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 668회> 총칼 없는 전쟁 8
현성애가 1974년산 낡은 치타를 어떻게 튜닝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워밍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선 순간 배기음부터가 전혀 새롭게 느껴졌다. 유호성은 한탄강을 끼고 말고개를 넘어 아흔아홉구비 비포장 고갯길을 주행할 예정이었는데 가속기를 밟을 때마다 치타가 야생마처럼 벌떡벌떡 뛰곤 했으므로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왜 이래? 러프로드용으로 완전 개조한 거 아냐?”
저절로 혼잣말이 터져나왔다. 이를테면 쾌재를 불렀다는 말이다. 껍데기에 불에 탄 자국이 선명한 것과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초상이 생뚱맞게 그려져 있는 것 빼고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한 4륜구동차로 탈바꿈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좋다. 말 타는 기분이야.”
마치 코멘더 3.0을 모는 기분이었다. 코멘더 3.0이 어떤 차인가? 4륜구동으로 달리는 SUV 중에서 왕좌에 올라 있는 강인한 머신! 지프(Jeep)의 파워와 정통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날렵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오프로드의 멋쟁이 아니던가.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암표범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도 같이 울려나오는 배기음이 코멘더 3.0의 특성이었다. 게다가 ‘휠리’를 하듯 차체가 앞으로 벌떡 솟아오르는 기분이란… 심장이 터질 만도 했다. 휠리란 바이크를 탈 때에 앞바퀴를 번쩍 들고 달리는 기술을 일컫는 말인데 할리우드 영화 ‘대탈주’에서 스티브 매퀸이 바이크를 몰고 휠리를 하며 평원을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아니었던가.
“말고개 비포장길을 폼나게 달려 봐? 스티브 매퀸과 맞짱이나 떠볼까? 거 좋지. 한 번 해볼 만할 거야.”
원래 머신에 올랐을 때의 마음가짐은 공의 세계, 무의 세계로 들어선 것과 같아야만 한다. 가급적 마음속에 아무런 상념도 갖지 않기…. 무심히 바람만 드나들도록 해야 몸에 힘이 빠지면서 부드러운 주행을 지속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뭐가 어째? 스티브 매퀸과 맞짱을 뜨겠다고?
잠시 후 차창 너머로 아직 얼음이 서걱서걱한 한탄강 줄기가 보이고 말고개 비포장길로 이어지는 도로 이정표가 나타나자 유호성은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5개국 횡단 랠리에 대비하여 1974년산 치타를 모는 드라이버가 아니었다. 그는 코멘더 3.0을 몰면서 여차하면 휠리 구사도 마다하지 않으며 오로지 스티브 매퀸과 맞짱을 뜨려는 도도한 반항아일 뿐이었다.
“자! 달려보자, 코멘더!”
강인한 범퍼의 구멍 속에 심어져 있는 헤드라이트, 일곱 개의 다이너마이트가 장착된 듯한 라디에이터 그릴… 그뿐인가? 활처럼 이어지는 지붕 선에서 초원을 가로질러 돌진하는 코뿔소의 잔등을 연상시키는 명차가 바로 코멘더 3.0이었다. 지금 유호성은 껍데기가 불에 탄 1974년산 구모델 치타를 모는 중이었지만… 마음만은 코멘더를 모는 도도한 반항아가 돼 있었다는 말이다.
지프의 계보를 이어받은 맹수 위에 올라탔으니 어찌 얌전히 있을까? 그는 화살표 표지판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굽이 길에서 시속 140㎞를 가뿐히 넘어선 채로 달리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미친 모양이었다. 앞서가던 승용차들이 놀라 갓길로 빠져나갈 때마다 그는 환호성으로 보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갓길로 밀려난 승용차 운전자들이 욕을 하든 말든… 하마터면 추돌을 당할 뻔한 여자 운전자가 놀라서 입에 거품을 물든 말든… 유호성은 제풀에 신이 나서 비포장 고갯길을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유호성은 그게 문제였다. 단순해서일까? 머신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머신 안에 있는 저 자신이 신 나면 그걸로 오케이! 마치 며칠 전, 꽃님이의 치마 속에 숨어 있던 그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치마 밖에서 강유리가 도끼눈을 뜨건 말건, 미처 윗도리도 걸치지 못한 꽃님이가 안절부절못하든 말든… 치마 속에 꼬부리고 누워 꽃님이의 속살을 보는 재미에 정신을 못 차리던 위인이었으므로.
그런데…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치타의 방음 튜닝이 완벽했기 때문일까? 고요한 치타의 실내가 마치 꽃님이의 치마폭 속처럼 아늑하게 여겨지더라는 것이 또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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