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4회> 바람에 맞서는 법 53

신희영과 유민 회장이 사방에서 헛다리를 짚거나 혹은 뻥 대포를 쏘는 동안 대선 주자의 특별보좌관인 소위 ‘높은 양반’과 거성의 재벌 2세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보다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시나리오를 작성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시나리오에 맞추어 대응해나갈 상대는 물론 북한 당국일 테지만.

“며칠 전, 투먼에서 항저우까지 특급열차를 타고 온 북한의 활동사진작가가 한 명 있습니다. 예원희라는 미모의 젊은 여인이지요. 기껏해야 3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그녀의 행각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활동사진이라면… 다큐멘터리작가 아닙니까? 북한에서도 이번 랠리 경기를 기록할 필요가 있어서 파견한 것 아닐까요?”

“처음엔 그럴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습니다만, 그녀가 한때 북한의 통일신보 기자였다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북한이야말로 매사를 정치적으로 견제하는 집단 아닙니까? 그러니 전직 통일신보 기자 신분이 대수로울 까닭도 없지요.”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당 간부 32위, 33위의 인물들이 헌신적으로 보살펴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당 간부 32위는 서해안 지역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제6사단장이고, 33위는 도형철이란 사람인데….”

“어디나 미녀들 뒤엔 실력자가 버티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관점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형철이란 사람을 주목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도종호의 친형이라는 이유 때문이지요.”

“도종호? 많이 들어 본 이름입니다만… 혹시….”

“맞습니다. 거성그룹의 도종호 상무가 바로 북한 당 서열 33위 도형철의 친동생이라는 정보가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 회사, 도종호 상무가요?”

재벌 2세는 숨이 멎을 만큼이나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론 안도할 수도 있었다. 도종호 상무가 북한 당국의 레이더에 걸린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거성이 비밀리에 벌이고 있는 에어뮬 개발 프로젝트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에어뮬 개발 과정은 드러내지 말아야 할 극비 사항이었다.

“확실합니다. 따라서 정보국에서는 활동사진작가 예원희의 움직임을 순수한 취재활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이 서로 갈린 지 60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남과 북에 서로 친형제가 나뉘어 살 수 있을까요? 참고로 도종호 상무는 이제 겨우 50대로 접어든 나이입니다.”

“그야 제3국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남북으로 나뉘어 살던 부부라도 국제 스포츠 대회 기간에 서로 만날 수도 있고요. 아이 만드는 일쯤이야… 경우에 따라서는 10분 이내에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허허허.”

“…… 그럴 수도… 있지요.”

“헌데, 그보다도 더 결정적인 증거가 포착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거성그룹의 실력자를 뵙자고 했던 것입니다.”

특별보좌관은 금세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더니 밀봉된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뜻밖에도 그 봉투 안에 들어 있던 것은 A4 사이즈로 큼지막하게 인화된 여러 장의 사진이었는데….

“이건… 우리 거성그룹 랠리 팀의 드라이버 유호성 선수 사진 아닙니까?”

사진 속에는 유호성 선수가 어여쁜 여인과 함께 누워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머리맡에 보리향 12%가 들어 있다는 봉학맥주 병이 뒹구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찍은 사진임에 분명했다. 그렇다면… 옆에 누워 있는 여자는 북한의 사진작가 예원희일 것이라는 직감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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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