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7000가구 40년 만에 다시 짜는 목동 신시가지
6단지 선두·7단지 대장·14단지 최대 규모
낮은 용적률·큰 대지지분에 건설사 눈독
2030년 전 인허가 관건…동시이주·공사비 난제
[헤럴드경제=윤성현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30조원짜리 ‘도시 재건축’이 시작됐다.
목동신시가지 1~14단지, 기존 2만6000여가구가 동시에 재건축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현재 정비계획대로 사업이 완료되면 약 4만7000가구 규모의 새 주거도시로 탈바꿈한다. 서울 주요 재건축 사업 가운데서도 이처럼 한 생활권 안에서 14개 대단지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목동 일대는 안양천 제방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만 해도 저지대와 농경지가 섞여 있던 지역이었다. 목동이라는 지명 역시 원래 나무 목(木)이 아닌 기를 목(牧)을 쓴 ‘목동(牧洞)’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모습이 완전히 바뀐 것은 1980년대다. 당시 서울시는 주택 부족과 부동산 투기 과열,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1년 ‘2000년대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마스터플랜’을 내놓고 도시구조 다핵화를 추진했다. 이어 1983년 목동 신시가지 개발계획을 발표하며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동시에 서울 서부권의 새로운 중심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본격화했다.
목동은 상업·업무시설과 주거를 함께 배치한 자족형 ‘도시 안의 신도시’를 목표로, 남북으로 완만한 S자형 중심축과 일방통행 도로체계, 열병합발전소를 통한 지역난방까지 갖춘 계획도시로 설계됐다.
이후 1985년부터 1988년까지 1~14단지가 순차적으로 조성됐고, 학교와 공원,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학원가와 우수 학군이 형성됐다. 그렇게 목동은 강남구 대치동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교육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당시 같은 청사진에서 태어난 14개 단지가 약 40년 만에 다시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있다. 목동의 다음 40년을 결정할 승부를 사업 속도, 시공사, 사업성, 현재 몸값, 변수 다섯 가지 축으로 뜯어봤다.
첫째는 ‘사업 속도’…6단지가 ‘선두’, 뒤집히는 앞·뒷단지 서열
현재 사업 속도에서 가장 앞선 곳은 6단지다. 지난 5월 목동 14개 단지 가운데 처음으로 서울시 정비사업 통합심의를 통과했고, 기존 1362가구를 최고 49층·2170가구로 재건축한다. 시공사도 DL이앤씨로 확정돼 ‘아크로 목동리젠시’를 제안한 상태다.
목동 토박이 출신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 A씨는 “6단지는 과거 특별히 선호도가 높은 단지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 자체가 프리미엄”이라며 “재건축 이후에는 안양천과 한강 방향 조망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기존과 다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목동에서는 1~7단지를 ‘앞단지’, 8~14단지를 ‘뒷단지’라고 부른다. 행정구역도 앞단지는 대부분 목동, 뒷단지는 신정동으로 갈린다. A씨는 “과거에는 앞단지와 뒷단지 사이 시세 차이가 분명했지만 최근에는 뒷단지 일부가 재건축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며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1·2·3단지는 당초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종상향 절차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렸다.
한동안 선두권으로 꼽혔던 13단지는 서울시 통합심의에서 한 차례 제동이 걸렸다. 최고 49층 주동을 다수 배치하면서 동별 높이에 충분한 차이를 두지 않는 등 목동 택지지구 정비계획의 경관·배치 가이드라인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설계안을 다시 손보고 있다. 서울시는 최고 49층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은 아니지만, 최고층 주동을 전체의 10% 안팎으로 줄이고 높이를 다양화해 안양천변을 향해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스카이라인을 만들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사이 9·10단지는 빠르게 따라붙고 있다. 9단지는 통합심의 본위원회 상정을 준비 중이고, 10단지는 사업시행자 지정 이후 통합심의 절차와 시공사 선정 절차를 병행하고 있다.
