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사식당
하루 12시간에 300㎞ 달려보면 길막히고 욕먹고 스트레스 가득 대부분 교대후 홀로 식당찾아 돼지불백에 반찬까지 비우고 집으로 가는 뒷모습에 희망이
기사식당 골목으로도 유명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지난 5일 새벽 3시30분께 이곳의 한 기사식당은 새벽임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식당에서 일하는 한 아주머니는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새벽에 오는 택시기사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새벽에도 문을 여는 기사식당이 3군데 정도 돼. 그런데 새벽 4~6시에는 택시기사가 잘 안 와. 퇴근하는 기사가 가끔 오는 정도야. 교대시간이 새벽 4시니까 올 수가 없는 거지.”
식당 안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김승국(78ㆍ가명) 씨가 물로 입을 헹구고 있었다. 김 씨 앞에 놓인 그릇에는 국과 밥, 반찬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그는 54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
“요즘에도 매일 12시간씩 일해. 보통 한 끼를 먹는데 한 끼는 거의 이 식당에서 먹어. 새벽에 먹을 때도 있고 저녁에 먹을 때도 있어. 한 끼 먹고 일하면 중간에 배고픈데 계속 돈 벌어야 하니까 빵 같은 것으로 대충 때워.”
김 씨는 이어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요즘 택시 일은 너무 힘들다. 갈수록 돈벌이가 나빠져 힘들기만 할 뿐”이라고 말하며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자 한 중년 남성이 식당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왔다.
“돼지불백 하나요.” 한 마디만 건넨 뒤 텔레비전 앞 테이블에 조용히 앉았다. 이 남성은 9년차 개인택시 기사인 박인배(62ㆍ가명) 씨다. 한때 귀금속 사업으로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쌓은 그는 금과 다이아몬드, 루비 등 다양한 귀금속을 판매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하지만 귀금속을 밀수해 판매한 것이 드러나면서 박 씨는 한순간에 귀금속가게 사장에서 교도소 수감자로 전락했다.
한 달간의 수감 끝에 보석금 5000만원을 내고 나왔지만, 전과 경력 때문에 돈벌이 수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 택시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그래도 좀 벌었어. 휴일 전날이라 그런 거지 주중에는 사납금 채우기도 버거워.”
박 씨는 평소보다 5만원 더 벌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밥을 한 숟가락 떴다. 반나절 내내 운전한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 쌓여 있었다.
“택시 일을 하면 스트레스가 참 많지. 보람을 느낀 적은 별로 없어. 10시간 넘게 300㎞ 달려봐. 길 막히지, 차들 끼어들지, 아들보다 어린 애들이 나한테 욕하지, 돈은 돈대로 못 벌지….”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깊은 한숨만 내쉰 박 씨는 식사를 마친 후 식당 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았다. 곧바로 담배 한 개비도 입에 물었다.
“그래도 삶의 낙이 있어. 아내와 같이 손잡고 등산 가는 게 내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이야. 보통 일 마치고 아내와 자주 가거든. 이따 아침 11시쯤에도 아내와 가려고. 우린 여전히 손잡고 다녀.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하지.”
5시쯤 또 다른 중년 남성 한 명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현재 태양열주택 관련 사업을 운영하면서 택시기사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영업택시 8년차인 정모(57) 씨.
8년 전 회사가 부도나면서 택시운전대를 잡게 된 뒤 이후 사업을 다시 일으켰지만, 택시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잡생각이 사라져서 좋아. 승객과 얘기 나누는 재미도 있고….”
하지만 택시기사의 삶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돈 벌려면 외로워야 해. 택시는 정말 자기와의 싸움이야. 기사끼리 모여서 밥 먹고 담배 피우고 놀면 돈 못 벌어.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담배 피우고 시간을 최대한 아껴 돌아다녀야 겨우 돈 벌어. 휴일에는 쉬어야 하니까 또 못 놀아. 결국 일할 때나 쉴 때나 혼자야. 외롭고 고독한 싸움의 연속이지.”
이날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이 식당을 찾은 택시기사는 모두 5명이었다.
새벽밥을 먹고 나서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삶에 대한 고단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동시에 보였다.
민상식ㆍ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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