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지숙ㆍ천예선 기자]“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특별히 강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단점을 인정한 뒤 더 좋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미국이 9일(현지시간) 만천하에 공개한 ‘부끄러운 자화상’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린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문 보고서 공개로 과거를 직시한 것과 달리 아베 신조 (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0일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하며 우경화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충격적인 CIA 고문 실상은=미국 상원이 공개한 미 중앙정보국(CIA) 고문실태 보고서에는 ‘선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각종 고문 행위가 적시됐다. 여기에는 비밀 감옥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에게 180시간째 잠을 재우지 않고, 183회의 워터보딩(물고문)을 가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총 6000여쪽에, 요약본 500쪽 분량의 보고서의 결론은 “고문은 잔혹했으며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은 9일 요약본 내용을 공개하면서 “CIA가 잘못된 보고로 미 의회와 정부, 국민을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CIA는 ‘선진 심문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자행한 고문에 대해 거짓 보고를 일삼았다. 비밀 수감소에 수감인원은 총 119명인데 98명으로 축소 보고했다. 2006년 한 수감자에게 쇠사슬로 묶어두고 기저귀를 채워 용변을 보게 하는 등의 처우를 하고선, 부시 대통령에게는 ‘불편함을 호소했다’ 정도로만 보고했다.

또 수감자 119명 가운데 최소 26명은 잘못 잡혀들어왔다. 물고문, 잠재우지 않기, 얼음방 수감 등 ‘선진 심문’을 받은 수감자는 모두 39명이다. 이 중 이같은 고문을 받고도 CIA에게 어떤 정보도 건네지 않은 이가 7명이다.

음식과 물 섭취를 거부해 CIA가 직장으로 물을 집어넣은 이가 5명이다. 구금자 최소 1명이 모의 처형으로 협박받았고,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는 5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

물고문의 일종인 ‘워터보딩(상대를 눞혀 얼굴에 물을 붓는 행위)’을 받은 구금자는 3명이며, 이 중 183회의 ‘워터보딩’을 받은 이도 있었다.

119명 가운데 1년 이상 넘게 구금돼 있던 용의자가 47명이며, 관타나모 수용소에 아직도 15명이 수감돼 있다. NBC는 CIA가 이런 ‘선진 심문 프로그램’ 개발에 모두 8000만달러(884억원)를 썼다고 보도했다. CIA는 2002년 심리학자 등 전문가 그룹과 1억8000만달러 규모로 계약했지만,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구금자에 대한 고문이나 잔혹한 처우를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EO)에 서명한 뒤 계약 조건의 일부인 8000만달러만 지불했다.

계약 상대방인 워싱턴주 스포케인에 있는 ‘미첼, 제슨 앤 어소시에이츠’의 제임스 미첼 심리학 박사는 ‘SERE(Survivalㆍ생존, Evasionㆍ도피, Resistanceㆍ저항, Escapeㆍ탈출)’이란 이름의 고문을 견디는 방법 개발자로, CIA와 협력해 20가지 고문 기술을 개발했다.

최종적으로 10가지고문기술은 폐기됐는데 테러용의자에게 조차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바마 “과거 직시하는 것이 미국의 힘”= CIA가 2001년 9ㆍ11테러 직후부터 2008년까지 유럽과 아시아의 비밀 수감소에서 테러 용의자를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한 실태 보고서의 요약본이 공개되며 전세계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 이슬람 무장세력의 반인륜적 범죄를 처단하고자 국제사회 힘을 결집시키고 있는 미국이 실상 자신도 국익이란 명분 아래 여러 잔인한 방식으로 인권 침해를 벌여 온 위선이 발가벗겨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 미국의 최고 덕목에 흠집이 불가피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발을 의식한 듯 “이번 보고서 공개가 해묵은 논쟁을 재점화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이번 사안은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며, 미국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강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CIA의 고문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며 미국의 위상에도 타격을 줬다고도 했다.

그는 특히 “이런 가혹한 고문은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에 중대한 타격을 주고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앞으로는 절대 이런 방법(고문)에 의지하지 않도록 내 권한을 계속 행사하려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언론, 미국의 결단에 박수=오바마 대통령의 ‘고해성사’와 같은 이같은 결단에 주요 서방 언론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국외 시설 및 기지에 대한 테러 위협 증가, 민주인권 국가로 알려졌던 미국의 위상 추락, 중국과 북한의 대대적인 역공 등 CIA 고문보고서가 몰고 올 각종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솔직하게 ’어두운 과거‘를 자백했기 때문이다.

