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7회> 감추어진 승부 71
잠시 동안 고요했던 순간이 지나가고, 강유리가 은빛 드라이버를 챙겨 든 채 무개차의 보닛 위로 올라서자 박수와 함성과 휘파람 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야말로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였다. 아무리 급을 낮추어 보아도, 그녀는 맹신하는 신도들 앞에 선 교주와 다름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퍼포먼스일까? 강유리는 마치 암벽을 건너뛰듯이, 줄지어 선 명차들의 지붕 위를 밟으며 깡충깡충 뛰어 넘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차라 하더라도 몸무게 40kg이 넘는 처녀가 지붕 위를 밟고 다니니 온전할 리 없었다. 이리 밟으면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롤스로이스 레이스’가 기우뚱거렸고, 저리 건너뛰면 또한 수십억 원이 넘는 ‘BMW 328 스포르트 카브리올레’가 출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의 차주들은 강유리가 지붕을 밟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막상 제 차의 지붕 위로 뛰어오르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곤했으니… 세상에, 미쳐도 유분수란 말이 공연한 염불은 아니었다.
“구텐 탁, 뷰티 레이디!”
이건 또 무슨 소리? 독일어와 영어로 범벅이 된 인사말 아닌가? 강유리가 옆을 돌아보니 동호회 회장 ‘움라우트 패튼’이 그녀의 걸음걸이에 맞추어서 차량 옆으로 따라 걷고 있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세계적인 패션그룹 ‘모찌’의 안주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잡을까? 말까? 그녀는 도열된 명차들의 지붕을 뛰어 건너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모찌’ 핸드백을 어깨에 걸고 힘깨나 주는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작은 도시락만 한 모찌 핸드백 하나에 3백만 원, 책이라도 넣고 다닐 수 있을만한 크기라면 1~2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이니 그럴 법도 하지.
어떤 친구는 약혼자가 모찌 핸드백 사주길 꺼려한다며 파혼을 선언한 적도 있었다. 모찌는 20대 처녀들부터 7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요물이었다. 그런데 그까짓 핸드백 한두 개가 아니라… 아예 그 핸드백을 만들고 파는 회사를 통째로 집어먹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그녀는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유리 언니, 까짓 거 손 좀 잡아주시라요. 황금 값을 해줘야 하잖습네까?”
카메라를 손에 들고 함께 뛰던 예원희가 소리질렀다. 언제부터 언니라고 했지? 황금 판을 본 순간부터 느닷없이 동생 되기를 자청했단 말인가?
“그럴까? 예원희 씨가 내 경우에 처했다면 손을 잡아 줄 거야?”
“그까짓 거 손잡는 게 대숩네까? 나중에 비누로 싹싹 씻어내면 그뿐이라요. 돈 버는 거 쉽지 않습네다. 우리 고국의 지도자 동지도 돈 벌기 위해서 미사일도 팔아먹지 않습네까? 냉큼 잡아 주시라요.”
예원희는 한 손으로 주먹나팔을 만들어 입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황금 판 한 장에 저 지경으로 마음이 홀렸으니, 움라우트 패튼이 패션그룹 ‘모찌’를 인수했단 사실마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난리를 떨까?
강유리는 자동차 위로 펄쩍펄쩍 뛰면서도 예원희의 표정을 살폈다. 예원희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손등 위에 입술을 슬쩍 찍어주는 엉터리 키스 한 번으로 패션그룹 ‘모찌’의 안주인이 될 수 있다면 이 어찌 행운이 아니랴…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문득 아버지 강준호를 떠올렸다.
아버지 강준호야말로 잔돈푼 때문에 고생길로 접어든 사람 아니겠는가. 유민 회장에게 M&A를 당해 골프연습장을 날린 뒤로 백수건달이 된 사람… 하긴 머나먼 사막까지 찾아와서 이 고생을 하는 것도 백수건달이 된 아버지 강준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강유리는 마침내 멈추어 서서 ‘움라우트 패튼’ 회장의 손을 잡고 그 손등 위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의 손등엔 노란 잔털이 수북이 박혀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어찌 놓칠까? 예원희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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