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제주 · 자연미 그대로인 구좌 · 조천…팔색조 바닷빛 김녕 · 함덕해변 매혹적 잠녀의 명랑한 물질로 팔딱이는 해산물 비자림 · 오름 레일바이크 · 미로공원 등 자연이 주는 선물같은 힐링 · 재미 가득

제주를 열렬히 사랑하는 육지의 애호가들은 “이제 제주엔 제주 다운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아쉬워한다. 한라산 이남 지역 서귀포, 성산, 산방산과 서쪽의 한림, 북서쪽 제주공항 일대가 국제관광ㆍ컨벤션 메카, 신시가지 등으로 활발히 개발되면서 전통적 제주의 모습 찾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해녀들이 대거 유통업으로 전직하는 사이, 어느덧 남성 인구는 여성을 추월해 2012년부터 제주를 ‘2다도’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제주 마니아들은 그나마 북동쪽 구좌읍과 조천읍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는다. 김녕, 함덕의 팔색조(八色調) 바닷빛과 해녀의 물질을 만날 수 있고, 백로 등 철새도래지가 건재한 구좌와 조천은 그러나 전국 최고 인구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제주자치도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줄어드는 곳이었다. 개발 소외감과 천혜의 자연미가 오버랩된 이 곳의 주민들은 최근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도 창의적인 관광상품들을 하나 둘 내놓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주항을 지나 동복, 김녕에서 하도, 종달리까지 이어지는 23㎞의 1132번 해안 국도를 달리면서 아름다움에 취해 차를 십수 번은 더 세웠을 것이다.

초여름 김녕 해변은 전통적인 제주의 팔색조(八色調) 바닷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해안선과 가까운 곳은 모래가 훤히 비춰 연초록, 현무암 암초가 있는 곳은 군청색, 중간 바다는 초록빛, 좀 더 가면 멀리 가면 청록빛, 수평선 근처에선 파란빛을 띤다.

동복리 북촌 삼거리에서 좌측 해변가 소로(小路)로 들어서자 검은 현무암 지대 위에 흰색 백로 수십 마리가 떼지어 노닌다. 살금살금 다가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몇몇 아이들이 날아올랐고, 덩달아 무리들도 현무암을 박차고 일어서 다른 베이스캠프로 옮겼다. 셔터 소리에 익숙한 듯 주변을 옮겨 다닐 뿐 멀리 가지는 않았다.

▶구좌 해녀들의 새 희망= 상도리에 있는 해녀박물관에서는 젊은 해녀가 옷을 갈아입고 언 몸을 녹이는 장면과 제주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해녀노래’를 부르는 날씬한 아낙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실제 한동리, 김녕리에서 물질하는 분들은 70대가 주류이고, 최연소는 50대이며, 80대도 어르신도 꽤 있다. 그러나 수중 몸 뒤집기 등 역동적으로 유영하고, 파도를 버텨내면서 수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은 활기차다. 관광객이 원하면 노래도 불러주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양한 포즈를 취해줄 줄 아는 명랑한 분들이라 물질하는 동안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마음은 여전히 젊다는 80줄의 허모씨는 “물질은 건강유지의 비결이고, 자식한테 용돈 안 타써서 좋다”며 웃음 짓는다. 해녀의 채취물 중 ‘제로 칼로리’인 우뭇가사리는 최근 ‘제주웰갱’이라는 사회적기업의 양갱 재료로 팔려나가면서 지역 주민의 주머니를 더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목장에 들어선 레일바이크= 제주 북동지역을 차로 여행하는 방법은 작은 샛길, 오프로드라도 자꾸 진입해보는 것이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만끽할 수 있다. 1112번을 달리다 왼쪽 소로로 접어들면 “남자들은 물론 여자 한테 참 좋~다”는 ‘몸보신 숲’ 비자림을 만난다. 여성의 산후조리, 남성의 폐질환에 좋고, 열매로 달인 차는 기생충을 물로 만든다고 동의보감은 적고 있다. “스읍~, 스읍~” 들숨쉬며 보신한 뒤 10분간 달려 종달리에 도달하면 완만한 초원에 불쑥 솟아오른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 사이로 수백마리 소떼가 나타난다. 그곳에 최근 조심스럽게 협궤 철로가 놓이고, 경차 만한 레일바이크가 오간다. 제주의 360여개 오름 중 최고로 꼽히는 용눈이 오름은 제주의 대표적인 일출 촬영지이자 산중음악회가 열리는 곳이다. 바닷가에 약간 치우친 곳에 있는 다랑쉬오름은 4.3항쟁에 가담했던 제주도민들이 대거 희생당한 곳이지만, 평온한 구좌 일대 산과 바다, 소를 벗 삼아 지난날의 아픔을 묻어두고 있다.

다른 지역 레일바이크와는 달리 페달을 밟지 않아도 굴러가도록 해 이용자의 불편을 크게 덜었다. 객차마다 서로 다른 멋진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홍익대 미대생들이 한 객차씩 맡아 다른 그림을 그려넣었다.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세상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레일바이크의 페달을 밟지만 소는 무심하게 눈만 껌뻑거린다. 인근엔 몽돌해변과 철새도래지가 있고, 성산포와 우도가 내려다 보인다.

▶에듀테인먼트 메이즈랜드= 레일바이크에서 내륙 소로를 따라 북쪽으로 5분만 운전해가면 만날 수 있는 메이즈랜드는 세계 최대 미로(迷路)테마파크이다. 총길이 2.4km에 달하는 돌미로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돌하르방 모양이다. 10만여개의 현무암을 쌓아만든 편안한 산책길이다. 그런데 바로 옆 ‘여자 미로’를 걷다보니 “엄마 어딨어?”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물질을 막 끝낸 해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여자 미로’는 좀처럼 헤어나지 못해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미로의 오싹함도 느낀다. 하지만 ‘랜란디’ 나무와 ‘아기동백’ 2000그루에서 새어나오는 은은한 여인의 향기가 매력이다. 태풍의 회오리 모양인 ‘바람 미로’는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미측백나무’로 울타리를 조성한 힐링공간이다.

▶해녀 라커룸 ‘불턱’과 수국꽃길에선 걷자= 구좌읍 서쪽 끝 종달리 해변은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와 함께 조그만 만(灣)을 형성하고 있다. 구좌읍과 성산읍 경계선에서 북쪽으로 진행하면 수국 꽃길을 만난다. 원색의 화려함은 없어도, 연두와 살색 등 조금씩 다른 연한 꽃잎들이 한 뭉치로 모여있는 모습은 어릴적 강원도 소꼽친구의 얼굴을 닮았다. 종달리 해안도로는 어디엔가 차를 세워두고 차라리 걷는 것이 낫다. 두문포를 200여m 앞둔 지점에 자연인지 인공인지 구분하기 힘든 현무암 담벼락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는다는 ‘불턱’이란다. 과거 젊은 해녀들의 재잘거림이 넘치고 아름다움을 뽐내던 라커룸이다.

구좌에는 일제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저항했던 흔적인 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상도리)과 철새도래지(하도리), 만장굴(김녕리), 용천동굴(월정리), 토끼섬 문주란 자생지(하도리) 등 우리네 서정를 훔쳐갈 정감 넘치는 볼거리가 많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제주에 왔다면, 구좌를 가라.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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