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600개 기업 제무재표 분석

3대 에너지 기업 406억 유로 최다 손실

남아있는 기업은 사업 강제 몰수 ‘위기’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의 러시아 모스크바 공장. 최근 러시아 정부는 다논과 칼스버그의 러시아 사업 지분을 몰수했다. [EPA]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의 러시아 모스크바 공장. 최근 러시아 정부는 다논과 칼스버그의 러시아 사업 지분을 몰수했다. [EPA]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러시아에서 사업을 해오던 유럽기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직접 입은 손실이 최소 1000억유로(약 14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션타임스(FT)는 6일(현지시간) 600개 유럽 그룹의 연례 보고서와 2023년 재무제표를 조사한 결과 176개 기업이 러시아 사업 헐값 매각, 폐쇄 또는 축소로 1000억유로의 자산 손상과 외환 관련 비용 및 기타 일회성 비용 지출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시장 철수로 가장 큰 비용을 치른 것은 석유 및 가스 관련 업체들로 BP, 쉘, 토탈에너지 등 3개 기업에서만 총 406억유로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이들 3개 업체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약 950억유로에 그쳤다.

발전 사업 등 유틸리티 기업의 경우 147억유로의 손실을 입었고 자동차 업체를 포함한 제조업체는 136억유로의 타격을 입었다. 은행, 보험사, 투자업을 포함한 금융업은 상각 및 기타비용으로 175억 유로를 지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BP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흘 만에 국영 석유그룹 로스네프트 지분 19.75%를 매각해야 했다. 르노는 지난해 5월 모스크바 공장과 러시아 아브토바즈 지분을 매각한 뒤 23억유로를 상각했다. 폭스바겐은 4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러시아 공장을 포함한 현지 자산을 매각하면서 20억유로를 상각했다.

금융부문에서는 프랑스의 소시에테제네랄이 지난해 4월 푸틴을 지지하는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블라디미르 포타닌에게 로스뱅크와 보험사업을 매각하면서 31억유로의 손실을 입었다.

그나마 초기에 러시아 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한 기업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전략컨설팅 업체 콘트롤리스크의 나비 아브둘라에프 파트너는 “러시아에서 철수하며 많은 돈을 잃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큰 손실을 입을 위험이 있다”면서 “컷 앤 런(cut and run)은 전쟁이 시작될 때 기업을 위한 최고의 전략이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지난 4월 핀란드 에너지 기업 포르툼과 독일 에너지 기업 유니퍼의 러시아 사업을 장악한 데 이어 지난 달에는 식품업체 다논과 칼스버그 러시아 사업 지분을 몰수했다.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 자산 몰수에 대한 대응이라고 러시아 측은 밝혔다.

러시아는 러시아 재산과 국익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비우호적이라고 간주하는 국가의 기업 자산을 강제 인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우호적 국가의 기업들은 러시아 자산을 최대 절반 가격에만 매각할 수 있으며 그나마 매각 대금의 5~10%는 러시아 군대에 기부해야 한다.

안나 블라슉 키이우 경제대학 연구원은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러시아가 도입한 엄격한 출구 규정으로 남아있는 서방 기업의 사업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러한 사업에서 배당금을 받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러시아에서 여전히 활동하는 기업들은 고위험의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대다수 금융 기관은 러시아가 부과한 제약 때문에 철수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 아직 가장 큰 서방 은행인 라이페이센은 상각 및 기타 비용으로 1억 유로를 보고 했다. 이 은행은 현재 러시아 사업부의 매각을 도모하고 있다. 현지에서 사업부를 매수할 상대를 구하고 있는 유니크레딧 역시 1억 유로의 타격을 입었다.

블랴슉 연구원은 “러시아가 칼스버그 사업을 몰수한 구실이 정말 국가 안보 때문이었겠느냐”며 아직 그곳에 있는 회사들은 그냥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