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호이안 동허이…베트남 중부, 용틀임하는 희망
태고 신비 퐁야케방 절경…성지가 된 케산항전기지 찬란한 문명 후에 · 호이안…다낭 동해 해변엔 젊은물결
가는 곳마다 살가운 인사…옛 적국 포용·도로 확장 등 사회주의 벗고 산업화 박차…관광인프라 구축 ODA 희망
[동허이,후에,다낭,호이안=함영훈 기자] ‘베트남 요즘 뜬다던데, 이것 저것 잘 해 놨을까’, ‘정글 나라는 아무래도 다채로움이 적지 않겠어’, ‘한국관광객 80%가 간다던 하롱베이 여정이 없네’…‘베트남이 태국 보다 센가’, ‘월남전 악연에다 한국에 시집가 고생하는 몇몇 딸들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싫어하겠지’,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발단을 조작했다던 바로 그 통킹만 사건이 딱 50년 지났네. 패퇴한 미국은 베트남을 여전히 꺼릴거야’, ‘한여름 베트남 투어란...햐, 벌써 덥네’
국내 6개 여행사, 4개 언론사 관계자가 베트남 정부 초청으로 베트남항공(VN417)편으로 인천을 떠나던 날, 여행기자의 머릿속 생각들은 이처럼 거칠고 촌스러웠다.
▶흔쾌히 동생 대타 가이드를 자처한 대학 부총장의 가족애=하노이(河內) 니코호텔에 여장을 풀고 처음 도착한 곳은 호안끼엠(還劍) 호수. 길이 700m, 폭 250m로 제천 의림지보다 약간 작다. 일요일이라 가족단위의 산책객들이 많다. 베트남 국민들은 유난히 가족친화적이라고 한다. 교육 취업 돈벌이 문제로 가족이 가족의 마음을 할퀴는 일이 없단다. 아빠가 한국 개그맨 박명수를 닮은 세 명의 일가족과 10살 미만의 자녀 네 명을 태우고 가던 40대 아주머니는 오토바이 운전중 우리 일행에 미소 짓고 손짓 해준다. 근엄하신 하노이 응엔차이(Nguyen Trai)대학교의 부총장님이신 응우옌콩측 교수께서 급한 일로 빠진 동생을 대신해 손수 대타 관광가이드로 나온 것만 봐도 가족애가 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어학과가 설치돼 있는 응엔차이 대학은 한국 대학에서 K뷰티과정을 들여왔다.
“여전히 한국에 섭섭해들 하지요?”라는 질문에 측(Chuc) 부총장은 “우린 쿨하다. 한국은 이제 우리의 사위 나라, 가족처럼 여긴다”고 했다. ‘아옹다옹’ 한국인에게 ‘쿨’이라는 말은 참 신선하다.
▶3년전 호안끼엠 호수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호안끼엠에 3년전 ‘전설의 고향’ 같은 일이 있었다. 600여년전 명나라 침략으로 패망 위기에 처한 레(余)왕조의 레러이왕이 이곳을 거닐며 고민할 때 갑자기 큰 거북이 나타나 “승전한뒤 돌려달라”면서 황금 칼을 내주었고, 레러이왕은 명나라군을 10년 전투끝에 격퇴시킨뒤 환검(還劍)했다고 한다. 그랬던 거북이의 후손이 2011년 상륙한 것이다. 169kg의 거구에 아픈 몸으로 인양된 이 거북은 베트남 최고 의료진의 100일간 보살핌으로 완치돼 호안끼엠으로 돌아갔다. 과거와 현재의 베트남 적국(敵國)인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2000년), 중국의 장쩌민 주석(2002년) 방문 때, 베트남이 프랑스를 격퇴한지 55주년 기념일에 호수 위로 몸을 드러냈던 이 신령스런 거북이 스토리는 거친 선입견을 가졌던 한 한국여행객을 소름 돋게 하는 소재가 된다.
