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시작하며…
“나흘 굶고 담이라도 넘으면 도둑이 되는 거고 급식소라도 찾아가면 노숙인이야” ⋮ “돈 벌려면 외로워야 해 기사들끼리 모여서 밥먹고 담배 피우면 돈 못 벌어” ⋮ 대한민국 새벽을 여는 사람들 밥은 삶의 수단이자 존재 이유
누구에게나 ‘목구멍은 포도청’이다. 한두 끼를 굶을 수는 있어도 죽는 날까지 먹어야 산다. 밥 앞에 속수무책이란 점에서, 먹어야 산다는 점에서 사람은 다 똑같다.
하지만 밥이라고 해서 다 같은 밥이 아니다. 어느 귀부인이 우아하게 먹는 스테이크와 노숙인이 끼니를 때우는 찬밥 덩어리가 같은 질감을 갖지는 않는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잔뜩 졸린 눈을 비비며 이른 새벽 ‘컵밥’을 먹는 노량진 수험생의 아침과 잔뜩 멋을 부린 ‘브런치’로 아침의 여유를 즐기는 뉴요커의 아침식사가 동일한 삶의 무게를 지닌 것은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 합동의 ‘구세군 브릿지센터’. 매일 새벽 5시면 아침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 노숙인 장진수(가명ㆍ63) 씨에게 밥이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무미건조했다. “그냥 먹는 거지. 배고프니까.”
그에게 밥이란 어떤 형용사도 부사도 허용되지 않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탄수화물 덩어리에 불과했다.
“도둑과 노숙인의 차이가 뭔지 알아? 나흘 굶고 어디 담이라도 넘으면 도둑 되는 거고 급식소라도 찾아가면 노숙인이야. 아마 이거 없었으면 나도 배고파서 진작에 뭐 훔치고, 누구 찌르고 했을지도 모르지.” 그에게 밥은 한 덩어리의 ‘도덕’이기도 했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마포구 연남동의 한 기사식당에서 만난 정현승(가명ㆍ57) 씨는 8년차 택시기사다. 이른 시간에도 북적거리는 기사식당이지만 식당 한 편에 혼자 자리를 잡았다. 정 씨는 혼자 먹는 밥맛을 아는 이였다.
“돈 벌려면 외로워야 해. 기사끼리 모여서 밥 먹고 담배 피우고 놀면 돈 못 벌어. 혼자 밥 먹고 혼자 담배 피우고 시간을 아껴 돌아다녀야 겨우 돈 벌어.”
혼자 먹는 밥이 외롭다는 투정은 정 씨에겐 사치였다.
새벽 밥이 고달프기는 택배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택배물류센터, 한 순간도 일손이 끊길 수 없는 이곳에서는 새벽 1시30분부터 팀별로 밥을 먹는다.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인부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돼지고기무국에 밥과 반찬을 말아 비워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지만 그렇다고 밥 없는 노동은 상상할 수도 없다.
몇 달 전 군대를 제대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온 한동현(23)는 “새벽 밥이 정말 꿀맛이다. 몸에서 빠진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취재팀은 노량진 고시원, 택배물류센터, 새벽인력시장, 노숙인급식소, 기사식당과 동대문시장 등 새벽 밥을 먹는 사람에게서‘ 대한민국의 새벽’을 보았다. 그들에게 밥은 삶의 이유였고. 살기 위한 수단이었고, 미래를 위한 삶의 목표이자 희망이었다.
김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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