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4회> 감추어진 승부 8
공안에게 현금지불과 마찬가지인 지급보증을 하고야 풀려난 강유리와 강준호, 그리고 N-Dos단의 졸병을 비롯한 HY훌푸드 직원은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 아래서 녹차와 빵으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이제 우린 쪽박 찼습니다, 그려.”
“그러게 말입니다. 난 아직 애들도 어린데 사표를 쓰게 생겼으니 어쩌지요?”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요? 당장 귀국해서 신희영 회장께 빌어볼까요?”
직원들은 잔뜩 풀이 죽어 이렇게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강유리는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국 공안은 헛소리하지 말라며 웃어넘겼지만…시간이 흐를수록 N-Dos단 졸병의 말이 심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N-Dos단 간부 한 명이 유호성 선수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품고 중국으로 잠입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알리려 했다. 아버지 강준호조차도 코웃음을 칠뿐이었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네가 아무래도 연속극을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강준호는 이렇게 일축하고야 말았다. 하긴 그로서는 제 여권에 ‘호색한’이라고 도장 찍힌 사실이 걱정될 뿐이었다
“어차피 귀국도 못할 거, 난 아예 중국에 말뚝 박고 살아야 할까보다.”
“아빠! 농담이 아니예요. 당장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알려야 할 만큼 중대한 일이라고요. 유호성 선수 목숨이 위태롭다니까요?”
“그럼 당장 대사관에 알리려무나. 한국 정보부에 알리던지…그렇게 왜 못해?”
“그야 아직 물증도 없고…심증만 있을 뿐이니까요.”
“어허! 그따위 3류 연속극 대본엔 신물이 난다. 넌 아버지가 귀국도 못할 처지에 놓였는데 쓸데없이 드라마나 쓸래?”
강준호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너무 심각한 사안을 너무 담담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일까. CF 드라마를 찍는 감독이나 촬영팀도 같은 반응이었고, 소위 유호성 케어팀 직원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러니 어쩌랴, 강유리는 혼자서라도 란저우로 향하는 동방항공 새벽 비행기를 타기로 작정했다. 우선 이 사실을 유호성 선수에게 직접 알려야만 했다. 앞으로 서너 시간 후면 5개국 관통 랠리 선수는 치열하게 선두다툼을 벌이며 닝샤후이족자치구를 향해 머신을 몰아나갈 터였다. N-Dos단 병사의 말에 의하면 고비사막이 시작되는 그 자치구 언저리쯤에서 거사가 자행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와중에 수천킬로 떨어진 상하이에 머물면서 걱정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알리는 것이 우선일까? 공연히 시간만 축내지 않을까? 행정관례를 따지고, 서류가 오가고, 어쩌고 하는 중에 유호성 선수가 다치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중국 공안에서는 어쩌자고 이런 사안을 웃어넘기자는 것일까,
“시간이 없어요, 아빠. 내 자동차와 골프백은 아빠가 챙겨주세요. 난 당장 란저우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만 해요.”
그녀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고한 뒤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나머지 일행은 난처할 따름이었다. 수중에 가진 돈도 별로 없었지만 서로 의견이 엇갈려 더욱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강준호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낸 노장 아니던가. 그는 CF 감독에게 승부수를 띄우기로 작정했다.
“감독님, 강유리 선수가 이탈했으니 무슨 수로 CF 광고를 찍으시렵니까? 새삼스레 이제 와서 유호성 선수를 내세울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강준호는 대뜸 N-Dos단 졸병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여태껏 성범죄의 피해자로 몰려있었기 때문인지…그는 아직도 은단 주워 먹은 병아리처럼 비실거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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