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

상공 600㎞·영하 100도~영상 125도 소리도 산소도 없는 완벽한 ‘암흑세계’ 스톤박사 사투그린 3D 영화 ‘그래비티’

우주를 유영하는 미미한 존재 ‘인간’ 안간힘 쓰며 찾으려 했던 것은 바로…

어린 시절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 같은 소설에 열광해본 기억이 있는지. 조난을 당해 고립된 남자나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모험담이다. 하지만 홀로 살아남는다는 것, 최후의 생존자가 된다는 것,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한편으로 뒤집어 생각해본다면, 고립된 공간에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도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실내든 거리든 어딜 가나 CCTV가 따라다니고, 도로에선 블랙박스가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휴대폰을 지닌 모든 시민이 ‘움직이는 카메라’인데,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숨는 게 더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숨을 곳은 없어도 버려질 곳은 많다. 대형 재난이나 사고의 위험이 높아질수록 조난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단순히 배가 침몰해서, 비행기가 추락해서, 산에 가다 길을 잃어서 조난당하는 것은 차라리 낭만적으로 보일 정도다. 톰 행크스가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주인공 역할을 한 ‘캐스트 어웨이’는 로빈슨 크루소의 낭만적 모험담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작품이었지만, 최근의 조난 영화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화에 바탕한 ‘127시간’은 계곡 등반 중 바위 틈에 팔이 끼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제목대로 주인공은 127시간의 사투 끝에 바위 틈에 끼인 자신의 팔을 자르고야 탈출할 수 있었다.

영화의 상상력으로 치자면 여기까지는 있음직하다. ‘베리드’는 저 깊은 땅속을 조난지로 택했다. 주인공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땅속 관 속에 갇혀 있다.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이 유일한 희망이다. ‘나는 전설이다’는 한발 더 나아간다. 지구 전체가 조난지다. 인류가 멸망하고 단 한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조난에 대한 두려움은 마침내 우주까지 영화 주인공을 데려갔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매력적인 3D영화 ‘그래비티’는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조난 영화다. 망망대해쯤이 문제가 아니다. 끝없는 우주공간에 홀로 남겨진 자의 이야기다.

지구 상공 600㎞, 영하 100도~영상 125도의 기온. 소리도 기압도 산소도 없는 완벽한 침묵과 암흑의 세계. 공학박사인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은 지구 밖 우주공간에 머무르며 위성의 허블망원경 수리에 매달리고 있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위성과 연결된 가느다란 줄 하나. 그리고 스톤 박사를 보조하고 이동시키는 임무의 우주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뿐이다. 본부 격인 우주정거장과 통신하며 “내일 지구로 귀환하면 한잔 살 것”이라며 짐짓 여유를 부리지만, 이번이 첫 우주비행인 스톤에겐 공포와 두려움이 턱밑까지 차 오른다. 다만 베테랑 우주조종사로 이번이 마지막 임무인 맷 코왈스키가 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다.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우주정거장으로부터 긴급귀환 명령이 떨어진다. 러시아 위성이 미사일과 충돌한 후 잔해가 떠돌고 있어 곧 파편이 날아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우주탐험사는 불과 수십 년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과거의 임무에서 남은 위성이나 비행선 등의 잔해와 각종 쓰레기가 실제로 지구의 외계에서 떠돌고 있고, 이는 커다란 위험이자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미항공우주연구소(NASA)는 이를 가리켜 ‘케슬러 신드롬’이라고 이름 붙였다. 작은 나사부터 철조각, 각종 우주선 잔해가 엄청난 속도로 지구 밖 궤도에서 돌고 있어 서로 충돌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잔해가 만든 거대한 폭풍이 우주정거장과 위성을 덮치고, 스톤 박사와 맷 코왈스키는 서로에게 연결된 상태로 우주에 표류하게 된다. 맷 코왈스키가 우주정거장의 비행선 ‘소유즈’를 통한 귀환을 추진하지만, 정거장 내부로의 진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스톤 박사를 돕기 위해 자신은 우주 미아가 되는 선택을 한다.

영화는 홀로 남은 스톤 박사의 사투를 보여준다. 지구 및 우주정거장과의 모든 통신이 끊기고, 완벽한 암흑과 적막에 휩싸인 스톤 박사의 상황은 절대 공포의 세계다.

무중력 상태를 스크린에 구현한 특수촬영과 우주의 신비한 공간감을 재현한 3D영상이 이제까지의 어떤 SF보다 빼어나다. 조지 클루니와 산드라 블록 두 배우만 출연하고, 그마저도 영화 중반 이후엔 하나로 줄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과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우주를 유영하는 스톤 박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이란 끝 모르게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스톤 박사가 다시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지구에서는 정작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부대끼고 무거웠던 관계들, 곧 ‘중력’이 아닐까. 영화 제목 ‘그래비티’가 의미심장하다. 버리고 벗어나려 했던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목숨을 건 생존 투쟁, 모든 ‘조난 영화’가 다루는 우리 삶의 역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