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새 200원 내려 1345원까지 하락
환율 내려오자 매수 결정은 더 어려워져
저점은 전문가도 맞히기 어려운 숫자
보유 목적 따라 비중과 매수법 달라져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기준부터 세워야
[이윤지 KB국민은행 수지PB센터 팀장/정리=홍태화 기자] 원/달러 환율이 석 달 사이 200원 가까이 내렸다. 지난 6월 하순 1550원 부근까지 올랐던 환율은 9월 초 야간 거래에서 1345원까지 떨어졌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1500원대 환율을 두고 “달러를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를 고민하던 시장은 이제 “조금 더 기다리면 1300원을 볼 수 있지 않을까”를 묻는다.
200원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1억원을 달러로 바꾼다고 가정하면 환율이 1550원일 때는 약 6만4500달러, 1350원일 때는 약 7만4100달러를 살 수 있다. 같은 원화로 확보하는 달러가 약 15% 늘어나는 셈이다. 해외주식이나 미국 채권 투자를 계획했거나 자녀 유학비, 해외 체류비 지출을 앞둔 사람에게는 자금 계획을 바꿀 만한 차이다. 몇 달 전보다 달러를 사는 부담이 분명 줄었다.
그렇다면 지금 사야 할까, 1300원을 노려야 할까. 환율이 빠르게 내려온 뒤 가장 많이 나올 법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부터 바꿔볼 필요가 있다. 환율이 1300원까지 내려갈지를 묻기 전에 내가 왜 달러를 사려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신의 영역’…전문가도 못 맞히는 바닥
환율이 내려오면 사기가 쉬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다. 1500원을 넘을 때는 “1600원까지 오르면 더 비싸지기 전에 사야 한다”는 불안이 생긴다. 막상 1350원대로 내려오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1300원까지 가지 않을까”라는 기대에 결정을 미룬다. 가격은 싸졌는데 사기는 오히려 어려워진다.
문제는 기다림에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1300원이 오면 1250원이 눈에 들어오고, 기다리는 사이 환율이 뛰면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손을 놓거나 더 비싼 가격에 달러를 사게 된다. 환율 숫자만 보고 시점을 정하면 판단 기준도 가격을 따라 움직인다. 저점을 맞히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정작 중요한 ‘내게 달러가 왜 필요한가’는 뒤로 밀린다.
저점을 맞히겠다는 계획이 위험한 이유는 환율이 전문가에게도 맞히기 어려운 가격이어서다. 외환시장에서는 환율 전망을 두고 ‘신의 영역’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주식에는 기업 실적이나 산업 전망처럼 가격을 가늠할 기준이 있지만 환율은 한 나라의 경기와 금리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상대국의 금리와 경기, 무역수지와 자본 이동, 원자재 가격, 지정학적 위험, 투자심리가 동시에 움직이고 정책 발언 하나, 국제정세 변화 하나로 방향이 순식간에 바뀐다.
최근 하락만 봐도 그렇다. 산업통상부가 9월 1일 발표한 8월 수출입동향에서 수출은 982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8.7% 늘었고, 무역수지는 347억5000만달러 흑자였다. 반도체 수출은 466억5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7월 국제수지 잠정통계에서도 경상수지는 420억8000만달러 흑자였다. 상품 수출입뿐 아니라 서비스 거래와 투자소득까지 포함하는 경상수지가 흑자를 이어간다는 것은 대외 거래로 들어오는 외화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어서 원화 가치에는 우호적인 요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금리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오래 유지되면 달러 강세가 다시 나타날 수 있고, 국제유가 상승이나 지정학적 불안도 달러 수요를 키운다.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원화를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다.
한쪽에서는 수출로 달러가 들어오고 다른 쪽에서는 투자와 수입 결제로 달러가 빠져나간다. 환율은 이렇게 반대 방향의 힘이 부딪쳐 만들어지는 가격이다.
지금 환율을 끌어내린 이유를 설명하는 것과 앞으로 어디까지 내려갈지를 맞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나간 움직임에는 이유를 붙일 수 있어도 그 변수들이 앞으로 어떤 순서와 강도로 움직일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렇다면 ‘1300원이 오면 사겠다’는 계획은 전문가도 맞히기 어려운 숫자를 먼저 맞혀야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이다.
필요한 건 전망 아닌 나만의 ‘기준’
질문을 바꿔야 한다. “1300원까지 내려갈까요”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나는 왜 달러를 사려는가”다. 보유 목적에 따라 필요한 금액도, 매수 방식도, 적절한 상품도 달라진다.