둘째는 ‘시공사’…삼성·현대·DL·GS, 30조원 목동판 ‘영토전쟁’
30조원 규모의 목동 재건축 시장을 둘러싼 건설사들의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곳은 DL이앤씨다. DL이앤씨는 지난 6월 6단지 시공사로 선정됐다. 10단지에서도 최근 현대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 목동 에세르’를 제시하며 목동 수주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12단지는 GS건설 쪽으로 판이 기울고 있다. 1차 본입찰에서 GS건설만 응찰해 유찰된 데 이어 재입찰 현장설명회에도 GS건설만 모습을 드러냈다.
13단지는 삼성물산이 가장 적극적이다. 삼성물산은 1차 입찰에 단독 응찰했고 해외 설계사와 손잡고 대안설계까지 마련하며 ‘목동 첫 래미안’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목동 주민들이 가장 관심 있게 바라보는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바로 4·7·14단지다.
특히 7단지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움직임이 가장 예민하게 맞부딪히는 곳으로 꼽힌다.
목동 7단지 조합원 B씨는 “목동 주민들도 개인마다 선호하는 브랜드가 분명하다”며 “초반에는 ‘7단지를 포함한 홀수 단지는 삼성물산 래미안이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는데, 최근에는 현대건설이 적극적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7단지는 삼성물산이 일찍부터 영업을 해왔고 현대건설도 최근 세력을 넓히는 모습이어서 주민들의 관심이 크다”고 했다.
다만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실제 정면승부를 벌일지는 미지수라는 전망도 나온다.
B씨는 “목동에는 14개 단지나 있기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서도 굳이 한 곳에서 출혈경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며 “서로 원하는 단지를 일정 부분 나눠 가져가는 이른바 ‘나눠먹기’ 형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업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오히려 예상 밖의 단지에서 경쟁입찰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A씨는 “선호도가 높은 단지는 대형 건설사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으면서 단독 응찰로 정리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단지에는 여러 건설사가 ‘여기는 해볼 만하다’고 판단해 뛰어들 수 있다”며 “오히려 그런 곳에서 실제 수주전이 붙는 역설적인 상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재 판세도 비슷하다. 6단지는 DL이앤씨가 가져갔고 10단지는 현대건설이 우협으로 올라섰다. 12단지는 GS건설, 13단지는 삼성물산의 단독 응찰 구도가 형성됐다.
반면 8단지는 대우건설·DL이앤씨·GS건설·IPARK현대산업개발 등이 관심을 보이며 현재까지 상대적으로 다자 경쟁 가능성이 큰 사업장으로 꼽힌다.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현대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은 목동 일대에 별도 홍보관과 라운지를 마련하고 조합원·주민들을 상대로 브랜드와 설계 콘셉트, 금융조건 등을 알리며 선제적인 수주전에 나서기도 했다.
셋째는 ‘사업성’…5단지가 조용히 뜨는 이유
목동 재건축의 가장 큰 무기는 땅이다. 목동신시가지는 1980년대 저밀도로 조성됐다. 대부분의 기존 용적률이 116~125%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 가운데서도 상당히 낮은 편이다.
용적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새 아파트를 더 지을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재건축 이후 늘어나는 일반분양 물량이 많아질수록 조합이 확보할 수 있는 수익도 커지고, 이는 조합원의 추가분담금을 줄이는 요인이 된다.
이 때문에 목동에서는 현재 시세와 별개로 사업성만 놓고 주목받는 단지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5단지다. A씨는 “5단지의 기존 용적률은 약 116%로 목동 14개 단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특히 대형 평형 중심으로 구성돼 조합원 대지지분도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사업성 측면에서 상당히 좋은 단지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즉 현재 거래가격만 보면 7단지가 압도적인 대장이지만, 재건축 사업 자체만 따지면 5단지 같은 ‘숨은 우등생’이 있다는 것이다.
14단지도 사업 규모 면에서 눈에 띈다. 기존 3100가구가 재건축 이후 5123가구로 늘어난다. 목동 14개 단지 중 가장 큰 규모다. 증가 가구만 2000가구를 넘는다.
다만 규모가 크다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14단지는 사업구역이 3개 블록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시공 방식에서 미묘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A씨는 “초기에는 3개 블록의 규모를 고려해 건설사 컨소시엄 방식도 검토됐지만 신탁사와 정비사업위원회에서는 단독 시공 방향을 잡았다”며 “현재 이 부분을 놓고 내부적으로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넷째는 ‘몸값’…“7단지는 이견 없는 대장”, 하지만 끝까지 갈까
현재 목동에서 대장을 하나 꼽으라면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7단지다.
