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친족성폭력 겪은 푸른나비

40대 후반돼서야 피해 명확히 인지

“공소시효 전면폐지, 최소한의 안전망”

“피해 축소하는 발언·표현 멈춰야”

헤럴드경제는 8살부터 10년 넘게 벌어진 친족성폭력의 생존자인 50대 여성 푸른나비(필명)을 만났다. 그는 책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 집필작가 중 한 명이다. 푸른나비는 40대 후반이 돼서야 지난 날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푸른나비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전면폐지와 가해자와 분리될 수 있는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는 8살부터 10년 넘게 벌어진 친족성폭력의 생존자인 50대 여성 푸른나비(필명)을 만났다. 그는 책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 집필작가 중 한 명이다. 푸른나비는 40대 후반이 돼서야 지난 날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푸른나비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전면폐지와 가해자와 분리될 수 있는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오는 25일부터 내달 1일까지는 세계 여성폭력 추방주간이다. 친족성폭력은 여성폭력 중에서도 사각지대로 꼽힌다. 가족 내 범죄로 지속·반복되지만 은폐 또한 쉬워서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성폭력 피해상담자 10명 중 8명이 19세 이전에 피해를 겪는다.

24일 헤럴드경제는 8살부터 10년 넘게 벌어진 친족성폭력의 생존자인 50대 여성 푸른나비(필명)를 만났다. 그는 책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의 집필작가 중 한 명이다. 푸른나비는 40대 후반이 돼서야 지난 기억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와 피해자의 ‘아플 시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푸른나비와의 일문일답.

-한국성폭력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성폭력 피해자 2명 중 1명은 첫 상담을 받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피해를 제대로 인지하고 말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생존자로서 피해를 말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가정폭력을 피해 원가족과 온전히 분리되면서 이전의 기억을 돌아보게 됐다. 상담 받으면서 내가 겪은 일이 범죄란 걸 깨닫게 됐다. 친족성폭력 경험을 외부에 말할 수 있게 된 건 40대 후반이었던 2015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자조 모임을 가게 되면서다. 나랑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너무 궁금했다. 20대~30대 때는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명확하게 인지를 못했다. 살면서 기억이 올라오면 컵을 못 들거나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해리성 기억상실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기억이 남 일처럼, 스쳐 지나가는 환상처럼 느껴졌고 그게 이상한 증세인지 모르고 살았다. 억압된 상태에서의 망각이었던 거다.

-10년 넘게 범죄가 벌어졌다. 어떻게 멈추게 됐나, 가해자는 처벌받았나?

▶고3 때는 엄마가 가해자인 아버지를 향해 ‘대학 가야 하니 (딸을) 놔둬라’ 했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돼서도 범죄가 벌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홀로 살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이다. 13세 이상 대상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는 최장 10년(단, DNA 등 죄를 증명할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10년 연장 가능)이다. 14살에 범죄를 겪은 아이가 DNA 증거를 챙겨놓고 20대 성인이 됐다고 바로 신고를 할 수 있을까.

피해자라고 인정하면 뿌리를 잘라내는 고통이 있다. 다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밟고 선 땅이 무너지는 느낌 말이다. 피해를 인정하는 일이 무서웠다. 가족이란 끈이 떨어져나가는 일인데 감내하고 잊으라는 얘길 들었다. 여동생은 ‘언니가 반항하지 않아서’, 친척은 ‘전생에 너가 죄를 지어서’라고 피해를 당하게 된 거라고 말했다.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신고하면 가족의 내부고발자가 되는 거였다.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뿐 아니라 나머지 가족과 평생 연결돼 있다. 50대가 된 지금도 가족 중 제가 겪은 일을 아직도 모르는 동생도 있다. 그래서 익명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인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강요한 엄마도 가해자라고 서술했는데?

▶엄마는 범죄 사실을 알고도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으라’고 했다. 엄마도 딸을 기절시킬 만큼 나를 학대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엄마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부모와 완전히 분리되고 나서야 엄마의 방조가 범죄를 오히려 조장했다는 걸 알게 됐다.

친족성폭력 관련 공소시효 전면폐지를 요구하는 모임 ‘공폐단단’의 전단지 [공폐단단 제공]
친족성폭력 관련 공소시효 전면폐지를 요구하는 모임 ‘공폐단단’의 전단지 [공폐단단 제공]

-푸른나비는 공소시효 전면 폐지를 계속 주장해 왔다. 왜 꼭 필요한가.

▶가족이란 관계는 시효가 평생이다. 친족성폭력은 가정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내 ‘범죄’다. ‘가족이니까 용서하라’가 아니라 ‘가족이니까 더욱 용서할 수 없다’여야 하지 않나. 공소시효 전면 폐지는 경고 역할을 할 수 있다. 피해자가 저처럼 독립한 이후, 신고를 결심하거나 증거를 찾기 시작할 힘이 생겼을 때 언제든 고소할 수 있는 게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생각한다.

-범죄로 겪은 피해 극복을 위해 받은 상담 외 지원은.

▶없다. ‘(범죄를) 교통사고처럼 생각하라’는 말도 들었는데 교통사고는 보상이라도 받지 않나. 40대 후반 기억이 되돌아왔을 때 평소처럼 일할 수 없었다. 신체화 증상이 심해져 10년 넘게 해 온 일을 멈춰야 했다. 경제적인 안정과 ‘아플 수 있는 시간’이 정말 필요했다. 아동·청소년이라면 더욱 대체가족이나 당장 쉴 곳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쉼터를 나오고 나서의 자립까지도 스스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친족성폭력 피해를 인지하거나 목격한 사람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일단 피해자의 말을 처음 들어줄 사람, 가족과 분리될 수 있는 물리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안 돼 있다. 막상 얘기를 하면 ‘그런 일이 있었어?’ 물어보기 쉽지 않다. 안내가 그래서 필요하다. 친족성폭력에 대한 인식부터 성폭력상담소를 알려준다거나 생존자들이 쓴 책을 넌지시 건네주는 일까지 말이다. 가해자들은 평범한 사람, 겉으로는 괜찮아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댓글에선 사람들이 분노하지만 막상 주변에서는 피해를 외면하는 일이 벌어진다. 피해를 축소하는 표현도 멈춰야 한다. ‘이뻐해서 그런 거다’, ‘너를 건드렸다’, ‘몹쓸 짓’이라는 표현은 지금도 싫어하는 말이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12시 서울 광화문 칭경비 앞에서 공소시효 폐지 시위를 한다. 피해자들이 경험을 나누고 연대하는 ‘친족성폭력 생존자 축제’를 2년째 열었다. 행진할 때 관심 갖고 응원해 주시는 분이 많아 사실 놀랐다. 기운을 얻는다. 지속·반복·은폐되는 친족성폭력에 대해 저희는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공론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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