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까지, 국립무용단 ‘더블빌:시나위’
배정혜 ‘살풀이 생’·배진호 ‘아라’
“자기 카피는 단 한 번도” 창작 철칙
“춤은 우리에게 ‘살아 있음의 증명’”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5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거장과 신예가 만났다. ‘하나의 단어’를 받아 들었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답을 내놨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시나위’였어요. 나는 나대로, 배진호 씨는 배진호 씨대로 시나위를 생각했어요.”
한국 무용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창작춤의 지평을 넓혀 온 안무가 배정혜(82)는 여든을 넘겨 돌아본 시나위에서 ‘삶의 기쁨’을 찾았다. 그의 젊은 시절을 똑 닮은 안무가 배진호(32)는 어두운 밤을 건너는 고통의 춤을 직조했다. 두 사람은 “나이로는 50년, 춤으로는 100년의 시간차를 둔 무대”라고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나 말했다.
국립무용단 신작 ‘더블빌:시나위’(1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50살 차이의 두 안무가 작품을 한 무대에 세운다. 사람으로 치면 ‘지천명’.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나이만큼의 긴 시간을 사이에 뒀다. 두 안무가의 작품은 ‘살풀이 생(生)’(배정혜)과 ‘아라(AHRA)’(배진호)다. 국립무용단은 두 작품을 위해 처음으로 무용수의 ‘세대’를 나눴다. 1985년생 이상 28명이 배정혜와, 신입 단원을 포함한 젊은 단원 13명이 배진호와 호흡을 맞춘다. 김종덕 예술감독 겸 단장이 두 사람에게 건넨 주문은 “춤으로 승부해 달라”는 것이었다.
운명이자 팔자인 춤…여든둘 배정혜가 고른 ‘기쁨’
“춤은 제 팔자이자 운명이에요. 더 이상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또 춤이 나와요.” (배정혜)
안무가 배정혜의 이름 앞엔 무수한 수사가 붙는다. 그의 춤은 논쟁적이었다. 전통과 파격을 오가는 줄타기 명인이었고, 한국 춤의 경계를 끊임없이 깨부순 선구자였다. 돌아보니 그에게 지나온 모든 날은 기쁨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쁨’을 추기로 했다. 배정혜 안무가는 “어떤 의미를 두지 않고, 오롯이 한국 춤을 보기 위한 목적의 작품”이라며 “폭포수 아래에서 즐겁게 노는 장면들을 담아 전통춤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살풀이 생’은 살풀이하듯 한과 슬픔을 털어내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향해 간다. 이매방류·한영숙류 살풀이, 김숙자류 도살풀이, 김수악류 교방굿거리 등 서로 다른 계보의 전통 춤사위를 관통하는 ‘신전통’을 내놨다. 폐암 투병으로 삶의 고비를 지나온 거장 안무가의 반짝이는 오늘을 담는다. 배정혜 안무가는 “본격적인 안무 창작은 한 달 정도 걸렸다”며 “하지만 두세 달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35분을 모두 공들였기에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라고 했다.
전통으로 방향을 잡은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나이 먹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대비를 이루도록 했으니, 애초 내가 ‘늙게 가야 되겠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그에게 전통은 ‘익숙한 언어’다. 평생 추고 만들어 온 전통춤을 집대성해 국립무용단의 색에 맞춰 꺼냈다. 몸의 사정도 있었다. 일생 춤으로 다져진 몸이건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안무는 내 몸에서 모든 동작이 나와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아요. 창작을 생각하기도 조금은 힘들어요. 사실 안무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잖아요. (웃음)” (배정혜)
여든의 거장은 지친 기색도 없이 매일 연습실로 출근해 단원들과 합을 맞춘다. 깐깐한 ‘눈’으로 단원들의 손짓, 발짓, 몸의 선과 표정까지 살핀다. “다리를 쭉 뻗어라, 가야금이 나올 때 (한삼을) 툭 떨어뜨려야 한다”는 세세한 지적이 이어진다. 완벽주의자의 집요함이 여전하다. 국립무용단을 두 차례(2000~2002년, 2006~2011년) 이끌었던 그가 이 단체와 작업하는 것은 2017년 ‘춘상’ 이후 9년 만이다. 배정혜 안무가는 “오랜만에 옛 단원들을 보니 헤어졌던 형제를 만난 것 같다. 옛 정이 있기에 더 친숙하다”며 애틋한 마음을 꺼냈다.
