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7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6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어요. 당장에 회사는 꾸려야 하고, 전 남편의 심복은 한시바삐 잘라내야 하고…그러니 당장 한 실장을 부를게요.”
신희영은 이렇게 말하고는 강준호가 빤히 보는 앞에서 스마트폰에 내재된 단축번호 0번을 눌렀다. 딩동댕동~ 차임벨 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보아 한승우, 그 녀석은 전화번호도 바뀌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나, 한승우 실장님?”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신희영의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변해갔다. 아뿔싸!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단 말인가.
‘하느님, 원래 여자의 심성이란 이토록 요망한 것입니까?’
강준호는 하느님 전에 이렇게 여쭈었다. 물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속으로 물었을 뿐이니 신희영이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그동안 적조했어요. 네? 마음이 변했냐고요? 그럴 리가 있어요? 내가 베트남 크루즈 선상에서의 기억을 잊었을 것 같아요?”
기가 막혔다. 한동안 골프채를 메고 세계 각지를 돌며 맺어진 몸 친구로서의 우정은 어디로 팽개쳤단 말인가? 강준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신희영의 귀뺨을 후려갈기고 스마트폰을 빼앗아 창밖으로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그는 항아리에 된장 눌러 담듯이 꾹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어째서냐고? 문득 자신의 딸인 강유리의 모습이 눈앞을 맴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위하여…아버지 대신 복수를 하기 위하여 사랑까지 포기하도록 만든 유리를 위해서라면 까짓 이 정도 수모쯤이야 참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신 여사! 정말 이러기요?”
참다못한 강준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오히려 신희영은 짜증을 낼 따름이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전화기를 틀어막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인 거 모르세요?”
“정말 하늘이 울고 땅이 통곡할 일이요.”
강준호는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으므로 벗어두었던 윗도리를 집어들고 밖으로 뛰쳐나와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내각을 구성한 뒤 그녀와 함께 승리를 자축하는 스포츠 섹스라도 질펀하게 한 판 벌일 요량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담배가 무슨 죄냐? 그는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다가 급기야 강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유민그룹의 비서실장이 확실히 되는 거예요?’
유리가 울먹이면서 이렇게 물었던가?
‘잘했다. 역시 내 딸이야. 이제 딱 일주일 만 참으면 만사 끝이다. 유민 회장과 신 여사 간 이혼 판결이 나기만 하면….’
울먹이던 유리에게 이렇게 대답했던가? 이 모든 일이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유리는 지난 일주일 동안 유민그룹의 비서실장이 되리란 꿈에 젖어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참아야 하느니라…참아야 하느니라.
“아빠예요? 드디어 두 사람 이혼했다면서요? 축하해요, 아빠.”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유리의 목소리는 매우 밝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져 있다고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인지. 강준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에 말을 이었다.
“유리야.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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