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2회> 감추어진 승부 16

자고로 정치란 조율과 타협이라고 했다. 각자 지니고 있는 현의 길이를 맞추어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수만 있다면 정치적으로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5개국을 관통하는 랠리대회도 잘 끝마쳐야 하지만 북한의 당 서열 33위 도형철의 체면도 세워줘야만 합니다. 북한에서 당분간 정권다툼이 일지 않도록 배려하라는 것이 대선을 앞둔 당대표님의 바람입니다.”

“제6사단장과 도형철이 서로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하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어느 한쪽이 유별나게 득세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당 서열 33위 도형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밀어야 할 이유입니다.”

재벌 2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A4 사이즈로 인화된 사진들을 주섬주섬 챙겨 서류봉투에 집어넣었다. 특별보좌관의 의견에 적극 따르겠다는 의도였다. 유호성 선수와 북한의 사진작가 예원희가 호텔에서 속옷차림으로 함께 찍은 문제의 사진들이었다.

“북한에 어느 정도나 지원해야 합니까?”

“이번 랠리대회로 인해서 북한 당국이 이득을 취한 만큼 도형철에게도 밀어줘야겠지요. 그래야 천칭이 수평을 이루지 않겠습니까?”

“이번 랠리대회를 통해서 북한 당국은… 서해안을 따라 300km에 이르는 국도를 건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6사단장의 공으로 큰돈을 번 셈입니다. 도형철이 그와 맞짱을 뜨려면 큰 규모로 골프대회를 유치해야 하고, 서너 개의 골프장과 골프텔을 세워도 모자랄 겁니다. 그 돈을 우리 거성에서 투자하라는 말씀입니까?”

“거성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유민제련그룹에서도 랠리대회를 기획했는데… 거성에서 그 정도는 투자해야지요. 모든 것이 우리 대선주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여겨주십시오.”

“도형철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서 접촉해야 할까요?”

“귀사의 상무로 재직하고 있는 도종호 씨를 당장 중국으로 보내십시오. 오늘 밤 랠리 팀이 머무는 제1 포스트에 북한 사진작가 예원희가 파견 나와 있질 않습니까? 도종호 상무가 북한 당 서열 33위 도형철의 친동생임이 확인되었으니… 도종호 상무는 조카를 만나러 중국으로 가는 거지요.”

“그런 이후에는요?”

“예원희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됩니다. 예원희의 뜻이 곧 북한 당 간부 도형철이 원하는 바일 테니까요. 정보국에서는 순수 민간 차원의 접촉으로 판단할 것입니다. 뭐,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정도로 의미를 두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 랠리 팀 드라이버 유호성 선수와 예원희의 관계는요?”

“허허허, 그야 문제 될 게 있을까요?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처녀 총각이 만나 호텔에서 연애 좀 했기로서니 뭐가 대숩니까?”

“그렇지요? 처녀 총각이 만났으니 아무런 문제 될 게 없지요?”

특별보좌관이 자리를 뜨자마자 거성의 재벌 2세는 만사 제쳐놓고 도종호 상무부터 찾았다. 당장 오늘 밤에 랠리 팀이 머물기로 되어 있는 란저우로 그를 파견해야만 했다. 화급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인천에서 북경까지 두 시간 반, 그리고 북경에서 란저우공항까지 대략 다섯 시간이나 걸립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세요. 나도 곧바로 공항으로 갈 테니 출국장 3번 게이트에서 만납시다. 자세한 내용은 비행기 안에서 이야기합시다.”

운전기사는 영문도 모른 채 인천공항으로 내달렸고, 재벌 2세는 달리는 차 안에서 왕회장과 재정담당 이사를 삼각으로 연결하는 화상통화를 시도했다.

“사업과 정치를 잘 구분해서 일을 벌여라. 알긋나?”

화상전화의 화면에 보이는 왕회장은… 지그시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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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