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 20일 회견…선감학원 폐원 40년만에 진실규명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수용자 4600명 전원 피해자”

김동연 경기지사도 피해자에 공식사과

“생활지원 등 피해지원체계 마련” 약속

정근식(연단 왼쪽)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장과 김동연 경기지사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정근식(연단 왼쪽)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장과 김동연 경기지사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일제강점기부터 40년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인권유린이 자행된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폐원 40년 만에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란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이 나왔다. 피해자들에 대한 경기도 차원의 공식 사과도 처음으로 이뤄졌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진화위)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4600여 명)이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다”며 “신청인 김영배 외 166명은 선감학원 피수용아동임이 확인돼 아동인권 침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에는 정근식 진화위원장과 김동연 경기지사, 피해자 9명 등이 참석했다. 지난해 5월부터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 등 191명의 신청을 받아 선감학원 사건 조사를 해온 진화위는 이달 18일 제43차 위원회를 열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번 진실규명에 포함되지 않은 23명에 대한 조사도 현재 진행 중이다.

진화위가 진실규명 신청인들의 진술에 따라 지난달 시굴을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5곳에서 원생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 68개와 단추 6개가 발견됐다. 진화위는 “원아대장상 사망자 수에 비해 봉분이 훨씬 많아 신속한 유해 발굴을 통해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진화위는 원아대장 사망자 수(24명)보다 봉분이 훨씬 많고, 원생 800여 명이 탈출을 시도했던 점에 근거해 실제 사망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진화위가 추가 확인한 사망자는 5명이다.

또 원아대장에 기록된 4689명의 퇴소 사유를 보면 전체의 17.8%(824명)이 ‘탈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봉분에서 발견된 치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봉분에서 발견된 치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선감학원 운영 과정에서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벌어졌다는 진술도 나왔다. 선감학원생들은 밭농사, 논농사, 염전 등 고강도 강제노역에 보수없이 투입됐다. 식사량이 부족해 원생들이 쥐와 뱀을 잡아먹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화위는 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하면서 “정부의 부랑아 정책과 제도에 따라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부랑아로 지목한 불특정 아동을 법적 근거 없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강제로 단속한 후 선감학원에 강제 구금한 것은 국가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김 지사의 공식 사과와 피해자 지원대책 발표도 이뤄졌다. 김 지사는 “국가가 어린이 수천 명의 인권을 유린한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지방자치 시행 이전 관선 도지사 시대에 벌어진 심각한 국가 폭력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으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경기도지사로서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김 지사는 “피해자 생활지원을 위한 생활안정지원금 지급을 검토하고, 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하여 피해지원 기능을 체계화하겠다”고 했다. 이어 “트라우마 해소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피해자의 일상회복과 정신건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의료서비스 지원을 내실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선감학원 묘역 정비·추모비 설치 ▷희생자 추모공간 조성 ▷추모문화제 확대운영도 약속했다. 이어 이미 추진 중인 ▷정서안정 지원 ▷선감역사박물관 운영 ▷피해상담·사례발굴 사업 등에 대한 보완도 언급됐다.

피해자 지원대책을 위한 경기도 예산반영은 내년 1분기 중 추경 시점에 대부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김동연 지사는 “지원 규모에 대해선 정밀한 검토까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국가 차원의 사과와 함께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김동연 지사는 “빠른 시간 내에 국가 차원의 사과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특별법도, 정부 입법으로 추진됐으면 좋겠지만 필요하다면 다양한 입법 방법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이후 김동연 지사는 정근식 위원장과 함께 현장에 방문한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들에 각각 악수를 청하며 사과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동연 경기지사가 피해자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고 있다. [연합]
2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동연 경기지사가 피해자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고 있다. [연합]

이번 진실규명 신청인인 김영배 회장은 “행정적 문제를 떠나 피해자들의 나이가 많다는 것이 중요하다. 해마다 몇 분씩 돌아가시고 있다”며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다른 피해자도 “수용 당시 수많은 구타를 받아 이제 조금씩 몸이 고장나고 있다”며 “정신적 트라우마도 심각하다. 일을 열심히 하다가 좌절감을 느끼는 게 뭔지 몰랐는데 트라우마였다”고 했다. 이어“(피해자들의) 생활고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조속한 지원을 요구했다.


k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