“아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서른둘, 칠흑의 고갯길
배진호 안무가는 대선배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가 붙든 단어는 아리랑이다.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단어가 아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전, 아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너무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단어이기도 했고요.” (배진호)
애착은커녕 내키지도 않던 단어를 굳이 품었다. 배진호 안무가는 “아리랑이라는 것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공부를 좀 했다”고 돌아봤다. 감정으로 존재했던 단어에서 발견한 건 ‘우리’라는 정체성이었다. “한민족의 정서인 한과 애가 이 안에 있었다. 딱 떨어지는 정의를 찾을 순 없었지만 그것을 춤으로 풀어보고자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점점 사람이 절망에 빠지고 슬프고 공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을 지키려고 하는, 좀 고통스러운 그런 작품을 만들고자 했어요.” (배진호)
‘아라’의 무대는 칠흑 같은 밤이다. 기나긴 터널처럼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밤, 수많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의 절망과 고통의 걸음으로 무대는 시작된다. 해오름극장에 검은 가벽을 세우고 원근법을 쓴 기발한 접근 덕에, 10여m 깊이의 무대로 나오는 무용수가 100m쯤 더 먼 곳에서 걸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배진호 안무가는 “해오름극장 자체를 어두운 밤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더 절망적이고 빛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1986년생 이후의 젊은 무용수들은 ‘살풀이 생’과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국립무용단 간판인 박혜지·이요음의 듀오는 ‘아라’의 백미가 될 장면이다. 박혜지는 무리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이자 어머니다. 그 품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때론 처절하고 때론 고통스럽다. 배진호 안무가는 두 사람의 춤에 대해 “(무리 안엔) 챙김과 사랑, 보살핌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싸움은 일어난다”며 “(친구나 사회에서도) 친했다가 항상 싸우고 서로 해를 가하는 것 같은 보편적 모습을 풀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음악도 다채롭다. 고통에 속도가 붙으면 격렬한 전장이 된다. 굿거리와 휘모리장단을 기저에 두고, 볼륨을 조절하고 깎아내 미디(MIDI) 음악에 맞췄다. “신날 수도 있지만 좀 더 애절하게 들릴 수 있도록” 한 선택이었다.
일찌감치 발레와 현대무용을 배웠고,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는 현재 무용계가 주목하는 안무가다. 지난해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최연소로 선정됐고, 한국무용계와 현대무용계는 물론 발레계까지 눈여겨보는 ‘슈퍼 루키’다. 국립무용단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 그는 “어릴 때부터 공연을 찾아다니며 봤던 배정혜 선생님은 제게 전설적인 창작자”라며 “선생님의 ‘소울(Soul), 해바라기’를 본 충격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부담이 적잖다. 배진호 안무가는 “선생님과 함께 이렇게 대화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며 “선생님 명성과 역사에 누가 되면 안 되기에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사명감을 갖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자기 카피는 단 한 번도”…50년을 건넌 철칙
‘안무가의 DNA’는 5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대를 이었다. 미리 맞춰 본 것도 아닌데 같은 철학이 줄줄이 나온다. ‘자기 복제’는 금물이라는 것. 거장의 안무론은 단호하다.
“요즘 창작들은 자기가 다른 작품에서 했던 동작을 그대로 써요. 제목은 ‘전기’라고 해 놓고 흙에서 나왔던 동작, 물에서 나왔던 동작 다 가져오는 거죠. 안무라는 건 동작과 구성의 변화지, 동작을 그대로 채용해 쓰는 건 창작이 아니에요.” (배정혜)
배정혜 안무가의 창작물은 300편은 족히 넘는다. 그는 “수십, 수백 작품을 하면서도 한 번 썼던 동작을 다시 쓴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배진호 안무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생님처럼 많은 작품을 하진 않았지만, 안무를 하면서 저도 자기 카피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주제에 맞는 동작을 만들고, 음악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동작을 다시 리서치한다. 이번 작업에도 리서치에만 한 달, 기획안 공부에 두 달가량을 들였다. 지나치게 현대적이지 않으면서도 한국 춤사위의 호흡법과 어름, 발동작을 “현대의 언어”로 옮기는 길을 고민했다고 한다.
