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집을 산 사람들은 집값의 평균 3분의 2를 현금, 예금 등 자기 돈으로 치렀다고 한다. 4~5년 전만해도 절반 수준이었는데 정부가 대출과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구입) 규제를 강화하자 자기자금 동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신혼부부의 가구당 대출 규모는 크게 늘었다. 결혼 5년 이내 초혼 신혼부부의 대출액 중간값이 2016년 7778만원에서 2024년엔 1억7900만원으로 뛰었다. 두 지표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계층·세대별 주택구매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신혼부부 대출잔액 중앙값은 2018년 1억원, 2021년 1억5000만원을 넘어서는 등 상승세가 뚜렷했다. 신혼부부의 대출은 주로 주택구매나 전세자금, 결혼 비용, 자녀양육을 위한 것이다. 3억원 이상 대출 비중도 2016년 5.3%에서 2024년 24.0%로 크게 올라 고액 대출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 서울에서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자기자금은 더 많아졌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의 주택 취득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자기자금 비율은 2021년 53.4%였으나 지난해엔 59.4%를 기록하더니 올해 상반기엔 65.5%까지 증가했다. 액수도 크게 늘어 2021년엔 1건당 자기자금은 평균 3억9962만원이었으나 올해는 6억1911만원이었다.
서울 주택 매수자들은 빚을 점점 더 적게 얻는 반면, 주택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신혼부부는 대출을 더 많이 받아야 된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뛰면서 주택 마련을 위해 필요한 초기 자본이 크게 증가했고, 여기에 대출규제가 확대되며 주택 시장이 ‘소득으로 빚을 내 진입하는 시장’에서 ‘기존 자산을 가진 사람의 우위가 점점 더 강화되는 시장’으로 이동이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를 벌 수 있느냐’보다는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주택구매력의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다. 아울러 젊은 세대엔 부모로부터 상속·증여받는 자산의 결정력이 더 커졌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오는 10월 19일 신규 대출부터 신혼부부의 합산 소득 기준이 초과하더라도 부부 중 1인의 연소득이 7000만원 이하면 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이른바 결혼으로 인한 대출상의 불이익(결혼 페널티)를 없앤다는 것인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공급부족, 대출규제, 집값상승이 결합되면 기존 자산이 많은 고령 세대나 부모로부터 상속·증여분이 많은 계층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단순히 신혼부부에 돈을 더 빌려주자가 아니라 질좋은 중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실수요자에 철저히 선별된 금융지원을 실시하며 청년·서민의 자산형성을 도울 수 있도록 제도의 종합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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