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첫 전기 플래그십 ES90 시승
세단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운 승차감
SUV처럼 넓은 시야·넉넉한 적재공간
가족차로 쓰기 좋은 리프트백 구조
고속에서도 흔들림 적고 안정적
2열 짧은 좌판·좁은 운전석 발 공간은 단점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찾았어!” 시승 마친 후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 17일 경기 포천에서 서울 강서구 마곡까지 볼보자동차의 새로운 순수전기 플래그십 ‘ES90’을 몰아봤다. 자동차를 취재하며 수십 종의 차를 타봤지만, 가격까지 고려했을 때 시승을 마치고 실제 구매 후보 목록 맨 위에 올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 차는 많지 않았다.
특히 4살짜리 어린 자녀를 둔 3인 가족 입장에서 ES90은 꽤 절묘한 지점을 파고들었다. 세단의 정숙성과 편안한 승차감은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SUV의 넓은 공간과 높은 시야, 큰 적재공간도 탐난다. ES90은 서로 상충하는 듯한 두 요구를 한 차 안에 상당 부분 담아냈다.
ES90은 볼보가 기존 프리미엄 세단의 형식을 전동화 시대에 맞춰 다시 해석한 모델이다. 볼보 역시 이를 “세단보다 실용적이고 SUV보다 효율적인” 전기 플래그십으로 정의하고 있다. 최신 SPA2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략도 집약됐다.
문 열고 타는 순간부터 ‘세단보다는 높다’
첫인상부터 일반적인 대형 세단과는 조금 다르다. ES90의 전장은 5000㎜, 휠베이스는 3102㎜에 달한다. 전고는 1550㎜다. 최저지상고도 최대 188㎜로 일반적인 세단보다 상당히 높다.
운전석에 올라타는 순간 이 차의 성격이 보다 명확해진다. 허리를 깊숙이 내려 앉는 전형적인 세단이라기보다 SUV에 올라타는 것과 비슷한 편안함이 있다. 시트 포지션도 높아 전방 시야가 넓다. 차체는 5m에 달하지만 운전석에서 느끼는 부담은 예상보다 작았다.
외형도 정통 세단과는 다르다. 뒷유리와 트렁크가 함께 열리는 리프트백 구조를 택했다. 일반 세단처럼 트렁크 공간이 뒷좌석과 완전히 분리된 형태가 아니라, SUV처럼 실내와 적재공간이 이어지는 구조다.
2열을 접으면 적재공간은 최대 1445리터까지 늘어난다. 현장에서 26인치 캐리어 1개와 24인치 캐리어 2개, 20인치 캐리어와 플랫 캐리어, 토트백과 보스턴백까지 넣어봤다. 한 가족의 여행 짐을 한꺼번에 넣고도 전동 트렁크가 무리 없이 닫혔다.
허리를 깊게 숙여 짐을 밀어 넣을 필요가 없다는 점도 SUV를 닮았다.
국도 달리자 노면 질감이 사라졌다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승차감이다.
시승차는 ‘ES90 트윈 모터 AWD 울트라’였다. 듀얼 챔버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된 차량이다. 볼보는 서스펜션 연결부에 캐스트 알루미늄을 사용해 차체 뒤틀림과 잔진동을 억제하고, 전기모터에서 발생하는 진동 역시 별도의 댐핑 설계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포천 일대 국도를 달리면서 도로 표면의 자잘한 요철이 실내로 전달되는 느낌이 상당히 옅었다. 방지턱이나 노면이 고르지 않은 구간에서도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차체가 크고 무거운 전기차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게 만드는 세팅이다. 부드럽다고 해서 마냥 물렁하지도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여도 차체가 좌우로 흐느적거리지 않았다.
트윈 모터 AWD는 최고출력 456마력을 내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5.4초 만에 가속한다. 시속 150㎞ 안팎까지 속도를 높여도 체감 속도는 의외로 낮았다. 차체가 흔들리지 않고 노면을 차분히 붙잡아 실제 속도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ES90의 성격은 운전자를 자극하는 스포츠 세단보다는 ‘빠른데 편안한 차’에 가까웠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복합 기준 520㎞다.
