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0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돈도 없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강준호가 오로지 오기와 배짱만으로 유민식품의 부사장이 되기 위해 진력하고 있는 동안 권도일과 재벌2세는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하여 한 단계씩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동지였으나 속으로 목표하는 바는 서로 달랐다.
꿈의 슈퍼 카 ‘에어 뮬’을 개발하기 위한 복안으로 5개국 관통 랠리대회를 추진하는 재벌2세의 입장에서 본다면 권도일은 질 좋은 부속품이나 다름없었다. 랠리대회가 끝날 때까지 제 성능을 발휘해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물론 권도일은 재벌2세의 복안을 손금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었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그에게 충성하는 까닭은 아버지 권일주가 못 다 이룬 꿈을 완성하기 위한 지렛대로서 재벌2세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복해 말하지만 아버지 권일주의 꿈은… 유민 회장의 가문을 몰락시키는 일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급변하는 정치 환경 속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아남기도 어려운 난국이었지만 재벌2세는 대선주자의 취약점을 보완해주는 대가로 알뜰히 실속을 챙기려는 중이었다.
“어제 저녁에야 북한과의 줄다리기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북한으로 하여금 항공자동차 개발 저지 획책을 포기하도록 하기까지… 참으로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지요.”
대선주자의 대 북한 문제를 대변하고 있는 정책특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특급 관광호텔의 별실에 마련된 조촐한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고맙습니다. 북한 당국이 아랍권 석유카르텔을 통해 지원받던 액수가 예상보다 커서 그걸 대체하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렸습니다만… 잘 끝냈으니 저로서도 기쁠 따름입니다.”
“돈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갔을 걸요?”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명분을 살려서 제대로 광고 한 번 해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언젠가 현대그룹에서 소 100마리를 끌고 갈 때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재벌2세는 사자발 쑥의 진액에 통마늘을 갈아 넣은 쥬스를 컵에 딸아 정책특보에게 권했다. 아직 선거운동이 끝나지 않았으니 쭈욱 들이키고 건강을 챙기라는 무언의 배려였다.
“허허허, 섭섭하신 모양이군요. 곧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거성에서 추진 중인 에어 뮬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지정하여 밀어드리겠다고 이미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선거에서는… 확실히 승리하겠지요?”
“상대보다 8%를 앞서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거성에서 도와주신 결과로 5개국 관통 랠리대회 마지막 날 북한영내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추가로 5%, 도합 13%는 족히 앞서게 될 것입니다. 대북관계에서 날을 세우고 있다는 우려 때문에 상당히 많은 표를 깎아먹고 있었는데… 이번 랠리 건으로 그 우려를 종식시킬 수 있게 되었거든요.”
“참으로 고무적인 말씀이십니다.”
“그 모든 것이 어쩌면 북한에 밀사로 파견되어 아시아를 무대로 한 랠리대회에 북한이 관여토록 종용한 권도일 전무의 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야… 뭐, 자기가 직접 운전해서 북한 땅을 달려보고 싶은 개인적 욕심 때문에 열심히 일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분이 랠리 드라이버로 직접 출전한다면서요? 대단한 분이군요. 장차 차기정부에서 요직에 오를 수 있도록 어르신께 추천하겠습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중용할 인물은 아닙니다. 단지 자동차 운전 기술자일 뿐인걸요? 말씀은 고맙게 여기겠습니다만…”
재벌2세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재벌의 본능인가? 아무래도 권도일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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