▶12시간 야간열차 ‘제로게임’으로 韓-베트남 벽 허물다=북부 하노이에서 중부 동허이(東海)까지 500여km 구간은 야간 12시간 열차로 이동한다. 지루한 시간을 한국인들이 그냥 둘 리 없었고, 베트남인은 동조했다. 여럿이 두 주먹을 모아 엄지손가락을 임의로 들면서 부른 숫자를 맞추면 승자가 되는 ‘제로 게임’에 베트남 사람 링(23)씨가 가담해 이른바 ‘팔뚝맞기’를 교환한다. 웃음은 만들기 나름이다. 12명이 밤새기에 보드카 한병과 맥주 10캔은 부족하다. 한-베트남 ‘묵찌빠’ 게임이 이어지고 승자에게 돌아간 쌉쌀한 보드카 한 잔은 꿀맛이다. 100여년전 미국 서부 들녘의 오렌지카운티를 달리던 열차를 닮은 베트남 야간열차이름은 ‘통일호’이다. 분단의 슬픔과 통일 달성의 기쁨이 서린 열차이다. 두 나라 사람들의 웃음 만들기 장군 멍군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 동안 베트남판 오렌지열차는 일출을 품에 안고 동허이에 접어들고 있었다.
▶베트남 동쪽 바다는 남중국해가 아닌 동해(東海)=베트남전역의 앞바다 이름은 동해이고 동허이의 지명과 같다. 동해(East Sea)에 면한 강원도 동해시 지명과 같은 이치다. 베트남 동해 북쪽엔 하롱만, 중북부에 통킹만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앞으로 그 바다를 남중국해(South China Sea)라 부르지 말고 베트남동해(Vietnam East Sea)로 불러야한다.
동허이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만날 수 있는 퐁냐케방 국립공원은 세 강 줄기를 모아 손강 하나로 만드는 지점이라 영험(靈驗)한 곳으로 통한다. 용을 닮은 9개 능선(九龍)이 한곳에 모인 임실 성수산(聖壽山)에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창업자 이성계가 기도를 올려 대권을 잡았다는 얘기가 문득 오버랩된다.
▶베트남은 올해 400002014년=유네스코 유산인 퐁냐케방엔 총 2000㎢규모로 300여개의 동굴이 있는데, 티엔뜨엉(천국:파라다이스) 동굴만 관광객에게 개방돼 있다. 감동은 그 규모와 빼어난 아름다움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보존’에 있었다. 작은 종유석 하나라도 부러짐 없이, 공룡의 출현보다 2억년이나 빠른 고생대이후 4억년간의 풍화작용이 고스란히 남았다. 나를 낳은 어머니 그 주름진 뱃살의 포근함, 목욕을 마치고 물방울을 덜 닦아낸 여인의 농염함, 가을밤하늘 별자리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보존은 감동이다. 베트남은 올해 4억2014년이다. 손강을 따라 퐁냐 수상동굴로 가는 3㎞ 구간엔 고기잡이 하는 부부의 여유로운 손놀림 너머로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보인다. 교차하는 배 꽁무니에서 우리 일행의 집적거림에 미소짓는 베트남 처녀의 순수한 표정도 정겹다.
▶성지가 된 상흔…케산전투기지와 빈목터널=베트남과 미국, 한국과 베트남의 아픈 과거는 이제 관광지가 됐다. 우리의 임진강 위로 놓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같은 곳, 북위17도 경계선 벤하이강 위에 놓여진 히엔르엉다리와 통일국기 ‘금성홍기’가 펄럭이는 베트남식 판문점을 지나 남쪽으로 25km쯤 가면, 지금은 ‘성체(聖體)’로 지정된 케산전투기지와 저항의 상징인 ‘개미굴’ 빈목터널을 만나게 된다. 성체로 지정되면 황궁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케산은 우리의 백마고지 같은 곳이다. 미군의 폭격이 심했기에, 석회지대 지반의 견고함을 활용해 호미와 손으로 굴을 뚫어 회의실, 병원, 환기구까지 갖춘 생활전투공간으로 만든 것이 빈목터널이다. 지하 23m까지 파들어 갔다. 프랑스에 저항했던 지하기지, 호치민의 구치터널에서 착안했다. 베트콩 작전요충지 곳곳엔 치밀한 은폐물을 갖춘 작은 구멍을 파놓아, 미군이나 프랑스 당국은 눈에 보이던 베트콩이 갑자기 사라져 ‘닭 쫓던 개’가 되는 경우가 흔했다. 미군이 케산 일대에 투하한 폭탄이 2차 대전때 독일이 영국전역에 퍼부은 양과 맞먹는다.
