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1> 감추어진 승부 (15)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잠깐만요. 모두들 랠리대회에 참가한 거 맞지요?”
강유리는 이렇게 외쳐댔다. 평상시엔 제대로 발음되지도 않던 영어가 어쩌면 그리도 술술 쏟아져 나오던지, 그녀 스스로도 놀랄 따름이었다.
“메이 아이 헬프 유? 미스…”
신사라면, 특히나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국제 신사라면 이 정도의 매너는 발휘해야겠지. 선두 차를 몰던 부자 한 명이 공손히 차에서 내려 강유리에게 물었다.
“미스 캉, 캉 유리. 마이 네임 이즈 캉유리.”
이렇게 시작된 영어회화는 그러나 좀처럼 깊게 진전되지 못했다. 왜냐고? 문득 그녀가 당황하기 시작했고, 당황하다 보니 영어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고… 영어단어가 떠오르지 않다보니 더 이상 회화를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강유리는 170cm의 키에 깨끗한 피부, 엄청난 미모를 지닌 글래머 처녀였다. 비록 다섯 시간동안 비행에 시달리긴 했어도 그녀의 빼어난 미모를 지울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이점은 무엇일까?
남자들의 혼을 빼놓기 쉽다는 것.
전설의 클래식 명차를 몰던 국제신사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동양 미녀 앞에서 저마다 신사도를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구나 주위에는 기자들이 수두룩했고, 그중에는 한국말에 능통한 자들도 여럿이나 있었다.
그러니 어찌어찌, 여사여사해서 그녀가 맨 앞차에 동승할 수 있었던 것인데…
“고우, 고우! 츄라이 투 랠리!”
클래식 카를 몰던 국제신사들은 솟아오르는 엔돌핀을 억제할 수 없었다. 통역을 통해 듣기로 그녀는 유명한 골프선수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한때 타이거 우즈의 공식 제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한때 비키니 차림으로 스키장을 활주한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에 그들은 열광했다.
“고맙습니다. 땡큐, 땡큐 여러분.”
강유리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통역을 맡아준 기자들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이 탑승한 차량이 세계적인 클래식 명차라는 사실을, 또한 줄지어 따라오는 차량의 가격을 합하면 천문학적인 숫자로 기록될 것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차를 얻어 타고 한시바삐 달려야만 랠리 팀의 유호성 선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사실만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지만, 이 경우엔 모르는 것이 약이었다.
“빨리 가요. 달려요. 어서 랠리 팀을 따라잡아야 해요.”
강유리는 선두 차량의 조수석에 앉아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운전하던 신사도 덩달아 조바심이 났다. 그 신사는 자세를 바로 잡더니 최고 속력으로 이소타 프라치니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껍데기는 늙었어도 6기통 7,668cc 엔진으로 시속 160km를 너끈히 주파했던 경력을 소유한 머신이었다.
선두 차가 속력을 높이자 그 뒤를 따르던 ‘롤스로이스 레이스’가. 또 그 뒤를 따르던 ‘메르세데스 벤츠 680S’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BMW 328 스포르트 카브리올레’ 가, 또 그 뒤로 ‘재규어 XK120 로드스타’가… 자지러지도록 엔진 비명소리를 울리며 힘차게 뒤따르기 시작했다.
“브라보!”
원래 천천히, 우아함을 뽐내며 퍼레이드 하던 클래식 카들이 엔진에서 불을 뿜기 시작하자 기자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즉석에서 기사를 작성하여 본국으로 송고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작성한 기사의 타이틀은 다음과 같았다.
‘전설의 명차, 전설적 미녀를 태우고 달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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