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8> 감추어진 승부 (12)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유호성과 현성애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최루가스로 인해 눈물을 질질 흘리기도 하면서 곡예운전을 하는 중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눈을 뜬 것처럼 달려 나가는 것이 너무도 불가사의 할 뿐이었다.
마법에 빠진 것일까? 최루가스에 노출되기 전에 잠시 보았던 도로의 형상이 감은 눈 속으로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데자뷰 현상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웠다. 코스를 점검한 적도 없었으니 학습효과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무려 10초의 시간이 흘렀다. 유호성은 차체가 안정되는 것을 느낀 후에야 제동을 걸어 머신을 멈춰 세웠다. 그동안 얼마만큼의 거리를 달려왔을까?
“이상하군. 귀신이 곡할 일이야. 오르막길, 낭떠러지 길, 좌우로 굽은 길을 어떻게 눈 감고 알려 줬을까?”
“그러게 말예요. 최루가스를 쐬기 전에 잠시 보았던 길을… 눈 감고도 훤히 복기할 수 있었던 게 나도 신기해요.”
“현성애 씨… 귀신인가?”
“귀신은 무슨…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기억력이 불꽃처럼 살아난 것이겠죠.”
“기억?”
“뉘르부르그링에서 드라이빙 훈련을 받던 기억 말예요.”
“그 짧은 순간에 ‘하첸 바흐’와 ‘플루그 플라츠’의 길 모양새를 떠올리다니… 대단해.”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 길의 모양대로 운전한 사람은 어떻고요? 유호성 씨가 나보다 더 대단하지요.”
서로 장구 치고 북 치는 모양새지만,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현성애는 잠시 보았던 길을 눈 감은 채로 복기했으며, 유호성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눈 감고 그 길을 운전해내지 않았던가. 누가 뭐래도 귀신 찜 쪄 먹을 일이었다. 하지만 감격에 겨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기록도 중요했지만 어째서 요르단 국적의 머신이 최루가스를 살포했는지가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요, 호성 씨! 가서… 요르단 놈을 밟아버리세요.”
“왜 그랬을까? 요르단 놈.”
유호성은 잠시 눈을 비빈 후에야 자세를 바로 잡았다. 적어도 10초에서 20초 동안의 시간을 낭비했으므로 어디선가 보상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까닭 없이 해코지를 한 요르단 선수를 모르는 체 눈감아 줄 수도 없었다. 딜레마였다.
“호성 씨, 30미터 전방에 ‘카라치올라 카루셀’이 보여요.”
“오케이, 고마워.”
카라치올라 카루셀은 뉘르부르그링에서 가장 유명한 코너를 일컫는 말이다. 그 코너의 각도는 무려 270도에 달하는데… 그 깊숙한 코너를 제 속도로 돌기 위해서는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동시에 몸무게를 분산시켜야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더구나 그 곡선도로의 입구에서는 고저차이 때문에 앞길이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완전한 블라인드 코너인 셈이다.
유호성은 머신 속도를 시속 80km로 유지하면서 급격히 270도의 코너를 돌기 시작했다. 몸이 외로 쏠리면서 튕겨져 나갈 듯이 요동쳤다.
“뉘르부르그링 훈련이 이토록 도움 될 줄 몰랐군.”
“하지만 비슷할 뿐이지 똑같은 길은 아니에요. 조심하세요.”
현성애는 담담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대단한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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