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美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응

반도체 기업, 美·칩4·업황 ‘삼중고’

민관합동대응반, 핵심산업 지키기

WTO·FTA 협정 위반도 검토 나서

IRA 발효로 자동차 업계도 위기

“한국산, 보조금 대상 포함해야”

미국이 반도체·전기차 등 자국 산업 보호와 중국 견제를 담은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위기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일부 ‘독소조항’에 맞서 정부는 유럽연합(EU)와 공동대응하는 한편 기업들과 ‘민관 합동 대응반’을 긴급 구성키로 했다. 최악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통상규범 위반 의견 제출까지 검토하기로 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민관합동대응반 구성, WTO제소 ‘최후 수단’=산업통상자원부는 이창양 장관 주재로 2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 간담회’를 열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반도체·배터리·자동차 기업 관계자를 비롯해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전지산업협회 등 업종별 단체가 참석했다.

정부는 최근 미국이 법안을 통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고 민관 합동 대응반을 구성해 미 행정부 및 의회와의 협의를 다각도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반도체 지원법은 메모리 등 범용 반도체 관련 설비에 대해 가드레일(향후 10년간 중국 및 우려 대상국 내 신규 투자 일부 제한) 조항 예외를 인정하는 만큼 이를 활용해 미 상무부와 협의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필요할 경우 이미 구축된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과 공급망·산업 대화 채널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안성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다음주 미국에 파견해 고위급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도 다음달 8∼9일 열리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급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의견을 전달한다.

또한 정부는 IRA(인플레이션감축법)가 미국 상원을 통과한 직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한미FTA 등 국제 통상 규범에 위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동시에 EU, 독일 등과 협력해 공동 대응 방안 모색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WTO 제소는 최후의 수단이며 미국과의 양자 간 협상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양(오른쪽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비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창양(오른쪽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비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중국 투자 제한에 업황 둔화되고 가력 하락 ‘삼중고’=반도체 지원법은 미국 내 반도체 신규투자에 대해 투자세액공제 25%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지원을 받은 기업은 ‘가드레일 조항’에 따라 향후 10년 간 중국과 같은 우려 대상국의 신규 투자가 제한된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계획하면서 중국에도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미 정부와 논의를 통해 지원을 받으면서도 투자 제한을 피하는 묘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 주도의 ‘칩4(팹4)’ 협력도 수교 30년을 맞는 중국과의 관계를 냉각시키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칩4에 참여할 수 밖에 없지만 중국이 배제된 칩4도 단기적으로는 외교·경제적 위험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수위는 다소 낮아졌고 보복조치를 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지만 중국은 여전히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암울한 시장 성장률은 기업들의 근심을 더하고 있다. 최근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가 발표한 세계 반도체 시장 전망치를 보면, 올해 메모리 시장 성장률은 기존 전망치보다 10.5% 포인트 낮은 8.2%다. 지난해 시장 성장률은 30.9%였다. 내년엔 0.6%로 더 하향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의 영향으로 3분기 낸드플래시 가격이 2분기보다 13~18%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위축으로 전방산업 재고가 축적된 상태에서 제품 수요가 줄며 가격은 점점 하락세다. 생산을 줄이면 경쟁사에 점유율을 뺏기고 오히려 손실이다. 가격하락을 감수해야 하니 수익성은 점차 나빠진다. 수요전망이 좋지 않아 추가적인 설비투자도 고민된다. IC인사이츠도 내년 반도체 설비투자(CAPEX) 감소를 전망했다.

▶자동차 업계, 연간 10만대 전기차 수출 차질 우려=IRA가 발효되며 자동차 업계도 위기에 빠졌다. 현대차·기아는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정부는 당장 올해부터 한국과 일본, EU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차들이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RA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본 요건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로 한정하면서 이를 즉시 적용하겠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이번 법안 발효로 매년 10만여대의 한국산 전기차의 수출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브랜드는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2위였지만, 법안으로 순위가 흔들릴 위기에 놓였다.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1만3000여개 부품업체들 역시 수출 차질 등으로 큰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현지에 생산체제를 구축한 포드, 제너럴모터스(GM), 테슬라 등 미국 업체들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한국 국회 및 정부가 협상에 적극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는 한미간 경제안보 동맹관계를 고려, 한국산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미국 전기차 수출업체에 대한 법인세 감면, 전기차 수출 보조금 한시적 지원, 국내 보조금 제도 개선 등 자체적인 지원도 요구하고 있다.

문영규·배문숙·김지헌·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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