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溫記): 따스함을 기록하다]

9년째 치매 앓고 있는 어머니와 생활하는 외동딸

“엄마가 처음 치매 진단받았을 때는 믿기지 않아”

마포구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 참여 후 어머니·본인 건강 유지

어머니 돌보며 함께한 시간 모아 그림책으로 펴내

“치매 환자도 타인과 일상생활 함께하는 사회 되길”

박은환(가명) 씨가 치매를 알고 있는 어머니(오른쪽)를 모시고 서울 마포구 치매안심센터를 나서고 있다. 손인규 기자
박은환(가명) 씨가 치매를 알고 있는 어머니(오른쪽)를 모시고 서울 마포구 치매안심센터를 나서고 있다. 손인규 기자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건강하시던 86세 어머니가 자꾸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반복됐다. 발목에 이어 고관절까지 부러져 결국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의사는 단순히 균형 감각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치매 검사를 해보자”고 권했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루이소체 치매’라는 진단을 내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루이소체 치매는 알츠하이머 치매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치매다. 인지기능 저하, 환시(실재하지 않는 것을 시각으로 느끼는 것), 렘수면행동장애, 파킨슨병이 특징적인 증상이다. 치매 환자 중 약 3.8%가 루이소체 치매로 진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2월 박은환(가명·62) 씨는 그렇게 치매 환자 가족이 됐다. 14일 서울 마포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만난 박씨는 어머니가 진단 몇 년 전부터 전조 증상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엄마는 가을인데 ‘너무 덥네, 이제 여름이 오려나 봐’ 같은 엉뚱한 소리를 했고,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를 잘 기억 못했어요. 누구나 나이가 들면 깜빡깜빡하잖아요. 그래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이 다 단초가 됐었나 봐요.”

의사에게 “그럼 우리 엄마는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5년쯤 지나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지실 것”이라고 답했다. 박씨는 의사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은 본인뿐이었기 때문이다.

외동딸인 박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윈 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2014년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프리랜서로 일해 온 박씨는 2024년 어머니의 고관절 수술 이후 일도 그만두고 쭉 붙어 지내며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처음에는 집에 요양사를 불렀다. 일주일에 세 번 오는 요양사는 하루 3시간씩 어머니와 산책도 하고 퍼즐 맞추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줬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오면서 요양사도 집에 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다른 사람과 교류가 적어지니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갔다. 박씨는 더 이상 어머니를 이렇게 집에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데이케어센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박씨는 “엄마가 나를 여기에 버리려고 하냐며 엄청 화를 내셨다”며 “점점 상태는 안 좋아지고 내 삶은 조금씩 사라져가는데 막막해서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박씨는 집 근처에 있는 마포구 치매안심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하루 종일 시설에 있어야 하는 데이케어센터와 달리 일주일에 3번 오후에만 3시간씩 참여하는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은 다행히 어머니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진행하는 인지건강 관련 프로그램은 언어 학습 외에도 운동, 악기 연주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 10여 명이 함께 모이다 보니 어머니가 다시 사회성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박씨에게도 치매안심센터가 위안이 됐다. 어르신을 모시고 오는 보호자들은 이곳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 서로 위로하고 정보도 나눈다. 박씨는 “아주 친한 친구여도 치매를 케어한 경험이 없으면 나눌 수 없는 게 있다”며 “그들의 위로가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는데 여기는 치매라는 똑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하는 위로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치매안심센터는 박씨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엄마가 날짜를 잘 기억 못하셔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한 보호자가 ‘자기는 달력을 놓고 매일 아침 오늘이 이날이야’라고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며 “이 같은 조언을 듣고 매일 엄마에게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쓰라고 한다. 어떤 치매 교재보다도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호자들이 참여하는 연극을 했는데 처음에는 모두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해’하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연극을 하고 나서는 ‘이거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하며 다들 만족해했다고 박씨는 전했다.

그는 “간병하는 모든 분이 그렇지만 내가 우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환자를 잘 돌볼 수 있다”며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듯 슬픈 표정을 하고 센터를 찾으셨던 보호자들도 여기서 다른 분들과 고민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어머니를 돌보며 겪었던 일을 모아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마포구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극복의 날(매년 9월 21일)을 기념해 ‘기억열람실’을 운영하며 치매 보호자들이 만든 그림책을 마포중앙도서관 등에서 전시 중이다.

박은환(가명) 씨가 만든 그림책 ‘엄마와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의 한 페이지. [박은환 씨 제공]
박은환(가명) 씨가 만든 그림책 ‘엄마와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의 한 페이지. [박은환 씨 제공]

박씨가 만든 ‘엄마와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에는 ▷날짜와 요일 적기로 하루를 시작하기 ▷하루 한 구절, 기억할 문장 적기 ▷기억 여행 떠나기 ▷일상 기록하기 ▷집안일 함께하기 ▷따뜻한 스킨십 나누기 등 박씨가 지난 시간 엄마를 돌보며 했던 일들을 그림과 함께 담아냈다.

박씨는 “책을 내고 엄마에게 보여드렸더니 쭉 보시더니 ‘좋네’라고 말씀하셨다”며 “그 순간 엄마가 잠시지만 멀쩡해지신 느낌 같은 걸 받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어머니의 상태는 처음 진단받았을 때보다 그리 많이 나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머니의 치매는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다. 박씨도 그걸 알고 있다.

그는 “가장 힘든 건 끝을 알 수 없다는 거다. 엄마의 상태가 언제 나빠질지, 언제까지 내가 집에서 엄마를 돌볼 수 있을지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차츰 엄마를 돌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시간이 줄어드는 게 화도 나고 그런다. 하지만 엄마와 지내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는 게 나의 운명같다”고 털어놨다.

또 박씨는 “치매 정도가 심해 폭력적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치매 환자가 가정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일상에서 다른 사람과 교감하며 지내야 증상도 더 나빠지지 않는 거 같다. 우리 사회가 그런 환경이 되면 좋을 거 같다”고 제언했다.

박씨가 어머니와 해보고 싶은 일은 뭘까. “원래 퇴직하고 나면 엄마랑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재미있게 살아야지 했는데 그건 포기했어요. 이제는 엄마랑 손 잡고 산책하는 것, 그거면 될 것 같아요. 이루고 싶은 소원이에요.”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함께 지낸 지 벌써 9년째, 박씨는 누구보다 슬기롭게 치매와 싸우며 또 극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