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예대 설립자 아버지 김세종 박사는…
“예술은 민족문화의 핵심이다. 민족문화의 융성 없이 민족의 융성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일제 36년 치욕의 역사를 겪어야 한 것도 그 당시 서구문화를 일찍 수입한 일본문화에 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라벌예술대학(1972년 중앙대학교와 합병) 학교 설립ㆍ건학정신은 이 같은 말로 시작한다. 김성은(56) 경희대 교수의 아버지는 서라벌예대 설립자인 김세종(2000년 작고·사진) 박사다.
김 박사는 1917년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이미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인 17세 때 고향에서 신흥소년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문맹퇴치 사업을 전개했다. 또 부용학원을 설립해 취학 못하는 아동을 모아 무료로 가르치고, 매년 농한기에는 야학을 개최해 유년반에서 성인반까지를 자정이 넘도록 지도했다.
“아버지 김 박사는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1945년 2월에는 민족주의 철산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죠. 광복 후에는 학교를 세우고 출판사를 만드는 등 교육사업에 매진했어요.”
김 박사는 1949년 잡지 ‘신태양’을 창간하고 6ㆍ25전쟁 중에는 부산에서 중앙일보(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간된 신문ㆍ현 중앙일보와 다름) 출판국장과 문화부 차장을 맡기도 했다.
1953년에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서라벌예대를 세우고, 1956년 서라벌중ㆍ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당시 서라벌예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예술 단과대학인 동시에 성격상 유일한 예술종합대학이었어요. 문예창작과와 연극영화과, 음악과, 미술과, 사진과 등 예술 각 분야가 망라돼 있었죠. 아버지는 이 학교의 이사장ㆍ학장으로서 우리나라 예술계의 동량을 육성하는 데 열성을 바쳤습니다.”
197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 캘리포니아국제대학을 설립했다.
“국제학교를 만들기 위해 서울 외곽 지역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됐어요. 이 때문에 서라벌예대가 재정난을 맞아 중앙대에 매각됐죠. 그래서 아버지는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1996년 김 박사는 우리나라 중등사학 발전에 끼친 공로로 봉황장을 받았다.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 것 같아요. 사실 현재 한류 열풍에는 서라벌예대가 그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특히 서라벌예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중앙대에서 아버지의 자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이곳에 아버지의 노력을 기릴 수 있는 작은 동상 하나가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상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