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고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되던 날, 재수하겠다며 삭발하였다. “미리 이럴 각오로 공부했으면 고등학교 과정을 3년에 마쳤을 텐데”라는 말을 목구멍에서 꾹 눌렀다. 나름 성실했는데 얼마나 속상했으면 이럴까 하는 생각에 “겨울인데 춥겠네”라면서 씩 웃어줬더니 멋쩍게 따라 웃는다.

지옥 같은 고3 생활을 반복할 만큼 공부가 최우선인 사회다. 서열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동물인지라 본능적으로 서열을 정하는데 공동체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 모든 구성원이 승복할 만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시 시대에는 힘이었지만 국가의 틀이 정비되면서부터는 신분 계급이 서열을 정하는 기능을 하였다.

조선 시대를 보더라도 양반, 중인, 상민, 노비 등의 신분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등 잦은 전쟁으로 양반임을 증명할 족보가 대거 소실되고, 후기에 이르러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납속책, 공명첩이 등장하여 돈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될 수 있으면서 붕괴되기 시작하다가 6·25전쟁과 급격한 도시화로 현재 신분제도는 사라졌다.

헌법 제11조 2항도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분제도가 없는 사회에서 가장 공정하게 서열을 정하는 방법은 시험이 되었다. 집안이 아닌 개인끼리 경쟁해서 1점이라도 높은 사람이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시험 한 번 잘 쳐서 평생 대접받으며 살아온 부모의 경험과 공부 못해서 현재 고생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자녀의 의사나 적성과 무관하게 시험의 지옥으로 몰아넣으며 무조건적으로 성적 올리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신나게 통닭집을 운영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필자에게 스크린골프 강습을 해주는 친구가 있다. 타고난 몸치인지라 20년 넘게 백돌이인 필자가 열심히 연습한다고 싱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책만 펼치면 잠이 온다는 그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될 것을 기대하는 것 역시 난센스다. 획일적인 성적 평가가 아니라 각자 적성에 맞추어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만들어주는 교육과정의 마련이 절실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 시험으로 서열을 정하는 불합리한 방식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꿈 많은 시절을 좀비가 공격해대는 것 같은 지옥 속에서 살게 하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제도를 수시로, 너무 쉽게 변경한 것도 큰 문제다. 잘못된 보여주기식 교육정책 때문에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 어린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행복해지려고 하는 공부가 오히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선후보마다 교육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누가 당선되든지간에 5년의 짧은 임기 동안 완벽한 교육제도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백년대계의 주춧돌 하나라도 제대로 놓기를 바란다. 국민의 인식을 공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변화시키고, 실제로 어떠한 분야에서든 최선을 다하면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모든 아들, 딸에게 서열주의에 밀려 재수(再修)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참 재수(財數) 좋다’고 느끼는 교육제도를 선물해주기를 학부형의 한 사람으로 소망한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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