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3회> 감추어진 승부 67
약 400년쯤 전에 세상을 살았던 조선조 중기의 문장가 ‘유몽인’은 그의 수필집 ‘어우야담’을 통해 구두쇠 영감 ‘자린고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충주에 살던 백만장자 자린고비는 인색한 짓으로 수많은 재물을 모았다. 창고에는 재물이 넘쳐났지만 행여 없어질까 궤짝들을 일일이 쪽지를 붙여 봉해 놓았다. 하물며 싸라기나 쌀겨와도 같이 하찮은 것이라도 그는 천금처럼 중히 여겼다.
그렇게 재산이 많았음에도 마누라와 첩들이 먹는 것조차 아까워서 양식거리마저 날마다 직접 퍼주곤 했다. 그가 한 번은 멀리 출장 갈 일이 생겼는데, 그 틈을 타서 마누라와 첩들이 마음껏 양식을 퍼먹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옳지, 이렇게 해놓으면 꼼짝 못하겠군.’
자린고비는 자기가 돌아올 날짜를 계산해서 마누라와 첩이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양식만을 내주고는 곡식단지를 모두 봉하고 떠나려 했다. 모든 궤짝과 단지를 봉한 뒤 떠나려다 보니 창고 밖에 밀가루가 반쯤 담겨있는 단지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쁜 탓에 그걸 봉해서 창고에 넣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밀가루를 탑처럼 뾰족하게 세워 올리고는 그 꼭지부분에 수염 난 제 얼굴을 꾹 눌러서 도장을 찍어놓고는 말했다.
“만약에 이 밀가루를 훔쳐 먹다가 내가 찍어놓은 얼굴도장에 흠집이라도 나면 그 죄가 죽어 마땅할 것이다.”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으니 감히 밀가루에 손도 댈 수 없었다. 가장자리를 몰래 파먹어보려 해도 가로로 길게 찍힌 입술도장과 그 주위에 성성이 돋아있는 수염 도장에 흠집을 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일을 미리 알 수 있나? 자린고비가 집으로 돌아올 무렵, 도중에 억센 비를 만나 냇물을 건너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돌아오기로 기약한 날보다 며칠이나 늦어질 밖에. 아내와 첩은 쫄쫄 굶을 수밖에 없었다.
양식이 다 떨어져도 자린고비는 돌아올 기약이 없고… 더 이상 허기를 참을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밀가루단지에 손을 대야만 했는데.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 아니겠어요?”
뾰족하게 솟아있던 밀가루를 퍼내자 그 위에 찍힌 얼굴도장도 마침내 허물어지고야 말았다. 그러자 아내는 절반가량을 퍼낸 밀가루를 다시 뾰족하게 세워 올리더니 치마를 걷어 올리고 단지 위로 올라타서는… 음부로 꾹 눌러 도장을 찍었다는 얘기다.
며칠 뒤, 자린고비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밀가루 단지부터 살폈는데… 그가 한 말이 고스란히 여태껏 전해온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吾鬚若是卷曲乎? 吾口不橫而竪乎? 吾鼻在吾口中乎?”
재미있자고 한 말이니 해석은 다음 회로 밀어놓기로 한다. 하여간 남을 속일 수는 없다는 교훈도 담겨있는 말인데… 나시 족 아가씨는 3류 감독이 자길 속였다고 철저히 믿는 것처럼 보였다. 그 말대로라면 아까 청년들에게 곤장을 맞기 전, 나시 족 아가씨와 상열지사를 벌이면서 저도 모르게 결혼하자고 헛소리를 지껄인 게 분명했다.
이를 테면 나시 족 계율에도 ‘혼인빙자 간음죄’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시 족 처녀와 결혼하자고 꼬여서 상열지사를 벌였다면 의당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싫으면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엄마 허락만 받으면 결혼하게 된다고?”
“그래여. 아저씨사람은 도망 못가여. 동파만신원 밖에 동네 청년들이 보초 서여.”
정신 차려 듣고 보니 기겁할 일이었다. 뭐라고? 내가 너에게 장가들어야 한다고? 너도 한국으로 가서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3류 감독은 용수철 튀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겁에 질려 머리카락마저도 뻣뻣하게 솟구치는 것 같았다. 젖가슴과 허벅지를 드러낸 채 교교한 광채를 뿜으며 누워있는 그 아가씨의 몸매에 취해있다간 자칫하면 뼈도 못 추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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