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도 아프고 상처 입을 줄 안다
악마도 죽음도 ‘상식밖’ 있을지도
뒤집힌 그림이 주는 묘한 해방감
세상 무엇도 당연한 건 결코 없다
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새로운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으로 쓰였습니다.
천사는… 아프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천사는 지금, 자기 몸을 돌볼 수 없다.
천사는 눈을 감는다. 머리는 붕대로 감싼다. 몸만큼 큰 날개에는 핏자국이 뚜렷하다. 자세히 보면 무언가에 뜯긴 흔적도 있다. 드러난 맨발은 늘어져 있다. 천사는 그 모습으로 실려간다. 고개를 숙인 채, 흰 천의 끝단은 끌리는 채로. 두 아이가 앞뒤에서 지지대를 들어올린다. 그대로 흙길을 가로지른다. 앞장 선 아이는 검다. 모자에 외투, 바지와 신발까지 모두 까맣다. 카라는 높고, 소매와 밑단은 길다. 이로 인해 검정은 더 짙어보인다. 한 뼘 뒤에서 발을 맞추는 아이도 인상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 눈을 뜬 채 화폭 밖 세계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배경은 천사와 소년 둘만큼 삭막하다. 안개는 자욱하다. 가장 많이 깔린 건 채워지지 못한 갈색 여백이다.
그런데, 천사는 신의 사자이지 않은가.
천사와 황량한 풍경 사이에는 무엇도 어울리는 게 없다. 아니, 애초에 천사가 이렇게 맥없이 다쳐도 되는가. 원래는 든든히 선을 지키고, 당당히 악과 맞서야 하는 존재 아닌가. 생각을 이어갈수록 혼란이 더해진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휴고 심베리, 작품 제목은 <상처입은 천사>다. 이제부터는 그가 왜 이런 ‘부조리해보이는’ 그림을 그렸는지를 살펴본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딱 맞아떨어지는 해석은 없다. 오직 모색하고 예측만 할 수 있을 뿐.
천사의 존재 ‘미스터리’
1902년, 당시 심베리는 수막염으로 알려진 병을 앓았다. 이제 막 나이가 서른줄에 닿은 시점이었다.
고통은 심했다. 한동안은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야 할 정도였다. 겨우내 정점을 찍은 아픔은 다행히 조금씩 잦아들었다. <상처입은 천사>는 심베리가 다음 해, 병마를 어느정도 털어낸 직후 완성한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심베리는 자신을 아픈 천사에 비춘 건 아닐까.
기진맥진해진 본인을 이 존재에 투영한 건 아니었을지. 두 아이가 천사를 든 공간 또한 의미심장하다. 화폭 속 장소는 핀란드 헬싱키의 퇼뢴라흐티만을 둘러싼 엘라인타르하 공원이다. 노동자 계층의 쉼터로 여겨지는 한편, 근처에는 요양소와 자선단체 시설 등도 여럿 있는 구역이었다. 무엇보다도, 심베리가 병 치료를 위해 찾은 디아코니아 병원 또한 인근에 있었다. 이 정도면 벌써 정답이 나오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은 가장 큰 의문을 풀지 못한다.
왜 하필 천사를 그렸느냐가 그것이다. 투병 중인 자기 모습을 염두에 뒀다면 인간을 그리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천사의 존재 이유를 답할 수 없다면 자기 투영설 정도로는 퍼즐을 채울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심베리는 수막염 추정의 병을 앓기 전부터도 <상처입은 천사>의 뼈대는 구상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작은 악마가 아픈 천사에게 약을 주는 모습, 악마가 지친 천사를 손수레에 싣고 움직이는 장면 등을 초안 격으로 그린 적도 있었다. 병이 작품을 빚는 과정 중 나름의 영향을 줬을 수는 있다. 다만, 이 또한 천사가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는 아프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기에. 천사는 처음부터 천사였다.
상징주의로의 초대
답에 가까워지기 위한 여정은 이어진다.