▶약자가 승리하는 비결 일깨운 베트남의 지혜=중세 동남아 일대 강자로 군림하던 베트남 사람들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던 100여년전부터 알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신식 무기의 열강과 싸울때엔 치밀하고 과학적인 작전과 지형지물 활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폭격으로 쉽게 점령하는 도시를 제외하고 베트남 전역은 약자의 전유물인 게릴라 전장이었다. 케산기지는 약자가 이기는 방법을 일깨운다. 아울러 “베트남 장난 아니다”라는 심증을 굳히게 한다. 베트남은 세계 전사의 3대기록 보유국이다. 식민지 종주국을 자기 손을 몰아낸 유일한 국가, 현대전에서 미국을 이긴 단 하나의 국가, 세계 최대 제국 몽골을 막아낸 나라이다.
케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군의 대첩지 꽝응아이성 짜빈동이 있다. 베트남 중부엔 한국군의 흔적이 적지 않다. 케산관광지 대나무숲에 늘어선 노점상의 나이많은 어르신의 표정을 살피지 않을수 없다. 한국관광객인줄 알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서 약간의 송구함이 느껴진다.
▶후에는 경주, 호이안은 제물포 혹은 부산포=왕복 2차선이 대부분인 베트남 남북 종단 1번국도를 여행하는 일은 성미 급한 사람에겐 답답할 수도 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수시로 오토바이가 도로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으로 마음을 다스려 본다. 베트남 중부 지방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도로 확장공사 모습을 보면서 다음번엔 더 편안 여행이 되겠지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다낭을 중심으로 북쪽의 후에와 남쪽의 호이안은 전통이 잘 보존된 고도시이다. 200여년전 베트남제국 후에(阮)왕조 시절 수도였던 후에가 서라벌이라면, 600여년전부터 국제무역도시였던 호이안은 제물포쯤 되겠다.
호이안은 해질녘에 도착하길 잘했다. 일몰후 호이안의 변신은 무죄. 훤한 때엔 흔히 보는 소도시라 여겼지만, 물상이 눈을 감자 금등(金燈)과 홍등(紅燈)이 붉 밝힌다. 청사초롱 불 밝히면 잊었던 낭군이 다시 돌아온다고 했던가.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의 상징색이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그 섹시한 유혹은 진하다. 그래서 주홍의 이곳은 단골 결혼사진 촬영지이기도 하다. 마음 푸근하게 사람 만나는 곳이라는 ‘會安(호이안)’의 뜻을 새겨본다. 폭 10m가 채 안되는 좁은 골목이지만 고미술품와 옷감들이 화려하고 진귀하다. 지금 호이안의 중심 거리는 과거 일본타운 즉 왜관(倭館)이다. 그래서 야심한 시간 호이안의 대표 상징물의 이름은 ‘일본교’이다.