가장 분명한 경우는 가까운 시일 안에 달러 지출이 예정된 사람이다. 자녀 유학비나 장기 해외 체류비, 여행 경비, 해외 부동산 계약금처럼 정해진 시점에 달러를 써야 한다면 달러는 투자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써야 할 돈이다. 중요한 것은 환차익이 아니라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달러를 확보해 비용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일이다.
몇 달 뒤 5만달러를 보내야 하는 사람이 1350원에서 조금 더 싸게 사려고 기다리다 환율이 1450원으로 반등하면 필요한 원화는 500만원 늘어난다. 반대로 지금 전액을 환전했는데 환율이 더 내려가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경우 달러가 필요한 날짜를 기준으로 일부는 미리 사고, 나머지는 일정 기간에 걸쳐 나눠 환전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목표는 가장 싼 가격에 사는 것이 아니라 특정 날짜의 환율 하나에 전체 비용이 좌우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해외주식이나 미국 채권에 투자하려고 달러를 사는 경우에는 자산 가격과 환율이라는 두 개의 가격에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 주식이 달러 기준으로 10% 올라도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 원화 수익률은 그보다 낮아진다. 해외자산 가격이 조정받아도 달러가 강세면 원화 기준 손실은 일부 줄어든다.
그래서 “지금 달러가 싸 보인다”는 이유만 볼 것이 아니라 이미 달러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미국 주식을 상당 규모로 갖고 있는데 달러예금까지 크게 늘리면 생각보다 전체 자산의 달러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
자산 대부분이 국내 예금과 국내 주식, 부동산에 몰려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 번째 목적인 통화 분산이 여기서 나온다.
한국에서 소득을 얻고 생활하는 사람의 자산은 생각보다 원화에 집중돼 있다. 급여도, 예금과 부동산도, 국내 주식과 채권도 대부분 원화 가치에 연결돼 있다. 주식과 채권을 나누고 국내와 해외를 분산하듯 통화도 분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때 달러의 역할은 단기 환차익이 아니라 원화에 집중된 포트폴리오에 다른 통화 축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목적이 이렇다면 환율이 1350원이냐 1300원이냐보다 전체 자산 가운데 외화 자산을 얼마나 보유할지가 먼저다.
목적을 정했다면 다음은 매수 방법이다. 저점을 맞히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한 번에 전액을 환전하기보다 나눠 사는 편이 낫다. 5000만원을 달러 자산으로 옮길 계획이라면 1000만원씩 나눠 사거나, 일정 기간마다 혹은 환율이 일정 폭 움직일 때마다 추가로 환전할 수 있다. 환율이 더 내려가면 남겨둔 자금으로 더 싸게 사고, 갑자기 반등해도 일부를 이미 확보했으니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조급함을 덜 수 있다.
물론 분할 매수가 항상 더 높은 수익을 주지는 않는다. 환율이 계속 오르면 처음에 전액을 환전한 쪽이 유리하고, 계속 내리면 늦게 살수록 유리하다. 분할 접근의 목적은 최고의 수익률이 아니라 전망이 틀렸을 때의 부담을 줄이는 데 있다.
보유 상품도 목적을 따른다. 곧 써야 할 돈이라면 필요할 때 바로 인출하고 송금할 수 있는 달러예금처럼 유동성이 높은 수단이 맞다. 당장 쓸 계획이 없다면 미국 단기 국채나 달러표시 채권으로 이자수익을 노려볼 수 있고, 미국 금리가 높은 시기에는 현금으로 들고 있기보다 이자를 받는 자산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이자율만 보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달러로 이자를 받더라도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원화로 환산한 수익은 줄어든다. 채권이라면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과 발행기관의 신용위험도 더해진다.
결국 달러 매수에서 중요한 것은 환율 전망보다 자신의 기준이다. 달러가 필요한 이유와 규모, 시점을 먼저 정해두면 환율이 바뀔 때마다 계획 전체를 다시 짤 필요가 없다. 해외 지출이 목적이라면 필요한 시점과 금액이, 해외투자나 통화 분산이 목적이라면 전체 자산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준이 된다. 환율 전망은 환전을 조금 앞당길지 늦출지, 한 번에 살지 나눠 살지를 정할 때 참고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환율의 방향은 우리가 정할 수 없다. 수많은 경제 변수와 자금 흐름이 동시에 움직여 결정되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특정 환율을 정확히 맞혀야만 실행할 수 있는 계획보다, 예상과 다른 환율이 와도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이 현실적이다. 필요한 것은 환율의 바닥을 맞히는 일이 아니다. 전망이 빗나가도 내 자산 계획이 흔들리지 않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