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0회> 감추어진 승부 54
권도일, 그가 곧 랠리경기에서 도중하차하게 될 운명임을 알 까닭이 있나. 그는 벌써 10여분 가량을 멈추어 선 채 고민 중이었다. 계속 멈추어 서있을까, 유호성을 쫓아갈까 하는 두 갈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플랫 스폿 상태에 처해있는 중이었다. 뜨거운 모래와의 마찰로 인해 타이어가 녹아드는 지경이었단 말인데… 그걸 핑계로 계속 멈추어 있노라면 결국 유호성은 N-Dos 특공 소령이 모는 블랙 이글스에 테러를 당해 죽을 것이 뻔했다. 어차피 죽이려 했던 놈을 남의 손으로 죽이는 게 섭섭하긴 했지만 어쨌든 의도한 대로 될 터였다.
하지만 재벌2세를 통해 거성의 왕회장은 유호성을 케어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빨리 모래구덩이를 탈출하여 유호성을 뒤쫓아 가야만 한다. 적어도 권도일이 뒤쫓는 상태에서 블랙 이글스가 테러를 자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포기할까?’
따지고 보니 세 갈래 길이었다. 그는 섭씨 47도의 열기를 발산하는 로열 골드 콕핏 안에서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땀을 흘려대고만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에 정신을 차리도록 한 것은 재벌2세의 무선통신을 감지한 경고음이었다. 그는 조금 전, 변덕을 부리는 왕회장의 명령을 하달 받지 않기 위해 비상스위치를 내린 사실을 기억했다.
‘찌찌..또또또.. 찌이...’
하지만 재벌2세도 만만치 않았다. 무선통신 장치가 다운된 사실을 알아챘는지 그는 경보음으로 모르스 부호를 찍어대고 있었다. 오지를 달려야 하는 랠리 선수로서 모르스 부호 해독은 필수였다. 그 경보음을 해석해 보니 재벌2세, 아니 왕회장의 뜻엔 변함이 없었다. ‘플랫 스폿은 해결했나? 오버.’로 풀이되는 부호였다.
“방금 해결했습니다. 오버.”
하는 수 없이 다시 무선통신 장치를 가동한 권도일은 이렇게 대답했다. 도저히 왕회장의 뜻을 거역하기란 힘들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럼 최선을 다해 쫓아가서 1974년 산 치타를 케어하도록. 오버.”
아! 이런… 권도일은 의도적으로 순종했지만 본능적으로는 그냥 이대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는 공중비행 장치를 가동하기 위해 이중으로 보호된 캡을 열었다. 아직 왕회장에게 허락받지 않은 시도였다. 왕회장은 전후방 5㎞ 이내에 아무도 없을 경우에만 허락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공중비행 장치를 가동하지 않으면 결코 1974년 산 치타를 뒤쫓아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자칫하다간 N-Dos 소령이 모는 블랙 이글스에게 테러를 당해 유호성이 목숨을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 아닌가.
‘그래, 죽이고 싶은 놈이지만, 일단 살려야 한다.’
권도일이 두 번째 캡을 열고 단추를 누르자 콕핏의 디지털 계기판이 바뀌더니 시트가 온몸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삼각벨트가 압착되고 rpm이 강력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그가 누르고 있던 단추에서 손가락을 떼어내자 순식간에 몸이 뒤로 쏠리면서 로열 골드는 지상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지상 10㎝! 꿈에도 그리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하게 에어를 내뿜고 있을 터인데도 모래먼지는 전혀 일지 않았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기다려라, 유호성!’
그가 스티어링 휠을 앞가슴 쪽으로 당기자 로열 골드는 바람처럼 앞으로 내달렸다. 디지털 속도계에는 순식간에 680이란 숫자가 찍혀 나왔다. 시속 680㎞로 달리고 있다는 징표였다. 이제 스티어링 휠을 2단으로 당기면 로열 골드는 시속 800㎞로 돌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미러에 비치는 풍경은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바퀴를 구동할 때보다도 평온한 뒤 풍경, 모래먼지 한 톨 날리지 않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잠시 후, 로열 골드는 시속 1,200㎞를 주파했다. 밖에서 보면 마치 유성이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에어 뮬 개발의 성공이 검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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