▶멜랑꼴리한 호이안의 밤거리과 천재 가이드의 열창=낮에 강을 따라 손님을 구경시켰을 목선들이 정박해있던 다리를 건너니 목재 의자가 놓이고 기타 반주에 맞춰 베트남식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는 고품격 먹자골목이 우리를 반긴다. 매뉴판을 육필로 써 친근하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여주인은 미소 지으며 다가와 쌀국수 종류인 미꽝, 치킨밥 콤가 등이 인기품목이라고 자랑한다. 베트남 전통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 문화가 섞인 곳이라 그런지 밤거리가 멜랑꼴리하다. 만나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다들 술 맛이 난다고 했고 차분하게 우리 일행을 잘 안내하던 가이드 응락 망(37)도 취기가 올라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비트가 강한 베트남 록가요 한 곡조를 멋지게 뽑았다. 아시아 명문, 하노이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 한국서 산업연수생을 했다길래, “귀국하길 잘했다. 한국서 허드렛일을 하긴엔 베트남에 너무 귀한 인재”라고 덕담했다. 망은 현재 IT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광 시스템 개선방법 짜기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멜랑꼴리하다고 해서 호이안이 ‘환락’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전통문화 도시 후에에 서양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클럽이 몇 곳 있다는 어느 한국 관광객의 귀띔에 놀랐다.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늦게 노닐다가...” 어느 옛시가 생각났다. 지금은 인구 10만명에 불과하지만, 현재 인구 25만의 경주가 9세기 100만명이었다는 기록으로 미뤄, 호이안 역시 해상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서 아라비아, 스페인, 네덜란드, 인도, 중국, 일본 등지 상인들이 활발하게 거래하고 화려한 밤거리를 활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상실크로드는 베트남 왕족 출신 화산이씨가 13세기 한국에 정착하게 된 경로이기도 하다.
▶‘신(新) 베트남’의 상징, 다낭…경제와 휴양의 중심지=후에와 호이안에 둘러싸인 베트남 제3도시 다낭은 ‘신개념 베트남’의 상징이다. 퇴각전 미군이 놀던 미케해변, 영화 인도차이나의 촬영지 차이나 비치, 한국 집값에 육박하는 빌라촌, 낙산사 해수관음상과 표정 및 크기가 꼭 닮은 영흥사 보살상, 해발 1484m 높이에 있는 유럽 캐슬 모양의 놀이동산 바나힐 등이 있는데, 명소 탐방식 여행을 즐긴다면 인터넷을 검색해보자.
왕복 2차선의 답답했던 도로는 다낭 주변에 이르러 넓어진다. 하노이 풍경이 지구촌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넘치는 노상 퍼브(Pub)라면 다낭은 해변가 젊은이들의 함성과 웃음이 가득한 현대적 상업도시이다. 한강(漢江:Song Han)위에 나라의 상징동물인 용(龍)이 물과 불을 뿜도록 설계된 666m길이의 용다리는 베트남 재도약의 상징이다.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빼고 보다 낮은 자세로 외국인들을 맞으려는 자세, 하롱베이만 가지말고 중부지역의 보석과 파라다이스도 찾아달라는 새 관광전략, 도로 등 SOC 인프라 확장, 앙금을 털고 한국, 미국, 프랑스 관광객에 대한 대대적 유치활동, 외국인 투자기업 환대…. 이같은 대변화 기류는 공교롭게도 호안키엠의 거북이가 상륙했다 몸을 치료하고 돌아간 시점과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베트남의 변화는 ‘순수의 힘’이다. 과거를 잊을 줄 아는 쿨함에 국민의 단결력, 치밀한 전략과 기술력을 스스로 믿는 자신감이 더해진 것이다.
▶한국을 사랑하는 베트남인들, 그리고 우리는=여행일정이 마무리될 무렵 닷새를 동행하던 망과 링 두 베트남 남녀는 “한국을 사랑한다”고 했다. 인사치레가 아니라는 점은 닷새간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헤르만 헤세는 여행의 체험이란 궁전이 아니라 정원의 금붕어 연못이며, 박물관 구경이 아니라 여관주인과의 잡담이며, 시골총각과의 주먹다짐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연한 마주침과, 세상이 숨겨놓은 본질로의 헌신적인 지향이 두 바퀴를 이뤄 밀어가는 수레”라고 부연했다. 미국 인류학자 로버트 고든은 “자기 계몽과 해방에 이르기 위한 순례”라 했다.
베트남 여행이 그랬다. 편견을 가진 한 한국여행객의 자기계몽이었고, 여관 주인같은 링씨, 금붕어 정원을 가꿀 것 같은 망씨와의 잡담이었다. 큰일이다. 우연한 마주침이 계속되면서 놀라고 생각을 바꾸며 웃을 일이 많아지더니, 끝내 베트남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어쩔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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