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째 영화 연출…한국사회의 비극, 희극으로 위로하다
‘전설의 주먹’에는 임원을 ‘야구빠따’로 폭행하는 재벌회장,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아무 죄책감을 갖지 않는 아이들, 불법 인터넷 도박을 새로운 돈벌이로 삼은 조폭, 처자식을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 등 2013년 한국 사회의 음울하고 안타까운 풍경이 그려진다. 강우석 감독은 늘 “신문의 사회면이야말로 가장 좋은 이야기의 보고”라며 데뷔 이후 꼬박꼬박 ‘스크랩’을 해왔다. 그래서 그의 19편의 작품은 당대 한국 사회의 ‘축도’다. 그는 늘 날선 눈으로 사회를 읽었고, 따뜻한 가슴으로 대중을 위로했다.
강 감독이 성균관대 영문과를 중퇴하고, ‘애마부인’시리즈의 조감독으로 일할 무렵인 1980년대 중반엔 농촌총각들의 구혼난이 사회문제였다. 강 감독의 첫 작품 ‘달콤한 신부들’은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상경한 농촌총각의 결혼도전기를 다룬 코미디였다.
80년대 말엔 입시지옥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학생들이 한 해 100명에 이르고 교육 민주화를 외치며 전교조가 결성돼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 작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흥행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입시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공감을 이뤄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민감한 사회 이슈를 정조준한 젊은 세대 감독들의 등장을 알렸을 뿐 아니라 사회의 비극을 코미디로 껴안는 강우석의 대중영화적 어법이 틀을 다진 작품이기도 했다.
청년실업 문제를 다룬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폭력ㆍ약물ㆍ섹스로 이지러진 청소년문제를 그린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등을 거쳐 강우석은 1993년작 ‘투캅스’로 “경찰비리를 최초로 다룬 한국 코미디영화” “사회파 코미디” “흥행의 귀재”라는 뜨거운 반응 속을 얻으며 본령인 코미디에서 드디어 황금기를 열어젖힌다. ‘투캅스’는 한국 영화 해외진출을 타진한 선구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미국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대사와 액션을 단순화면서도 치밀하게 균형을 맞춰 창조적인 비주얼 개그를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사회변화 속 남녀역할, 부부문제를 조명하려는 노력은 집 나간 아내를 대신해 육아와 가사에 나선 남자이야기 ‘미스터 맘마’와, 권태기 두 중산층 부부의 애증을 그린 ‘마누라 죽이기’를 거쳐, 업무 스트레스로 ‘고개숙인 남편’이 된 남자의 아내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다는 ‘생과부위자료청구소송’로 이어졌다. ‘투캅스2’까지 계속 흥행사를 써내려간 강우석의 코미디는 1990년대 외화 공세와 대기업 자본으로부터 한국 영화의 ‘제작 주권’을 방어하는 버팀목이었다.
2000년대 들어 강철중을 주인공으로 한 ‘공공의 적’ 시리즈와 1000만 영화 ‘실미도’로 강우석은 캐릭터영화의 고수이자 최고의 흥행파워임을 보여줬다. 이들 작품과 함께 ‘이끼’를 거쳐 ‘전설의 주먹’까지 그는 국가ㆍ권력ㆍ집단의 폭력과 이로 인해 떠밀려나고 희생당한 개인 혹은 그들의 방어적 폭력이라는 테마를 중심에 놓으며 한국 사회를 반성하고 대중들을 위로한다. 민족주의에 다소 안일하게 기댄 ‘한반도’는 ‘실미도’의 성공에 지나치게 고무돼 나온 ‘패착’이었고 ‘글러브’는 자기 위안의 성격이 짙은 소품 같은 영화로 적어도 관객 수에선 실패한 기획이 됐지만, ‘승부사’라는 별명답게 강우석은 ‘전설의 주먹’에서 전작의 패인을 명쾌하게 넘어서며 2013년의 한국 관객을 향해 다시 한 번 초대장을 내밀었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