 국회법개정안은 그렇게 정치권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비박계인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정작 지역에 내려가 보면 국회법 개정안엔 관심도 없다. 공무원 개혁만 해도 그나마 관심이 있었지만, 국회법 개정안은 어떤 내용인지도 잘 모른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