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9회> 감추어진 승부 63

“고우, 고우! 팔로우 미!”

새벽 5시경에 유호성이 모는 1974년 치타가 사막을 향해 출발하고, 서너 시간이 지난 8시30분경에 강유리와 예원희가 그 뒤를 따른 것까지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CF 촬영팀이 요란하게 뒤따르던 모습에 비해서 쓸쓸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강유리와 예원희가 탄 빨간색 무개차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가자 포스트 일대는 급작스럽게 혼란에 빠져들었다. 모든 출정준비를 마치고 연도에 일렬로 도열해 있던 클래식 카들이 난리를 치며 달려 나가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애초에 그들은…주차된 순서대로 출발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1930년형 ‘이소타 프라치니 타입 8A’를 선두로 1938년형 ‘롤스로이스 레이스’ ‘1928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680S’의 순서를 지키기로 했던 것인데….

강유리의 머신이 점점 멀어져가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릉 쾅쾅 앞다투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렇겠지. 겉으로 보아서는 유유자적한 국제신사들이었지만 젊고 아름답고 섹시하기까지 한 강유리 앞에서는 저마다 사춘기 소년들처럼 돌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워츠 테러블…솃!”

헤럴드 경제 연재소설
헤럴드 경제 연재소설

‘메르세데스 벤츠 680S’는 누가 뭐래도 한 시절을 풍미하던 대표적 스포츠카 아니던가. 그 머신을 모는 동호회 회장 움라우트 패튼이 ‘어이구 답답해라!’하며 대열을 이탈해 앞으로 치고 나가자 멀리서 뒤따르던 1949년형 ‘재규어 XK120 로드스타’의 드라이버도 갑자기 속력을 내며 따라붙기 시작했다.

참는 것도 여기까지! 1964년형 ‘페라리 250LM’이 출력을 한껏 높이자 배후에 강한 모래바람이 날리며 주위가 마치 모래폭풍에 휩싸이는 것처럼 변해버렸다. 그러니 어째? 너도 나도 앞으로 치고 빠지며 도로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 까닭은 다름아닌 ‘집단적 눈먼사랑증후군’ 때문이었다.

불과 1시간쯤 전, ‘백만장자 나와라!’하고 외치며 강유리가 다녀간 직후부터 ‘집단적 눈먼사랑증후군’은 발병되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로부터 전염되기 시작한 그 증세는 동호회장인 움라우트 패튼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게 웬일이지? 콧날이 시큰거리고, 눈이 침침해지고…몸에 기력이 쪼옥 빠지고 눈앞엔 온통 그 아가씨의 환영이 아른댈 뿐이니…이거야 원.”

“자네도 그런가? 난 눈을 감으면 그 아가씨 목소리만 들려. 이거 큰일났군.”

독어와 영어로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알아먹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분명 이런 증세를 호소하고 있었다. 아내를 고국에 홀로 남겨놓고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아다녀 본 남자들이라면 아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다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어째서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어른대고 그녀의 향기가 진동하고, 그녀의 목소리가 귀바퀴 주위에서 앵앵거리는지를.

‘늙은이 주제에…미쳤군, 미쳤어.’

천하의 재벌이면서 천하의 백수인 클래식카 동호회원은 저마다 이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난폭하게 자동차 핸들을 돌리고, 발로는 우악스럽게 클러치 페달을 밟아대고 있었으니, 과연 여자는 요물임에 분명했다.

펄이 담긴 핑크색, 눈부신 광채가 도는 코발트블루, 형광빛이 찬연히 감도는 노란색 등등의 현란한 자동차 무리는…원래 일주일 후부터 ‘빌라 데스테’에 참가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빌라 데스테’란 원래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 2014 대회’를 일컫는 말이다. 전 세계 클래식카 경연대회로서 생산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차, 게다가 한 대에 수백억원씩이나 하는 값비싼 차로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인데….

웬걸, 그 멋진 대회에 참석해야만 할 사람들이 개장수에게 똥개 끌려가듯이 강유리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유리는 눈에 불을 켜고 유호성의 뒤를 쫓아가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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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