까마득한 후배의 고민은 대선배가 먼저 읽었다. 배정혜 안무가는 “요즘 현대춤엔 사고가 없는 안무가 유행한다”며 “배진호 씨 작품은 현대에 유행하는 동작이 아니고, 주제에 가깝게 동작을 고민하면서 찾은 흔적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아이디어가 무척 좋다. 한번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말해 오던 그가 이번엔 ‘끝’을 말하지 않았다. 거장의 ‘창작 욕구’에 불을 지핀 것은 서른둘의 후배였다.
배진호 안무가에겐 매 순간이 귀한 경험이었다. ‘살풀이 생’의 연습실을 몇 번이고 찾아 보고 또 봤다. 그는 “옆에서 장단 타면서 같이 봤다”며 “한국 전통춤의 고급스러움과 풍류, 즐김을 고민하지 않아도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한국 춤의 진가를 새삼스레 실감했다. “한국 춤은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냥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는 것이다.
한국 춤의 내일을 말할 때, 문을 열어젖힌 쪽은 오히려 거장이었다. 배정혜 안무가는 “한국 춤은 한이 있으면서도 흥이 있다. 한과 흥이 겹치고 겹치며 나오는 민속춤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그것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창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몫은 “배진호 같은 젊은 친구”에게 돌렸다.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컨템퍼러리를 공부한 배진호 안무가는 “한국적인 컨템포러리를 정말 고급스럽게 연출하는 게 마지막 목표”라고 했다. 그 길 위에서 놓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
“한국무용이 지켜야 할 고유성이 점점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요하게 잡고 있어야 되는 것들이 있어요. 한국 춤의 정서, 한과 흥, 거기서 나오는 몸의 자연스러운 곡선들, 아름다운 호흡들, 발의 디딤. 이런 것들은 한국 창작춤으로서 꼭 지켜내고 싶어요.” (배진호)
춤은 살아 있음의 증명…“아직 할 이야기가 있다”
춤은 강렬한 생(生)이었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춤은 같은 곳에 있었다. ‘살아 있음’의 증명이자 확인이었다. 다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달랐다.
거장에게 춤은 흥이고 에너지다. 배정혜 안무가는 “춤 자체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울음에서조차 에너지를 읽는다. “슬퍼서 울 때도 에너지가 있어야 울 수 있다”고 믿는다.
“부르짖고 싶은 인간의 욕망,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죠. 아무 흥도 안 나오고 아무 에너지가 안 나오면 죽은 거잖아요. 살아 있는 동안은 춤이라는 게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서른둘의 안무가에게 춤은 고통이다. 배진호 안무가는 “제가 예술을 하는 이유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 고통이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순간순간이 몸서리칠 만큼 살아 있음을 감각하는 시간이다. 후배의 말끝에 거장의 한마디가 얹혔다. “미리 늙었어. (웃음)” 그 고통을 누구보다 오래 지나온 이의 추임새 같은 긍정이었다.
“안무를 할 땐 6개월, 1년을 그것만 생각해요. 내가 그랬어요. 애기 낳는 게 더 힘드냐, 안무하는 게 더 힘드냐고. 애기 열 명 낳는 것만큼 안무 한 작품 하는 게 힘들 거라고 했어요. 노도 없이 돛단배를 타고 항해를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배정혜)
후배의 밤도 다르지 않다. 연습이 끝나면 혼자 홀에 가서 동작을 고친다. 배진호 안무가는 “거의 밤낮 없이 계속 고민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막이 오르기 전의 떨림은 서른둘의 신예도, 여든둘의 전설도 마찬가지였다. 배정혜 안무가는 “내가 무대에 설 때도 그렇고, 마찬가지로 항상 떨린다”며 “(무용수) 30명이 다 나 같지 않으니 그냥 노상 빌고 또 비는 것”이라고 했다. 춤이 ‘살아 있음’의 증명이라면, 그의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분명히 있어요. 아직 살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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