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3회> 총칼 없는 전쟁 (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콕핏’이라고 지칭하기에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조종석이었지만 장차 상용 판매를 목적으로 한 흔적이 역력했다. 운전 공간 옆과 뒤로 세 명이 추가로 앉을 수 있는 좌석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좌석 위에 부드러운 알미늄 차양 막을 펼쳐놓은 형상이었다.
“어디까지나 실용을 염두에 둔 컨셉트 카예요. 무게도 웬만한 승용차보다 무겁지요. 무려 1,800킬로그램이나 되니까요. 최신형 F1 카에 비교하면 무려 세 배가 넘는 쇳덩어리랍니다. 그런데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아요?”
“거성 기술과 집념의 승리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권도일은 이렇게 치하하며 시동단추를 눌렀다. 중저음의 배기 사운드가 개발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마치 굶주린 사자의 포효와도 같은… 어떻게 날개도 없이 하늘을 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어찌되었건 이제 발밑에 솟아있는 엑셀러레이터를 밟기만 하면 족히 시속 300km가 넘는 스피드의 세계 속으로 돌입하겠지… “엑셀을 힘껏 밟아보세요. 바닥에 무빙벨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튀어나가지는 않을 겁니다. 속도가 오르고 양력이 생겨나면 핸들을 앞으로 기울여서 지상 10센티미터 높이로 살짝 띄워 봐도 좋고요.”
재벌2세의 주문대로 권도일은 무빙벨트 위로 힘차게 로열 골드의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져 있던 넓은 영사막 위로 시뮬레이션 화면이 가동되는 게 아닌가. 시야가 야구공 만하게 좁아지고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건물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권도일이 놀라 급히 핸들을 돌리자 영사막도 따라 도는 가 싶더니 쌀가마니가 내리누르는 듯한 중압감이 온 몸에 덮쳐왔다. 피가 반대쪽으로 빨려나가는 것 같고 볼에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지금 시속 300킬로미터를 돌파했습니다. 9.7초 걸렸어요.”
흥분했는가? 재벌2세의 목소리가 떨렸다. 금속판이 찢어져나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중저음의 배기 사운드가 간헐적으로 교차되어 들려오는 중이라 그의 목소리는 토막 난 것처럼 띄엄띄엄 들려오고 있었다.
“자! 날아오릅니다.”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잠시 아찔한 현기증이 생겨나더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지상 10cm로 떠오른 것일까? 순간, 로열 골드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 정숙모드로 접어들었다. 배기음도 사라졌고 차체에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아! 브라보!”
권도일도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랐다. 자동차로 이루어내는 스피드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로열 골드만의 스피드 세계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로 위에서 300km 이상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지구 중력의 4배가 넘는 압력을 견뎌야 하고 섭씨 50도에 다다르는 열기를 참아내야만 한다. 야구공 만하게 졸아 든 시야를 응시하며 자칫 목숨과도 바꿔야 할 슬립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고통에서 흥분을 도출해 내는 것이 드라이버의 숙명이라면 너무 가혹한 표현일까? 권도일은 여태껏 그러한 고통 속에서 환희를 느끼곤 했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은 도대체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공중에 뜬 상태에서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보세요. 그 다음부터는 자세 제어장비의 도움을 받으시고요!”
재벌2세가 두 손으로 주먹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권도일은 상체를 왼쪽으로 지긋이 기울였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진 영사막이 서서히 좌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실전이라면 로열 골드가 서서히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완벽합니다. 핸들을 밀고 착륙하세요.”
권도일이 부드럽게 스티어링 휠을 밀자 로열 골드는 마치 깃털이 내려앉는 것처럼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잠시 우르릉! 하는 배기 음이 들리더니 머신은 곧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눈물이 어느새 콧등위로 흘렀는가. 권도일은 너무도 감격스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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