이제는 그림 한 점의 분석을 넘어, 화가의 예술관 자체를 따져보는 시간이다.
심베리는 1873년 핀란드의 항구도시 하미나에서 출생했다.
심베리가 그림을 그린 데는 이모 알렉산드라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사립학교 운영자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다. 심베리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고, 예술의 즐거움 또한 선뜻 알려준 인물이었다. 심베리는 1891년, 열여덟 나이로 비푸리(Viipuri) 미술애호가협회 드로잉 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기본기를 익혔다. 이어 1893년부터 2년간은 핀란드 미술협회 드로잉 학교에서 실력을 다졌다. 학생 시절 심베리는 주류에 속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부터도 심베리가 보다 관심을 둔 건 비현실적 풍경 속 암시와 은유였다. 주변 대부분의 화가가 여전히 매달린 일, 세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식에는 아주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딱히 사교적이지도 않았다. 몸도 썩 튼튼하지 않아 종종 크고 작은 병까지 앓았다고 한다.
그렇게 고립 아닌 고립 시기를 맞았을 때, 생애 첫 은사와 같은 이모가 또 한 번 문을 열어줬다.
“새로운 길로 나아갈 용기를 주고 싶다”는 뜻과 함께 한 신문 기사를 보내준 것이다.
받은 종이 위로는 상징주의에 대한 문장이 줄줄이 쓰여 있었다. 화가 자신의 마음, 깨우침 등에 대한 표현을 바깥 풍경 묘사보다 중시하는 화풍. 본인의 생각을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상징에 눌러담아 표현하는 경향. 이것은 그에게 자기 옷처럼 맞는 예술 방식이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1895년, 심베리는 열세살 연상의 선배 악셀리 갈렌-칼렐라를 찾았다.
갈렌-칼렐라는 핀란드 루오베시(Ruovesi) 호숫가에 통나무 오두막 ‘칼렐라’를 짓고 살아가는 화가였다. 무엇보다도 상징주의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예술가였다. 심베리는 갈렌-칼렐라의 제자로 들어갔다. “유행을 따르지 말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스승의 가르침은 이런 식이었다. 심베리는 고요한 오두막을 오가고, 적막한 호숫가를 거닐며 머릿속 세계를 갈고 닦았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건 무엇인지, 무슨 상징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사이 신화와 전설, 설화를 다룬 책도 부지런히 읽었다. 틈틈이 여행도 했다. 영국 런던을 찾고,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반도도 둘러봤다.
정확히 무엇이 결정적 계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심베리는 유독 이런 부분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심베리는 어느 순간부터 눈 앞의 많은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선과 악, 신성한 일과 세속적인 일, 강한 존재와 약한 존재를 완전히 나누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세상에는 절대적 선도, 무조건적 악도 없었다. 진리처럼 여겨지는 인식에도 구멍은 있었으며, 탄탄해보이는 체계 또한 대개 기상천외한 허점을 안고 있었다. 완벽이란 말이 어울리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심베리는 말하기보다는 읽고 듣는 쪽이었다. 나서기보다는 바라보고 지켜보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숙성의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밀도 높게 되짚으며, 이러한 이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물이든 상징이든, 당연해보이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그리는 일. 심베리는 자신이 무엇을 그릴 수 있는지를 깨달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나약한 악마
작고 마른 악마가 뜨거운 솥앞에서 쩔쩔 맨다.
불은커녕 연기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성인 남녀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볼 뿐, 두 개의 뿔과 길쭉한 꼬리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다. 심베리의 <솥 옆의 악마>다.
비슷한 그림은 또 있다. 이번에는 악마가 구걸까지 한다. 굶주린 두 아기 악마를 품에 안은 채 먹고 마실 것을 부탁한다. 역시나 비루하고, 초췌하다. 그 앞에 선 농부 부인은 이 모습에 되레 서글픈 표정을 짓는다. <농부의 아내와 가련한 악마>다.
대개 악마는 신과 맞서 파괴를 종용하는 절대악의 상징으로 통한다.
