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정식 기자]해방 직후인 1948년. 대한민국의 연간 수출액은 19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64년 11월 30일에는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그 날을 기념해 ‘수출의 날’(이후 12월 5일 ‘무역의 날’로 개칭)을 제정했다. 공장 언니들의 파워였다. 노동집약적 상품의 대표주자였던 섬유가 그 시대 주력 수출품이었다.
이후 7년만인 1971년, 대한민국은 연간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했고 또 6년이 지난 1977년에는 10배가 성장한 연간 수출 1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비약적 속도로 발전을 거듭한 대한민국 수출은 1994년 12월에는 드디어 월 수출 100억 달러, 이듬해에는 연 수출 1000억 달러를 달성했다.
결국 지난 10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월 수출 500억 달러까지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 10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4638억달러로 올해 연간 5500억달러를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1964년 연 1억달러에서 49년 만에 5500배 성장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든게 바로 대한민국 수출의 찬란한 성과다.
기름은 커녕 마땅한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을 지금의 선진국으로 만든건 과거에도 수출이었고 앞으로도 수출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출은 현재 그 어느때 보다도 높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높아진 인건비 등 가격경쟁력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게 됐고, 주요 경쟁국의 견제는 어느때보다도 심해졌다. 과연 찬란한 역사는 이어질 수 있을까?
▶창조경제 통한 수출 다변화가 살길= 대한민국의 경제사는 수출품목의 변천사를 보면 보인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경공업 제품으로 달러를 벌었다. 섬유류(40.8%)와 가발(10.8%)이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980년대에는 의류(11.7%), 신발(5.2%), 인조장 섬유직물(3.2%) 등 노동집약적인 제품들이 주로 팔려나갔다.
본격적인 수출 품목 다변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다. 국가 차원의 중화학공업 투자가 이뤄지자 선박(3.5%) 음향기기(3.4%) 등으로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전자와 자동차 분야에 과감한 투자가 감행되며 수출 품목이 세대교체됐다. 의류(11.7%)가 여전히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반도체(7.0%), 영상기기(5.6%), 컴퓨터(3.9%), 자동차(3.0%) 등이 수출 상위 10위권에 진입하는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2000년대에는 고부가가치 정보기술(IT) 제품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면서. 반도체(15.1%)가 수출 1위 품목으로 올라섰고 컴퓨터(8.5%)가 뒤를 이었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수출 품목 다양화가 중소기업들로까지 확산되는 모습이다. 올해의 경우 13대 주력품목 외에 중소수출품목의 10월 수출증가율이 14.2%로 전체 증가율(7.3%)을 훨씬 상회한다. 13대 주력품목 증가율은 5.5%였다. 전기전자부품, 화장품, 플라스틱제품은 올해 9월까지 모두 두자릿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고 특히 소재부품 위주의 품목다변화가 월간 역대 최고실적을 경신하는데 톡톡히 기여했다는 평가다.
▶내수 안키우면 日ㆍ中 기침에 韓 독감= 수출에 국가의 명운을 걸 정도로 경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그만큼 ‘외풍’에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경제를 휘청하게 한 금융위기, 재정위기는 물론이고 가까이 위치한 중국과 일본의 경제정책 하나에도 큰 영향을 받기 일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무역의존도(수출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는 2011년 기준 110.30%로 G20 중 가장 높다. 더욱이 2009년 95.76%, 2010년 101.98%로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심지어 올들어 일본의 엔저 정책으로 촉발된 글로벌 환율전쟁으로 한국 경제는 더 큰 난관에 빠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출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환율 하락 피해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92.7%가 타격을 입었다고 답했다. 지난해 11월 같은 조사에서 53.1%였던 것에 비하면 3개월 새 40% 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엎친데 덮쳐 세계시장 점유율에서 우위를 보였던 우리나라 제품 가운데 50개 품목은 최근 2년 사이 중국에 추월당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계에서는 내수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출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ㆍ기아차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39%(2월7일 시가총액 기준)로, 전체의 4분의1이나 되지만 내수 대표업종인 롯데쇼핑,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시총 비중은 1.97%에 그치고 있다. 수출 중심 우리 경제의 양극화 현상의 단면이다.
수출 증가로 인한 낙수효과 즉, 소득 및 일자리 창출효과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1998년 0.65에서 2010년 0.56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수출 10억원을 달성했을 때 1998년엔 19.0명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했지만, 2010년엔 9.3명에 그쳤다는 의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확대형 내수전략이 필요하다”며 “내수를 확대하고 내수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