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5회> 바람에 맞서는 법(44)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보다도 넓다는 곳. 시베리아의 눈물이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를 가 보신 적이 있는지? 만약 가보셨다면… 끝없이 펼쳐진 그 얼음벌판 위에서 운전을 해보신 적은 있는지? 그마저도 경험이 있다면 그 얼음벌판에서 눈을 친친 동여매고 끝까지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본 적은 있으신지?
경험자의 말을 빌자면 본인은 죽도록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고 하지만… 달린 거리를 재보면 고작해야 400~500 미터를 넘기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시속 100킬로미터 속도로 달렸다고 해도 고작 20초를 버티기 힘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본능적으로 삶에 애착을 지니고 있는 한, 눈을 감고 20초 이상을 전속력으로 달리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휑하니 트인 얼음벌판인줄 뻔히 알면서도 20초 이상을 달리지 못하는 까닭은 피상적이고 무한한 공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성애는 피상적이고 무한에 가까운 공포를 잘도 이겨내고 있었다.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밤길을 시속 140킬로 이상으로 달리면서 스포츠 섹스를 감행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죽어도 좋아요, 호성 씨!”
그러니… 현성애의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길게 뻗은 채로, 그리고 젖가슴을 온통 유호성에게 내맡긴 채로, 또한 쾌락에 젖어 반쯤 눈을 감은 채로 핸들을 잡고 끝끝내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었다. 무릇 여자들은 상열지사에 제대로 빠져들면 목숨도 아까와 하지 않으니… 어수룩한 남자들일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드라이버스 하이에 빠져든 현성애가 제풀에 몸이 꼬여 스티어링 휠이 외로 쏠린 까닭에 머신이 뱅글뱅글 제자리를 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직선으로 질주를 하는 것인지 제자리에서 뱅글벵글 도는 것인지, 정신없이 상열지사를 벌이는 현성애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만 언뜻언뜻 밤하늘 위로 뿌옇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굉음, 타이어가 타들어가는 푸른 연기에 소스라치곤 할 뿐이었다.
“성애 씨, 죽었어?”
“아직 살아있어요. 곧… 죽으려고 해요.”
살인현장도 아니건만 그들은 수시로 상대방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를 염려했다. 뜨겁게 살기 위해서는 죽을 맛을 봐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죽기 살기로 차를 몰았고, 그는 죽기 살기로 용틀임을 해야만 했다. 비록 뱅글뱅글 제자리를 돌고 있었지만… 광란의 질주에 빠져들수록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 아! 이 야릇한 기분.
“죽는다, 죽어!”
유호성이 목을 곧추세우며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는가 싶더니, 좁은 머신 안으로 알알하면서도 비릿한 향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은은하면서도 콧속의 점막을 톡 쏘는 냄새. 남녀가 땀을 흘리며 뜨거운 몸으로 발산하는 그 냄새, 비온 다음날 젖은 숲에서 풍겨나는 아릿한 냄새, 목 뒤로 흘러 넘어가는 코피와도 같은 그 냄새…
“…했어요?”
울컥하고 바퀴가 멈춰 섰을 때, 현성애는 이렇게 물었다. 자기도 모르게 뻗고 있던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까지 젖혀진 드라이빙 슈트를 걷어 올리던 중이었다. 하지만 유호성은 아직도 그녀의 겨드랑이 틈에 두 손을 고스란히 끼워 넣은 상태였다.
“했어. 죽여줘서 고맙군.”
현성애는 쿨하게 물었고, 유호성은 고전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현성애의 마음은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만간 죽여 버리기로 작정한 남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니 뒤가 켕길 따름이었다. 곧 ‘두툴룬 산맥’에 도달하기만 하면 험준한 낭떠러지에서 그를 밀어버리기로 작심한 줄도 모르고… 뭐가 어째? 고맙다고?
“진짜로 죽여도 고맙다고 하실래요?”
그녀가 옷을 추슬러 입으며 이렇게 중얼거리자 유호성은 피식 웃을 따름이었다. ‘그래, 경기 끝내고 확실하게 죽여 봐요’ 어쩌고 하면서 그는 재차 시동을 걸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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