독일 공영방송 DW는 논평에서 “글로벌 슈퍼파워 미국이 스스로 깨끗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인권을 비난할 수는 없다”며 “부시 정부 시절 CIA의 도넘는 행동에 의해 잃어버린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을 인식하고 책임을 받아들어야한다”고 했다.

DW는 또 보고서 공개로 해외 거주 미국인의 안전과 미국 외교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공화당 등 일각의 비판에 대해 “완전 잘못된 판단이다. 오히려 미국 외교정책을 회복시켜줄 것이다”고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보고서 공개는 국가의 책임에 관한 지표”라고 호평하면서도 “이제 의문은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 것이냐다. 미국은 이를 반복하지 말아야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확연히 다른’ 역사관에 주목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국내 정치에 얽매여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등 역사적 사실을 계속 왜곡하고 있는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의 치부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개선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알권리 재갈 물리는 아베…특정비밀보호법 10일 발효=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고문 보고서 공개로 과거를 직시한 것과 달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특정비밀보호법’ 강행으로 우경화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10일 본격 시행되는 특정비밀보호법은 국가 안전보장에 관련된 주요 정보를 누설한 공무원 등에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정보를 누설한 공무원과 민간업자는 최대 징역 10년에 처해진다. 기존의 국가공무원법보다 처벌기간을 10배 늘리는 것으로, 언론인을 포함해 정보 유출을 부추긴 사람도 징역 5년까지 처벌할 수 있다.

비밀 지정 기간은 원칙적으로 5년이면 해제되지만 장관들의 판단에 따라 3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내각 승인을 받으면 60년까지 연장할 수 있고, 암호 등은 예외적으로 60년 이상 지정할 수 있다. 사실상 특정비밀에 대한 빗장을 풀지 않겠다는 의미다.

아사히신문은 “특정비밀보호법 발효됨에 따라 그동안 ‘특별관리비밀’로 지정됐던 47만1000건의 기밀이 자동으로 ‘특정비밀’로 이행된다”고 전했다.

특정비밀보호법이 발효되자 일본 내에서는 국민의 알권리 침해와 언론에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법률 시행 하루 전날인 9일 총리공관 앞에서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집결해 특정비밀보호법 철회를 요구했다.

일본신문협회와 문인단체인 일본펜클럽은 “압제국가로의 복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본펜클럽은 “정부가 군사정보는 물론 어떤 곤란한 정보도 임의적인 방법으로 감출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민간업자의 인권침해 논란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밀법 취급 적성평가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국가 비밀 취급 공무원은 6만5000명, 방산관련 민간업체 30개사의 취급자는 3300명으로 추산됐다.

28페이지에 달하는 적성평가 설문지의 질문 항목은 스파이 활동과 테러와의 관계 이외에도 범죄기록과 약물남용, 정신질환은 물론 술버릇과 대출금까지 세세한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또 여행경력과 병력 등은 관련기관에서 정보 조회도 가능하다.

일본 정신신경학회는 “원래 정신질환과 비밀 누설은 인과관계가 없다”며 “환자와의 신뢰만 무너진다”고 비판했다.

한 의료 관계자들은 “의료기관 조회에 동의하지 않으면 비밀업무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동의 자체가 반강제적”이라고 꼬집었다.

소가베 마사히로 교토대 교수(헌법학)는 “비밀 지정의 남용을 방지하는 구조가 지나치게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내에 설치된 독립공문서관리감독관 등 감시기관이 한 건 씩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제3자의 관점도 반영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정보관계법과의 관계도 정리되지 않았다”며 “무엇이 비밀로 지정된지 모른채 비밀 지정이 적정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른 시일내에 법률 개정을 통해 확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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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비밀보호법= 일본 국가기밀 누설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법안. 2007년 이지스함 정보 유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이 법안은 ▷방위 ▷외교 ▷스파이 활동 ▷테러 방지 4개분야 55항목 중 공표할 경우 안보에 현저한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정보를 특정비밀로 지정, 이를 누설하면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언론인 등 누설을 공모하거나 부추기는 사람도 최고 5년의 징역에 처해진다. 방위성, 외무성,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19개 행정기관이 권한을 갖는다. 일본 정부는 각 부처가 제각각으로 다뤄온 41만여건의 기밀 정보를 ‘특정 비밀’로 일원화하고 안보협력 및 테러방지를 위해 미국 등 동맹국과 정보공유를 위한 안전장치라고 취지를 설명했지만 일본 내에서는 국민의 알권리 침해라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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