A씨는 “7단지는 현재로서는 이견이 거의 없는 대장 단지”라며 “목동역과 가까운 역세권이고 현대백화점 접근성이 좋으며, 목운초·목운중은 목동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은 학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건축 이전부터 매매가격도 다른 단지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7단지에서 가장 많은 가구 수를 차지하는 66㎡(이하 전용면적, 약 27평)은 지난 3월 28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미 평당 1억원이 넘은 가격이다.
하지만 재건축 이후에는 지금의 서열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기존에는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6단지가 가장 먼저 통합심의를 통과한데 이어 사업시행인가까지 준비하면서 시장에서는 관심도가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 평형 위주 구성의 5단지는 ‘고급화’ 가능성이 가장 큰 단지다. 152㎡(약 53평)이 지난 6월 41억원(2층)에 거래돼 목동 신시가지 내에서 금액으로만 따졌을 때 가장 높은 거래가를 기록했다.
조망의 달라진 가치 역시 변수다. 6·13·14단지는 안양천변에 붙어 있어 고층 재건축 이후 수변 조망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다. 1단지와 6단지는 한강까지 조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뒷단지 중에서도 개별적인 강점을 가진 곳도 있다. 14단지는 재건축 이후 5000가구가 넘는 매머드급 단지가 된다. ‘규모의 경제’를 살린다면 단지 내 커뮤니티, 기반시설 등에서 이점을 가져갈 수 있다.
9단지는 서울남부지방법원과 서울남부지검이 인접해 있다는 점 때문에 ‘법조타운’ 주거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 A씨는 “9단지는 뒷단지이지만 남부법원과 검찰청이 가까워 직주 근접 때문에 목동 내에서도 선호도가 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약점이 분명한 단지도 있다. 11단지는 기존 주택이 중소형 평형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김포공항 항공기 소음도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는 지역으로 꼽힌다.
마지막은 ‘변수’…2030년 고도제한과 2만6000가구의 대이동
목동 재건축의 승부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변수가 있다. 시간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공항 주변 고도제한 국제기준을 개편했고, 새 기준은 2030년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김포공항과 가까운 목동은 비행안전구역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 14개 단지가 추진하는 재건축 계획 상당수는 최고 40~49층 수준이다. 새 기준이 국내법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느냐에 따라 현재 층수 계획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정비업계에서는 2030년 전에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현재 설계안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고도제한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사람’일 수 있다. 기존 2만6000여가구가 재건축에 들어가면 주민들은 다른 주거지를 찾아야 한다.
더구나 목동은 일반적인 재건축 지역과 다르다. 학군 때문이다.
자녀가 목동 학교와 학원가를 이용하는 가정은 이주기간에도 목동 생활권을 벗어나기 어렵다. 여러 단지가 동시에 이주하면 목동과 신정·신월동, 강서·영등포 일대 전월세 시장에 단기간에 대규모 수요가 몰릴 수 있다. 단지별로 이주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공사비도 변수다. 한두 단지가 아니라 14개 단지가 동시에 대규모 공사를 추진하면 건설 인력과 자재, 시공사의 수주 여력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목동 특유의 교육시설 문제도 있다. 아파트 가구 수가 약 2만6000가구에서 4만7000가구로 늘어나는데 학교와 도로, 상업시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새 아파트는 완성돼도 새 도시는 완성되지 않는다.
“왕좌는 아직 비었다”…목동 14개 단지의 다음 10년
40년 전 하나의 청사진 아래 동시에 태어난 목동 14개 단지는 이제 서로 다른 속도와 브랜드, 사업성을 앞세워 다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6단지가 가장 빠르고 7단지가 가장 비싸며 14단지가 가장 크지만, 재건축이 끝나는 순간의 서열까지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니다.
목동의 다음 왕좌는 입지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인허가를 넘고, 어떤 시공사를 붙이고, 얼마나 많은 일반분양을 확보하며, 공사비와 이주 리스크를 버티느냐가 새 서열을 만든다. 1980년대의 같은 신도시였던 14개 단지가 2030년대에는 전혀 다른 몸값의 14개 단지로 갈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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