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에 직권남용 등 혐의 44차례 공범으로 기재 -재판개입, 판사 뒷조사, 예산유용 개입여부 관건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과 ‘떠넘기기’ 구도 될 수도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11일 검찰 조사를 앞둔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은 이미 임종헌(60·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공범으로 기재됐다. 11일 대면조사를 앞둔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거나, 최소한 묵인한 정황이 있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11일 오전 9시30분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개입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개별 혐의를)파악했기 때문에 소환을 통보했다”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전직 대법원장을 모셔서 조사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임 전 차장과 공범으로 기재된 만큼 기소 방침은 이미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역시 공소장에 이름을 올린 박병대(62·12기), 고영한(64·11기) 두 전직 대법관과 함께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도 있다.
먼저 조사를 받은 임 전 차장과 두 전직 대법관, 양 전 대법원장 사이에 ‘떠넘기기’가 이뤄질 수도 있다. 수사 초반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실에 대해 진술하던 임 전 차장은 구속 이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전직 대법관은 자신들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주도하거나, 승인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이 임 전 차장에서 양 전 대법원장으로 곧바로 이어진 것으로 굳어진다면 책임이 상당 부분 가벼워진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두 전직 대법관 역시 이번주 양 전 대법원장 출석 전에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 사실이 44차례에 걸쳐 기재됐다. 크게 분류하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등 부당하게 재판에 개입한 혐의 ▷상고법원 추진 등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사법부 구성원들의 연구활동을 방해하고 일선 판사를 불법 사찰한 혐의 ▷공보관실 예산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 등 3가지로 나뉜다.
재판 부당 개입은 강제징용 사건 외에도 위안부 손해배상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등이 거론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 등 현안을 고려해 당시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를 위해 재판에 개입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서는 법원행정처장이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사건 방향을 논의한 기록을 확보했다. 2015~2016년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집무실 등에서 이 사건 피고를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한모(69) 변호사를 3차례 이상 만난 사실도 확인한 상태다. 우리나라에는 재판 방향을 왜곡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법률 규정은 없지만,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 내 연구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 방안을 검토한 배경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2016년 3월 고 전 대법관과 임 전 차장에게 이들 단체를 와해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7년 1월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력구조에 비판적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이 행사 축소 방안을 검토하라는 행정처 지시를 거부한 이탄희 판사가 인사조치되면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촉발됐다. 이밖에 2016년 4월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특정 판사의 채무관계를 파악하는 등 일선 법관 뒷조사를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공보관실 경비를 불법 유용했다는 혐의는 사실상 ‘곁가지 혐의’여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법원행정처는 2015~2017년 공보 업무에 쓰이도록 정해진 3억 원대 예산을 현금으로 인출해 일선 법원장들에게 나눠줬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승인으로 예산 유용이 이뤄졌고, 현금화 과정에서 청구 내역을 허위로 증빙한 자체가 범죄가 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 법원은 ‘예산이 실제 공보 업무에 쓰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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