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취업시장 동전의 양면
[헤럴드경제=김영상ㆍ원호연ㆍ서지혜 기자]# 누구 못잖은 명문대 출신의 김형종(32ㆍ남) 씨. 몇년간 대기업 취업시장 노크는 실패했다. 간신히 로봇제어 강소기업에 입사했다. 현재는 만족하지만, 김 씨의 꿈은 대기업 입성이다. 3~4년간 이 분야 최고 기술을 갖춰 나중엔 당당히 대기업으로 옮길 꿈을 갖고 있다.
취업시장에 ‘백조족(族)’이 급증하고 있다. 일단은 상대적으로 취업하기 쉬운 곳(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다가 때가 되면 대기업으로 이동하려는 구직자들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이동 선호 현상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들어 뚜렷한 백조족 증가는 취업시장의 확고한 새트랜드로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대졸 신입이 아닌 대졸 경력채용 전환 시대를 예고하는 것으로, 이는 대졸취업의 ‘직행열차’가 점점 사라짐을 의미한다.
물론 대기업의 우선순위는 신입 공채다. 글로벌 경제 불황과 저성장 시대 위기감에서도 국가적 위협인 청년실업 문제 해소에 일조하고자 신입사원 공채를 줄이기는 커녕 오히려 늘리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총 2만6100명(목표치)를 뽑기로 했고, 이중 대졸은 9000명, 고졸은 9100명, 전문대는 3000명이었다. 경력은 5000명이었다. 경력직은 전체 채용자의 5분의1에 불과했다. LG그룹도 전체 1만5000명 중 10분의1에 불과한 1500명을 경력직으로 채웠다. 경력직은 아직도 대기업 취업시장에선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특정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중소기업이나 벤처에서 경력을 쌓은 경력자 채용을 늘리는 분위기는 짙다. 최첨단 산업인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완행→직행열차 탑승’안내문은 두드러진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2년 1분기 동안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채용공고 97만2945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력직 채용공고는 27.3%였다. 이중 ITㆍ정보통신직의 경력직 채용 비중은 49.5%로 가장 높았다. ITㆍ정보통신직을 채용한 기업 중 절반가량이 경력직 직원만으로 채운 것으로 해석된다.
인력의 대기업으로의 ‘우회 입성’은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 있다. 대기업에 쏠린 구직 편중을 완화하고, 근로자의 자기 개발 노력을 유도해 생산성 향상에 일조할 수 있다. 특히 외국 유명기업 사례에서 보듯이, 선진국에선 대졸공채 못잖게 경력자의 수시 이동이 시스템으로 보장돼 있다는 점에서 우리 채용시장도 ‘선진형’으로 진입할 계기가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취업자의 극심한 ‘사다리 타기’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수 있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박해룡 LS산전 이사는 “경력을 쌓으면 좀더 안정적이고 좋은 곳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은 분명 좋은 점”이라면서도 “요즘 추세는 중견이나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서 호시탐탐 대기업으로 이동하려는 이들은 보통 2~3년차에 집중돼 있는데, 해당 기업으로선 애써 키운 인재를 뺏기는 등 큰 경영악재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평생 직장’은 옛말이 됐다. 금융투자업계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학교 졸업 혹은 중퇴 후 처음으로 가진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던 만 15∼29세 청년의 수는 2012년 기준 80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2008년에는 50만5000명이었다. 무려 4년새 59.0%나 늘어난 수치로, 직장을 포기하고 다시 구직자로 돌아섰거나, 아니면 일자리 이동(job mobility)을 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애써 키운 인재가 빠져나감으로써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과 건전한 일자리 이동이라는 두가지 현상사이에서의 간극을 좁히는 채용정책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