조용해서 더 돋보인 오디오
ES90의 공기저항계수는 0.25Cd다. 높은 차체에도 볼보 양산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의 공기저항을 구현했다. 울트라 트림에는 어쿠스틱 글라스가 적용되고 모터의 고주파음인 이른바 ‘와인 노이즈’를 줄이기 위한 흡음 설계도 더했다. 볼보 자체 테스트에서는 실내 소음이 55.6㏈ 수준까지 측정됐다고 한다.
정숙한 실내 덕분에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도 더욱 존재감을 드러냈다. 25채널, 1610W 시스템으로 애플뮤직과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한다. 음원의 품질도 중요하다. 고음질 음원을 재생했을 때 공간을 넓게 채우는 느낌과 악기별 위치가 구분되는 감각이 더욱 또렷했다.
“아리야, 통풍시트 켜줘”…어느 자리에 앉았는지도 안다
실내에서는 물리 버튼을 대폭 줄인 구성이 눈에 띈다. 중앙에는 14.5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자리잡았고 운전자 앞에는 9인치 디스플레이가 놓였다. 화면 구성은 단순하지만 속도와 주변 차량, 내비게이션 안내 등 핵심 정보를 폭넓게 띄울 수 있다.
특히 음성인식은 활용도가 높았다. 조수석에 앉아 “아리야, 통풍시트 켜줘”라고 말하면 차량이 목소리가 나온 좌석을 인식해 조수석 기능을 작동시킨다. 운전자가 다시 “어느 좌석 말씀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다. 앞·뒤 좌석의 발화 위치를 구분하는 4존 음성인식 기능 덕분이다.
파일럿 어시스트도 사용법이 간단했다. 주행 중 오른쪽 컬럼식 레버를 아래로 내리면 곧바로 작동한다.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가감속이 부드러웠고 차선 중앙을 유지하는 움직임도 과하게 신경질적이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들어서자 차량 주변 카메라 화면이 자동으로 나타나는 것도 편했다. 대형차를 운전할 때 부담스러운 차체 옆쪽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시승차인 울트라에는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가 적용됐다. 버튼을 누르면 유리의 투명도를 바꿀 수 있다. 햇빛이 강해지면 바로 음영을 만들고, 답답하게 느껴지면 다시 투명하게 돌릴 수 있다.
넓은 2열, 그런데 키 큰 성인이라면 반드시 앉아봐야
물론 아쉬운점도 있다. 무엇보다 2열 시트 방석 길이가 다소 짧다. 키가 큰 성인은 허벅지 아래쪽이 충분히 받쳐지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배터리를 바닥에 까는 전기차의 구조적 특성상 바닥 높이가 올라가는데, 헤드룸까지 확보하려다 보니 시트 착좌 위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졌다. 무릎은 위로 올라오고 허벅지는 시트에서 뜨는 듯한 자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어린 자녀와 함께 타는 가족에게는 낮은 시트가 오히려 승하차에 편할 수 있지만 성인 위주의 뒷좌석 사용이 많다면 구매 전 직접 앉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운전석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센터콘솔 쪽으로 갈수록 공간이 좁아져 왼발을 편하게 두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 주변도 처음에는 다소 좁게 느껴졌다.
사용하면서 다소 낯설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다. 뒷유리 면적이 작아 룸미러를 통해 보이는 후방 시야가 넓지는 않았다.
결국 다시 가격표를 보게 됐다
ES90을 타고 난 뒤 다시 가격표를 보게 됐다. 싱글 모터 익스텐디드 레인지 플러스는 7294만원, 트윈 모터 AWD 플러스는 7960만원부터 시작한다. 울트라 트림은 각각 8055만원, 8741만원이다. 최상위 트윈 모터 퍼포먼스 AWD 울트라는 9541만원이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국고·지방비를 합쳐 200만원 안팎의 지원을 받을 경우, 엔트리 모델의 실구매가는 6000만원대 후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을 체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볼보는 6월 말 사전계약을 시작한 이후 약 두 달여 만에 국내 계약 대수가 3500대를 넘어섰다. 단순히 브랜드 충성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적지 않은 숫자다.
800V 전기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대 350㎾ 급속충전도 지원한다. 조건이 맞으면 배터리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 걸린다.
패밀리카를 고를 때 늘 선택지가 갈린다. 승차감과 정숙성을 중시하면 세단에 눈이 가고, 아이와 짐을 생각하면 결국 SUV를 다시 보게 된다. ES90은 그 고민에 꽤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놨다.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