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한국 출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삶이 무너진 한 작가가 쓴 ‘전쟁일기’가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간됐다. 문학동네 새 임프린트 이야기장수의 첫번째 책으로 나온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다. 이 책은 기 출간된 원서 없이 우크라이나 작가와 한국의 편집자가 직접 소통, 완성해낸 현장 기록물이다.
책은 행복했던 ‘여우가족’의 천개의 계획과 꿈이 전쟁으로 어떻게 산산이 무너지고 회복할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마음에 남기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올가 그레벤니크는 하리키우에서 태어나 수만 명의 SNS팔로어를 가진, 세계 각국에서 그림책을 출판해온 작가다. 올가는 2022년 2월23일 남편이 만든 수제버거를 먹으며 새로 장만한 아파트를 어떻게 꾸밀지, 아이들의 학원문제를 얘기하며 보통의 날을 보낸다. 아늑한 일상은 다음날 새벽 5시, 폭격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면서 순식간에 무너진다.
올가는 맨 먼저 어린 아들과 딸을 깨워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었다. 왜 적는 거냐는 아이의 물음에 전쟁놀이라고 얘기한다. 자신의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올가는 그림 그릴 노트와 연필을 챙겨 아이들과 함께 마을의 지하실로 피신한다. 올가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전쟁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창작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글과 그림은 내가 온 힘을 다해 붙잡는 지푸라기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분필을 가져와 벽에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
방공호가 된 마을의 지하실에는 임산부와 어린아이들, 노인들이 빼곡히 모였다. 폭발음이 들리지 않으면 집에 올라가 먹을 것을 챙기고 동태를 살피다가 미사일이 떨어지면 아이와 강아지를 안고 지하실로 피신하는 일이 반복됐다.
전쟁 9일째 올가는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두고 갈 수 없어 함께 하지 못했다. 기차역 플랫폼에 도착, 기차에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르포프(르비우)로 가는 기차였다. 하룻밤을 자고 바르샤바로 향하면서 남편과 헤어졌다.
올가는 “내 마음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뚜껑으로 막아놓았을 뿐이다.”고 썼다. 바르샤바 호텔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했다.
올가는 그림 블로그 팔로어들로부터 불가리아에 임시숙소를 제안받아 3월16일 소피아에 도착, 현재 불가리아 소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매일 밤 난 꿈에서 남편과 내 고향도시를 본다. 잠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저자는 내가 이 일기를 적는 이유는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고 강조한다.
책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암담한 지하생활을 거쳐 탈출까지 올가 가족이 실제 겪은 상황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일기다. 작가의 다이어리 실물 사진을 그대로 받아 한국어로 세계 최초로 출간한 것이다. 전쟁중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없어 작가의 정밀하고 화려한 색감의 그림 대신 거친 연필선만으로 그린 그림일기를 그대로 담아냈다.
눈물의 피난열차와 난민 지원센터, 낯선 이들의 환대와 도움, 불가리아의 창문 밖 풍경에 경이로워 하는 올가의 눈과 손끝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전쟁일기’의 인세는 아이들과 함께 불가리아에서 임시 난민 자격으로 거주하고 있는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에게 바로 전달되며 번역료 전액과 출판사 수익 일부는 저자가 추천한 기관인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한다고 출판사 측은 밝혔다.
이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