거대하고 강한 몸, 교활하고 잔혹한 성격으로 그려지는 게 당연했다. 심베리는 그런 ‘위엄 있는’ 악마조차 뒤집었다. 악마라고 해서 다 잘 살겠는가. 악마 중에서도 번번이 실패하고, 파멸과 타락은커녕 당장의 앞가림조차 하기 힘든 개인 또는 계층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한편 심베리는 그림 속 악마를 그릴 때 ‘피루(Piru)’를 참고하기도 했다. 이는 핀란드 신화에서 등장하는 악마다. 악마답게 심술궂지만, 그만큼 어리숙한 면이 있어 인간에게 속고 당하기도 하는 존재다. 이 또한 통념을 깨뜨리는 존재인 만큼, 심베리가 매력을 느꼈을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이렇게나 다정한 죽음
그런가 하면, 심베리는 죽음 또한 ‘당연한 식으로’ 그리지 않았다.
해골이 꽃을 가꾼다. 다채롭다. 색깔과 크기 제각각이다. 해골은 그것이 마음에 드는지 끌어안는다. 갈증을 느낄까 싶어 물을 뿌리고, 부러진 곳이 있는지 보려고 몸을 웅크리기도 한다. 이곳의 해골은 기뻐보인다. 이 뼈마디의 손길을 받는 꽃 또한 걱정없이 줄기를 뻗는다. 공기는 온화하다. 공간은 가지런하다. 그런데, 제목은 <죽음의 정원>이다.
죽은 이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곳.
자기 그림 이야기를 유독 하지 않은 심베리라지만, 이 작품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림 속 해골은 사신이 아닌 생명의 벗이다. 혼령이 깃든 식물을 천국으로 보내기 전 책임지고 보살피는 정원사다. 원래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해골은 악령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대개 시퍼런 낫을 들고 인간 또는 마을을 습격하는 존재로 치부되곤 한다. 심베리는 이러한 통념 또한 따르지 않았다.
그 악마조차도 빌빌거릴 수 있다. 해골이 어슬렁거리는 사후세계 또한 의외로 다정할 수 있다.
심베리의 뒤집힌 그림은 묘한 해방감을 품고 있었다. 이는 상식, 정확히는 어느덧 상식처럼 굳어진 관념을 깨뜨리게 했다. 어느 곳에도 당연한 건 없다는 쉽고도 잊기 쉬운 진리. 그것은 각양각색 사람들이 모인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위로의 메시지로 내려 앉았다. 심베리는 이러한 흐름을 내심 의도했을까. 세상의 부조리함을 엿본 그가 환상과 상징으로 전하고자 한 것.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격려와 위안이었을까.
결국은…“스스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쯤에서 다시 <상처입은 천사>를 본다.
그 대단한 천사도 그렇다. 다칠 줄 안다. 통증에 움츠릴 줄 알고, 힘들 때는 도움도 피하지 않는다.
하물며 천사마저 이런데, 인간이 어떻게 매번 강하고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삶과 사회는 우리에게 ‘당연한듯’ 무결점을 안고 나아가길 강요한다. 잠깐의 실수와 착각도 엄하게 바로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실은 모두가 안다. 앞지르기는커녕 지금 선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는 일 자체도 어렵다는 점을 말이다. 그런 식으로 보면, 고개 든 소년의 눈빛은 화폭 밖 감상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도 하다. 그대가 눈처럼 하얀 이 존재보다 대단한가. 그렇지 않을테니 당신도 잠시 내려놓으라고.
천사가 손에 쥔 꽃은 설강화다.
이는 재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해석되곤 한다. 천사는 분명 아파보인다. 다만, 죽어가거나 완전히 파괴된 듯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확인된 배경을 볼 때 향하는 곳은 치료소일 여지가 상당하다. 이렇게 잠깐 주저앉아도 된다. 다시 나을 수 있다. 완전히 스러지지 않는 한 재차 비상할 수 있다. 그림 속 모든 상징을 종합하면 이런 식의 해석까지도 가능해진다.
