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판단과 배임 고의성 경계 모호

절반 이상 집유…“현실성 없다” 비판

액수 외 양형기준 세분화 필요 지적도

기업범죄 수사시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사범 무죄율이 11%대로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은 배임 범죄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대법원은 경영판단을 배임죄 면책사유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따지는 추세고 실제 ‘표적 수사’ 논란이 큰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2016년 검찰이 4개월동안 대대적으로 벌인 롯데그룹 수사가 대표적이다. 정책본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단서로 수사에 착수했던 검찰은 나중에는 신동빈(63) 회장에게 1249억원대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신 회장은 롯데시네마 매점에 영업이익을 몰아줬다는 일부 배임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을 뿐, 주된 혐의인 ‘롯데피에스넷’ 지분인수 과정에서의 배임 혐의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형제의 난’으로 불리며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사건도 배임액 179억원 부분에 무죄가 선고됐다.

과거 배임혐의로 기소된 기업인들에게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관행처럼 선고했다. 경영판단에 따른 위험부담을 처벌하는 게 옳으냐는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한 셈이다. 실제 재산범죄에서 횡령·배임죄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중 집행유예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자유형이 선고된 횡령과 배임죄 사건에서 집행유예 비중은 54.10%를 차지했다. 최근 5년간 5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사기나 공갈죄는 집행유예 비중이 30%대, 절도와 강도죄는 30%대 후반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현행 양형기준상 배임액이 1억원 이상이면 실형을 선고하도록 하고, 액수가 300억원 이상이라면 징역 5~8년의 중형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양형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1000조원대 이상의 거래를 하는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 규모를 감안하면 300억원이라는 액수를 기준으로 징역 5년이 넘는 실형을 선고한다면 기업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배임죄 비범죄화를 주장하고 있는 재계 관계자는 “1960년대 국민소득이 적을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 글로벌 기업이 돼 세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거대한 물량을 가진 기업 입장에서는 300억원이라는 기준이 현실적이라고 느끼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반면 형사사건에 정통한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한해 몇조씩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300억원이라는 돈이 큰 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달라질 수도 있다”며 “기업인의 배임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기업경영상 판단으로 인한 것인가를 따져 전자에 강한 형벌을 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단순히 액수를 기준으로 따질 게 아니라 양형 요소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해 손해를 입혔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실제 경영판단을 내린 사람이 이득을 취하지 않고,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았더라도 ‘위험’을 발생시켰다면 혐의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재계에서는 배임죄 적용을 엄격하게 따지면 기업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반면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이는 우리나라 대기업 특성상 부당 계열사 지원 등으로 주주에게 손해를 입힐 위험이 크기 때문에 성급하게 비범죄화 논의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한 형사정책 전문가는 “배임죄가 다른 범죄에 비해 무죄율이 높다는 것은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규정돼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법 적용에 있어 구체적인 기준을 발견하기 어렵다 보니 무죄가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좌영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