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과거 한류는 일본, 중국, 동남아 정도에 국한됐다. 요즘은 북중남미, 유럽이 더 핫하다. 지난 15일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BTS 콘서트를 즈음해서는 명동, 광화문, 홍대앞 등 서울시내에도 서양인 관광객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서양인들이 K- 콘텐츠에 열광하는 게 처음에는 신기했다. BTS에 이어 K-드라마, K-무비도 서양인들이 좋아할만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K-콘텐츠는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생긴 양극화와 빈부격차, 남녀갈등, 계급갈등 등이 서양인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강력한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과도한 현상과 그에 대한 왈가왈부와 갑론을박이 SNS상에서 결합돼, 논의거리가 풍부해진다. 이는 때로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는 좋은 조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K-콘텐츠에는 자본주의로 인한 경쟁사회의 잔인함을 먼저 체험한 서양의 국가일수록 더욱더 공감력과 몰입력이 생긴다는 사실은 데이터가 증명한다. ‘오징어게임’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이 유독 많은 리뷰를 내놨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생긴 과도한 경쟁심과 역동성 등이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절대 유리하다. 조직사회의 괴롭힘(갈굼)문화는 ‘D. P.’를 낳았고, 경쟁 사회의 위험성과 피곤함은 ‘오징어게임’과 ‘갯마을 차차차’를 낳았다.
‘오징어게임’에는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고, 모순을 지적한다. 이 경쟁에서 불리한 해고 근로자, 노인, 여성, 외국인 노동자, 탈북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경쟁에 진 자를 그 자리에서 죽게 만드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을 것 같다.
경쟁 사회의 정신적 피곤함은 번아웃 증후군에 의한 슬로라이프에 대한 동경이나, 각종 길을 걷는 것의 유행으로도 이어진다. 우리나라에는 관광공사에 등록된 길(Trail, 걷기여행길)이 500개가 넘는다. 콘텐츠로 무한경쟁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 가치를 생성하기에는 대한민국만큼 좋은 곳이 없다.
국가가 어지러울수록 시인들은 할 일이 많고 존재감을 알릴 수 있어 좋다는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을 바꾸면 ‘사회불행제작자행(社會不幸製作者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국가불행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함께 섞여있는 상태다.
게다가 필자가 서양 언론인만 만나면 물어봤던 K-콘텐츠의 차별성에 대한 답변에서도 우리의 강점이 잘 드러난다. 미국 드라마는 현업의 산물일 수 있는 사건 전개의 치밀성과 플롯의 완결성이 좋다면, 한국 드라마는 정(情)이나 휴머니즘 등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가는 깊이와 디테일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콘텐츠 글로벌 시대에는 이 같은 한국적 토양 아래에서 뽑아내는 스토리와 그속에서 가치와 의미, 철학을 생성하는 일에 한국 콘텐츠제작자들이 주목해야 한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