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갈등, 지역 갈등에 이어 이제는 젠더 갈등이다.’

요 며칠 정치권에 불어닥친 ‘쥴리 벽화’와 ‘안산 페미 논란’을 본 솔직한 감상이다. 젠더 갈등이 단순한 사회문제를 넘어 정치세력의 지지 여부를 가르는 판단의 잣대가 되면서 정치권의 셈법도 복잡해지는 눈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젠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지한 담론은 뒷전으로 밀리고, 관건은 ‘누가 우리 편인가’하는 점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젠더 이슈를 취사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젠더 갈등은 지지층 결집의 도구, 혹은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 일쑤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를 겨냥한 ‘쥴리 벽화’에 대한 비판이 인권침 해와 여성 혐오 논란으로 번지자 뒤늦게 비판 입장을 냈다. 민주당이 해당 사안에 대해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면서 ‘진영 논리에 따라 여성 혐오를 방관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대변인은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를 둘러싼 온라인상의 페미니즘 논쟁을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다. 사적 의견이라지만 안산 선수가 이른바 ‘남혐(남성 혐오)’ 단어를 쓴 것이 문제라는 지적에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발언이라는 비난이 집중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대변인의 발언을 두둔하며 정의당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통상 양비론은 무의미·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지만 적어도 젠더 갈등을 대하는 행태는 여야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다. 논란의 단초는 다른 곳이었다지만 갈등을 키우고 공론화시킨 것은 정치권이다.

젠더 갈등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성별 간 대결구도를 넘어 세대 갈등과도 결합하면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의 고질병으로 이념·지역 갈등이 꼽혔다면, 이제는 젠더 갈등에 기생하려는 정치권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흔히 ‘MZ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는 젠더 이슈에 민감하고, 이들은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거치며 내년 대선의 ‘캐스팅보트’로 주목받는 상태다.

민감한 성차별 이슈인 데다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을 위험이 있지만 그만큼 젠더 갈등의 정치적 파급력 역시 커진 셈이다. 정치권이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젠더 갈등이 수차례 정쟁의 한복판에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쥴리 벽화’는 보수·진보 지지층의 격렬한 충돌 끝에 흰색 페인트로 뒤덮였지만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안산 페미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사전에 명시된 ‘정치’의 정의 가운데 일부다. 갈등을 먹고사는 시대착오적 정치는 이제 끝낼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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