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디젤 갤런당 6.51달러 1년 새 76% 급등

원유 넘쳐도 정유시설 가동률 97% 추가생산 한계

디젤 80%가 화물운송 사용 운송비 상승 직격탄

재고 5년 평균보다 13% 적어 물가 재상승 우려

미국에서 서민 연료인 경유가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시니타스에 경윳값이 표시되어 있다. [로이터]
미국에서 서민 연료인 경유가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시니타스에 경윳값이 표시되어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에서 휘발유보다 디젤 가격이 더 무섭게 치솟고 있다. 원유를 더 뽑아내면 해결될 것 같지만 문제는 땅속의 원유가 아니다. 원유를 디젤로 바꿔줄 정유시설이 이미 사실상 최대치로 돌아가고 있어서다.

더 큰 문제는 디젤이 미국 경제의 ‘혈액’과 같은 연료라는 점이다. 트럭이 마트로 식료품을 나르고, 농기계가 곡물을 수확하고, 건설장비가 움직이는 데 모두 디젤이 필요하다. 디젤 가격 상승이 주유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배송비와 식료품, 공산품 가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로이터 브레이킹뷰스는 미국 경제가 이란 전쟁 이후 원유 가격 충격을 예상보다 잘 버텼지만 이제 ‘물건을 움직이는 비용’이 미국 경제를 흔드는 ‘티핑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휘발유 41% 오를 때 디젤은 76% 뛰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21일 미국 평균 디젤 가격은 갤런당 6.51달러로 1년 전보다 76% 뛰었다. 같은 기간 휘발유 가격은 41% 오른 4.48달러였다.

미국인들이 소비하는 양은 휘발유가 훨씬 많다. 하루 휘발유 소비량은 약 900만배럴로 디젤의 세 배 수준이다. 그런데 이란 전쟁 이후 미국인들이 추가로 부담한 연료비 1120억달러 가운데 디젤에서 발생한 부담만 510억달러에 달한다. 소비량이 훨씬 적은데도 추가 부담의 절반 가까이를 디젤이 차지한 것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집계에서도 지난 14일 기준 미국의 소매 디젤 가격은 갤런당 6.285달러로 명목가격 기준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94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가격으로도 2022년 이후 가장 높다.

디젤 가격이 유독 빠르게 뛰는 배경에는 이란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중동의 정유시설 가동 차질에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까지 겹치면서 세계 디젤 공급이 줄었다. 중국의 정유 활동 감소까지 더해졌다. EIA는 러시아와 중국, 중동의 정유 활동 감소가 세계 중간유분 공급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유 더 뽑으면 된다? 문제는 ‘정유’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다. 그렇다면 원유 생산량을 늘려 디젤을 더 만들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디젤이 유전에서 그대로 나오는 상품이 아니라는 데 있다. 땅에서 뽑아낸 원유를 정유공장에서 가공해야 디젤과 휘발유, 항공유 등이 만들어진다.

지금 미국에서 부족한 것은 원유가 아니라 이를 가공할 ‘정유 여력’이다.

미국 정유시설은 지난 11일 기준 가동률이 97%에 달했다. 사실상 최대 능력에 가까운 수준이다. 올해 1~8월 미국의 중간유분 생산량도 하루 평균 510만배럴로 2019년 이후 가장 많았다. 이미 정유사들이 생산을 크게 늘렸는데도 공급 부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로이터는 미국에 대규모 신규 정유시설이 약 50년간 들어서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유공장을 새로 짓는 데는 최대 10년가량이 걸릴 수 있어 가격이 오른다고 당장 생산능력을 늘릴 수도 없다.

오히려 높은 가격 때문에 정유사들이 정기적인 시설 보수를 미룰 경우 향후 더 긴 가동 중단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쌓아둔 디젤도 넉넉하지 않다.

EIA에 따르면 9월 11일 기준 미국 중간유분 재고는 1억785만9000배럴이었다. 통상 여름에는 겨울철 수요에 대비해 재고가 늘어나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같은 시점 재고는 최근 5년 계절 평균보다 1580만배럴, 13% 적었다.

EIA는 향후 상황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중간유분 재고가 9월 중 1억배럴 아래로 떨어지고 2027년 상당 기간까지 최근 5년 범위의 최저 수준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세계 최대 디젤 수출국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미국산 연료를 미국에 남겨두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22일 경유 수출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출을 막는다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정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까지 수출을 줄이면 국제 디젤 가격이 더 오르고 다른 국가의 보복 조치를 불러 공급망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디젤 1갤런 오르면 결국 소비자가 낸다

디젤 가격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전이 효과’에 있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디젤의 약 80%, 하루 약 300만배럴이 운송에 사용된다. 트럭 운송업체들은 영업이익률이 낮아 연료비 상승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기 어렵다. 미국 대형 트럭업체 나이트-스위프트의 지난 분기 영업이익률도 6%에 불과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트럭 한 대를 운행하는 평균 비용은 마일당 2.34달러였다. 디젤 가격은 1년 전 갤런당 3.70달러 수준에서 6.51달러로 2.81달러 올랐다. 연비를 갤런당 6마일로 가정하면 연료비만 마일당 약 47센트가 추가되는 셈이다.

이 비용은 결국 화주를 거쳐 소비자에게 넘어간다. 슈퍼마켓의 식료품부터 온라인 쇼핑 배송비, 농산물과 공산품까지 디젤 가격 상승의 영향권에 놓인다.

로이터는 아마존이 최근 한 분기에 배송에만 279억달러를 썼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이는 같은 기간 소매사업에서 벌어들인 영업이익보다 많은 규모다. 디젤값 상승이 유통기업의 비용과 소비자 가격에 얼마나 민감하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경제는 지금까지 이란 전쟁에 따른 원유 충격을 예상보다 잘 견뎌왔다. 그러나 원유를 확보하는 것과 그 원유를 필요한 연료로 바꿔 전국 곳곳에 물건을 실어나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원유가 아니라 ‘정유 병목’, 휘발유가 아니라 ‘디젤’이 미국 경제의 새로운 약한 고리가 된 것이다. 로이터는 “미국 경제가 원유 충격에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력을 보였지만 물건을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 티핑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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