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불원천리 장성땅에 돈벌러 왔다가/꽃같은 요내 청춘 탄광에서 늙네/작년간다 올해간다 석삼년이 지나고/내년간다 후년간다 열두해가 지났네/남양군도 검둥이는 얼굴이나 검다지/황지장성 사는 사람 얼굴 옷이 다 검네/통리고개 송애재는 자물쇠고개인가/돈 벌러 들어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네/문어 낙지 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이내 몸 목구멍에는 검은 가래가 끓네.”

사업에 실패해도, 청년실업에 번민하다가도, 주먹세계에서 손을 씻고 어떻게 살아갈까 고뇌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탄광에 가면 먹고 살 수는 있기 때문이다. 탄광으로 가면 어렵게 대학에 합격한 자식의 등록금을 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광산촌 전성기 때 전국 각지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장성과 철암, 황지와 통리로 몰려들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이었다. ‘광부아리랑’속엔 희망과 고단함이 교차한다.

철암은 석탄 저장, 경석 선별, 이물질 분리 등을 처리하는 국내 최초 선탄시설이 있던 곳이어서 광부 중 고급인력이 자리를 잡았고, 장성에 비해 출퇴근이 편해 희망 품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모여들었다.

삼척군 장성읍에 속한 ‘리(里)’에 불과했지만 주민등록상으로는 1만3000명을 헤아렸고, 주소지를 다른 곳에 둔 광부를 포함하면 실제 거주민은 2만명을 훌쩍 넘었다. 기차역이 있던 새뜨리에 가장 많이 살았고, 피내골ㆍ좁씨골ㆍ매산골ㆍ버들골ㆍ새터 등 1930년대만 해도 인적 드문 마을에 사람들이 빼곡이 찼다.

술집과 옷집, 다방 등 3차산업도 꽃피우던 시절 ‘길거리의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돈이 넘쳤고, 강물을 검게 색칠한 그림으로 사생대회에 입상한 탄광촌 어린이는 청와대의 초청을 받았다. 기자가 인근 백산리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3~74년, 철암은 같은 ‘里’인데도 읍내로 여겨, 영화를 보거나 문구를 살 때 그곳까지 3㎞를 걸어다녔다.

탄광촌에 전국 각지 사람이 몰리자 단층건물은 철암천 제방을 넘어 강쪽으로 증축되고, 증축된 방 구들은 목조 또는 철골지지대인 까치발에 의존하게 된다. 까치발 건물은 반(半) 수상가옥이다. 철암 전성기의 상징이다.

그러나 45개나 되던 철암ㆍ장성 광산이 2곳으로 줄어든 2014년, 40년 만에 다시 찾아본 철암의 선탄장은 이제 유적(등록문화재 21호)이 되어 있었다. 인구는 3000명으로 줄어 번화하던 거리는 간 데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의 옛 간판만이 반겼다. 한양다방, 형제미용실, 봉화식당, 대성사, 호남슈퍼, 경북식당…. 그나마 옛 철암역 앞 공가(空家) 수백 채가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매미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실의에 잠겨 있던 귀향객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철암역 앞 일대가 2월 중 문화공간, ‘철암광산역사촌’으로 변모한다는 소식이다. 옛 건물 외관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 추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단장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호남슈퍼와 진주성은 1970년대 철암의 풍경, 문화, 식탁, 거리, 부엌 등을 접할 수 있는 에코생활사박물관이 됐다. 여기서 ‘광부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다. 한양다방 1층은 석탄조각 설치미술을, 2층에는 철암의 독특한 주거형태인 까치발 건물을 주제로 설치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에로틱 인스톨레이션’도 눈길을 끈다. 봉화식당에서는 불을 주제로 한 ‘석탄오브제’ 작품을 감상하고 ‘한줄기 빛’이란 이름의 플라스마글라스를 체험할 수 있다.

까치발 건물에 사는 광부 아내의 손 흔드는 모습, 철암교 건너 출근하던 남편의 미소 짓는 모습이 청동상으로 재연돼 있다. 남편의 미소는 한 줄기 빛이었다. 올 하반기 이곳에 건설될 470억원짜리 플라스마발전소는 새 희망의 빛이다. 철암광산역사촌은 약속의 땅을 떠나 경기도 안산, 안성 등지로 흩어진 ‘실향민’에게 마음의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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