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8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산 넘어 산이라더니… 유민 회장을 거꾸러뜨리니까 그 마누라였던 신희영이 반기를 드는구나. 이제부터 상대를 신희영으로 바꾸어서 새로운 전쟁을 벌여야 한단 말이다.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강준호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일상을 전폐하고 유민 회장 타도에 나섰던 지난 2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지난 2년간 신희영을 회장님이라 부르며 딸랑딸랑 아부했던 뒤끝이 이토록 허무할 줄이야.

“그 아줌마가 반기를 든 게 아니에요. 아빠가 철저히 이용당한 거라고요. 유식하게 말해서… 토사구팽! 사냥이 끝났다 싶으면 즉시 사냥개를 삶아먹는 게 사람들의 본성인 줄 이제야 아셨어요?”

“그래? 내가 사냥개였다고? 신희영이 나를 삶아 먹을 거라고?”

“그래요. 돈 많은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남을 믿지 못해요. 겉으로 아무리 잘 대해주는 것 같아도 결국엔 재산을 지키기 위한 용병술일 뿐이라고요.”

“이제 그 실상을 알았으니 전쟁을 벌이자는 거 아니냐. 우리끼리 힘을 합치잔 말이야. 한 판 붙자고.”

“알았어요. 신희영 아줌마와 어떤 식으로 전쟁을 치를지는 아빠가 궁리하세요. 그 아들 유호성은 내가 책임질게요. 난 벌써 국지전을 벌이기 시작했거든요?”

“그래, 목숨 걸고 한 판 붙어보자.”

전사처럼 호기를 부렸지만… 강준호는 아무런 대안도 내세울 수 없었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신희영의 회사를 인수, 합병시켜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권력을 가졌을 리 만무하니 힘으로 그 회사를 옥죌 수도 없었다. 그러니 언감생심 전쟁은 무슨 전쟁. 그동안 딸랑딸랑! 수도 없이 아부했던 일을 그녀가 부디 기억하셔서… 용돈이나마 종종 얻어 쓸 수 있다면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흐유~ 이럴 줄 알았다면…”

지난여름 남부 프랑스 보르도 시 외곽, 라제니 누드골프장에서의 라운드 장면을 사진으로 박아놓지 못한 것이 영 후회스러웠다. 신희영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사진이라거나 쪼그려 앉아 퍼팅라인을 읽는 사진이 단 한 장만 있었더라도 핵미사일을 보유한 것만큼 당당했을 텐데…그렇지 못한 것이 영 아쉬웠다.

‘파파라치도 아무나 해먹는 게 아니로군. 선견지명이 있어야 해.’

오죽하면 누드사진 따위로 신희영을 협박할 생각까지도 했을까 만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으니 더 이상 그녀와 전쟁을 치를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강준호는 다시 전화기를 꺼내들고 강유리의 번호를 재차 눌렀다.

“유리야, 우리 모두 지난여름에 골프 전지훈련을 다녀왔잖니? 그때 혹시 한승우가 너에게 집적거리지 않든? 그 녀석이 너를 보는 눈빛이 조금 야릇했거든?”

밤새워 생각한 짓이 매 맞을 짓이라고, 궁하다보니 이젠 한승우의 뒷덜미 잡을 궁리까지 하는 중이었다. 하긴 한승우 그 녀석만 없었다면 순풍에 돛 단 인생이었을 테니…

“아뇨? 한 실장님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요. 오히려 유한솜이던가? 왜 있잖아요, 신희영 아줌마 딸! 그 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요?”

“맞아, 맞아! 그랬던 것 같다. 거 참 잘 된 일이로구나.”

“왜 그러시는데요? 한승우 실장도 적군 편에 가담했어요?”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그럼 이만 전화 끊는다.”

갑자기 번개에 헤딩 한 것처럼 머릿속이 번쩍하고 밝아졌으므로 강준호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한승우가 유한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신희영으로부터 한승우를 떼어낼 수 있는 좋은 구실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