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실험 속 탄생한 이승조 ‘핵 10’

“현대문명 상징체로 등장시킨 것 아냐”

작가의 항변에도 산업문명의 상징으로

추상 회화 소재...그 이상의 의미 없어

이승조, 핵 10, 129.5 x 130 cm, 1968 [국제갤러리 제공]
이승조, 핵 10, 129.5 x 130 cm, 1968 [국제갤러리 제공]

화면은 흑과 백으로 나뉜다. 다만 그 흑과 백 사이 얇은 빨강, 파랑의 얇은 색면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홀로 입체적인 하늘색의 기둥이다. 파이프 작가로 유명한 이승조(1941-1990)의 ‘핵(核) 10’이다. 1968년 제작된 것으로 같은해 4월 조선일보가 주최한 ‘현대작가초대전’에 출품됐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기점으로 이승조의 파이프 시리즈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어쩌다 원기둥이 나타나게 됐는지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후배작가인 박승범은 “이 붓이 넓다 보니까 한 가지 색만 놓은 게 아니라, 팔레트 위 빨간색 근처에 흰색이 있단 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하다가 여기 흰색이 묻고, 그 옆에 빨간색이 묻으면 이건 밝고 저건 어두워졌잖아요. 칠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이게 둥근 맛이 난 것”(조수진, 핵 연작-한국적 모더니즘의 또 다른 가능성, 2020)이라고 했다. 신항섭과 인터뷰에서 이승조는 “기차 여행 중에 망막을 스치는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경험한 이후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라고 말했다. 미루어 보건데, 수많은 실험 속에서 우연히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승조 작가는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해방기에 가족과 함께 남하했다. 1960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고 1962년엔 권영우, 최명영, 서승원등과 함께 전위그룹 ‘오리진’을 결성한다. 그룹의 이름처럼 작가는 기존 미술제도와 기득권에 반해 순수하고 근원적인 조형언어를 탐구했다.

‘핵 10’을 시작으로 이승조는 유명세를 탔다. 같은해 7월 부산 동아대학교의 제 1회 동아국제미술전에서 ‘핵 77’로 대상을 수상하고, 9월 제 17회 국전에서 파이프가 V모양으로 배열된 ‘핵 90’으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임영방은 해당 작품을 놓고 “명제 ‘핵’에 부합하는 적절한 표현으로 기계문명의 요소와 과학성이 개재되고 구축되어 현대감각을 과시한다”고 평했다. 당시 작가의 나이는 27세였다.

정작 작가는 별 감흥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를 ‘파이프 통의 화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별로 원치도 않고 또 싫지도 않은 말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모티프를 전제하지 않은 반복의 행위에 의해 착시적인 물체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현대문명의 한 상징체로서 등장시킨 것도 아니다” 작가의 이같은 항변에도 산업문명의 상징으로 이해됐다.

평론가 이일은 “조형의 기본원리인 규칙적인 반복의 질서를 통해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말하는 ‘자기환원적 추상’, 다시 말해서 ‘탈회화적 추상’의 세계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추상 회화의 소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명한 파이프를 놓고 구체적인 사물을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파이프들이 여럿 나란히 놓인 형상 앞에선 캔버스를 뚫고 나오는 리듬감이 무척이나 강력하다. 더불어 형광등 작가인 댄 플래빈(1933-1996)의 설치작업도 떠오른다. 작가가 탐구하던 ‘핵’은 2020년대 한국에서 어떤 형태로 발현됐을까.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이달 말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