너무 자의적인 시선이지 않은가.
심베리는 이 그림을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5~6년 이상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뜨기도 힘든 신생아가 수천 단어 이상 단어를 구사하는 아이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작품 또한 그만큼이나 푹 무르익을 수 있는 기간이었다.
(갈렌-칼렐라는)내가 큰 숲 한가운데 있는 작은 오두막에 홀로 서서, 바깥세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 것 같다고 했어.
이번 전시회의 어떤 그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화와 조화로움을 뿜어낸다고도 했지.
심베리는 <상처입은 천사>를 아테네움 가을 전시회에 내건 직후 여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심베리의 스승, 갈렌-칼렐라부터도 이 그림을 놓고 불안 아닌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읽은 모양이다. 갈렌-칼렐라 말고도 많은 예술가가 화폭 앞을 떠나지 못했다. “천사 소녀가 아프다. 그것이 전부다”라는 보이는 그대로의 분석부터 “실은 어느 나라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라는 식의 무한한 확장까지, 화가의 속내를 놓고 저마다의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심베리는 또 말을 아꼈다. 오죽하면 이 그림을 선보였을 당시 정식 제목조차 단순히 줄표(-)로 남겼을 정도였다. 작품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묻는 말에 대답은 늘 비슷했다. “그림 자체가 답을 주지요. 모두가 스스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그림 이어 공간까지 전복?
한편, 심베리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은 의문 아닌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상처입은 천사> 작업을 마치고 1년 후, 심베리는 핀란드 탐페레에 세워지고 있던 성당의 장식 일을 맡았다. 오늘날 ‘탐페레 대성당(Tampere Cathedral)’으로 불리고 있는 그곳이었다. 심베리는 천장 가장 높은 곳에 뱀을 그렸다. 입을 쩍 벌린, 선악과로 추정되는 웬 열매를 삼키려고 하는, 칙칙한 톤의 크고 긴 뱀이었다. 배경마저 붉은색이었다. 심베리는 그림을 뒤집다 못해 장소의 상징까지 뒤집어보려고 했을까. 가장 성스러운 공간 또한 완벽할 수 없고, 그런 만큼 악이 깃들 수 있으니 의식해보라는 듯. 그의 시도는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투표 후 겨우 한 표 차이 덕에 감독위원회의 승인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핀란드인이 뽑은 ‘국민 그림’
심베리는 화가 말고도 교육자의 삶으로도 살았다.
그는 1907년께부터 근 6년간 과거 그가 다닌 핀란드미술협회 드로잉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1910년에는 안니 브레메흐라는 여인과 결혼도 했다. 둘은 곧 두 명의 아이도 안았다. 그런 심베리는 1917년에 죽었다. 나이는 고작 마흔 넷이었다. 아직 한창 더 활동할 수 있는 시기, 갑작스러운 끝이었다. 심베리의 전기를 쓴 헬레나 루스카는 그가 오랜 기간 아마 매독일 가능성이 있는 질병도 앓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심베리는 떠났지만 남겨진 그의 그림은 여전히 이목을 끌었다. 분석은 새로운 분석을 낳고, 해석은 또다른 해석을 잡아끌었다. 그의 대표작 <상처입은 천사>는 지난 2006년 아테네움 미술관이 행한 투표 결과 핀란드의 ‘국민 그림’으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그럼에도 그림에는 여전히 답은 없다. 앞으로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예술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끝으로 심베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한때 아테네움 관장이었기도 한 사카리 사리키비가 남겼다는 <상처입은 천사> 평을 전한다. “나쁜 것은 이미 뒤로 남겨졌다. 화해와 평화의 시간이 찾아온다. (…) 묵묵한 경외가 미래를 다시 밝혀주리라.”
참고 자료
Ruuska, Helena., Hugo Simberg : pirut ja enkelit, Werner Soderstrom
Saarikivi, S., Hugo Simberg–elama ja tuotanto, WSOY
“Hugo Simberg”, Artist Register, Artists‘ Association of Finland
yul@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