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4회> 감추어진 승부 88
클래식 카를 몰고 줄지어 달리던 오너들은 오늘 아침에 인터넷 신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기사를 저마다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1938년형 ‘롤스로이스 레이스’를 몰던 오너와 1928년형 ‘메르세데스-벤츠 680S’의 오너는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 여자가 그토록 쉽게 넘어갈 줄 알았다면 내가 먼저 찔러볼 걸 그랬소.”
“나도 똑같은 심정입니다. 이참에 동양 여자와 살림 좀 차려보는 건데… 이젠 물 건너갔소. 동양 여자들이 그토록 순종적이고 좋다던데 말이오.”
“그렇답니다. 움라우트 패튼 회장은 여생을 천국에서처럼 살게 되었소. 그처럼 예쁜 동양 여자를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골프 선수이기도 하니… 오죽이나 싱싱하겠습니까?”
클래식 카 동호회 회원들은 한결같이 싱글이었다. 상처를 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드센 마누라와 이혼하고 황혼길에 접어든 인생을 나름 즐기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수중에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돈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한 가닥 회한을 품고 있었다.
‘지고지순한 사랑.’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동양식 사랑’이었다는 말이다. 잘 알다시피 서양 여자들이 오죽이나 당당하고 도도한가? 그들에게서 과연 털끝만큼이라도 순종적인 면모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클래식 카 동호회원들은 천하의 갑부였지만 구조적인 공처가들이었다. 갑부들에겐 구조적으로 여자들이 꼬리를 치게 마련. 그러다 보면 남자로서 실수도 하게 마련이지만 그 귀부인들, 이를테면 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실수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왜냐고? 까짓 거, 이혼해서 위자료를 받으면 자기도 당당히 갑부 대열에 들어서는데 어느 여자가 남편 바람피우는 꼴을 보고 살아?
이혼하더라도, 찌질한 남편에게서 고작 해야 고시원 보증금 정도의 위자료밖엔 받아내지 못하는 우리네 서민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만… 하여간 클래식 카 동호회원들은 그런 구조적인 제도의 희생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구조적인 공처가들이 원하는 게 지고지순한 사랑이었음을 자못 이해할 만하다.
“신문기사에 보면… 우리 동호회도 랠리 팀을 따라 노스코리아를 통과하게 된 모양입니다. 노스코리아의 왕초 김정은이 오케이 했다면서요?”
“그렇다네요. 움라우트 회장이 신혼여행 퍼레이드로 그 길을 택했답니다. 아마 노스코리아에 천만달러쯤으로 보답할 예정인가 봅니다.”
“골프 선수 마누라의 뜻이 반영된 것이로군요?”
“그렇겠지요. 우리야 뭐 아무런들 어떻습니까? 어차피 100일 동안 퍼레이드를 벌이기로 했으니 러시아든, 아프리카든, 노스코리아든 아무 델 가도 상관없지요.”
동호회 회원들은 무선 교신기를 통해 이렇게 주고받았다. 불만스런 내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어여쁘고 상큼한 동양 여인에게 즉석 프러포즈를 벌여 사랑을 쟁취해낸 움라우트 패튼 회장을 부러워할 따름이었다.
한편, 움라우트 패튼 회장의 프러포즈 장면과 강유리의 사막골프 퍼포먼스 장면을 낱낱이 촬영한 예원희는, 즉시 그 사진을 컴퓨터 파일로 작성하여 고국의 양아버지 도형철에게 전송했다. 그 파일을 받아든 도형철은 즉석에서 예원희에게 당부했다.
“원희야, 그게 참말이네? 네가 동무로 맺은 강유리 선수가 이젠 천하의 갑부를 마음껏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이디? 내친김에 강유리를 꼬여내라우. 그 갑부들이 삐까번쩍한 자동차를 몰고 우리 북조선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란 말이디. 단, 통과비를 두둑히 받아내야 한다. 알갔네? 그럼 북조선에서 내 위상이 한층 높아진단 말이디.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우!”
예원희는 이런 사실을 즉시 강유리에게 알렸다. 그리고 진심으로 부탁했던 것인데… 강유리는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유호성과 권도일을 따라다녀야 할 처지인 만큼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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